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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기록이 남아 있으며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조선의 역사는 드라마 혹은 근대역사속에서 많이 등장하였습니다. 조선시대를 살고 있지 않지만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조선의 역사와 무관하지가 않습니다. 온전하게 조선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이관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석하기에 따라 수많은 관점이 있다고 합니다. 

주말에 여행하듯이 가면 좋을 곳으로 계룡의 괴목정 공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괴목정이라는 이름에서 생각해보듯이 나무가 중심이 되는 공원이기도 합니다.  

 태조가 신도안을 도읍지로 정하고 주변 형세를 살필 때 무학대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지팡이를 무심코 꽂아 놓은 것이 나무가 되어 지금까지 살아 큰 괴목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행복이 넘치는 Yes계룡에서 신도안의 어제와 오늘을 만나볼 수 있도록 자세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신도안이라는 지역은 신도안을 중심축으로 산천이 감싸고 흘러서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산태극, 수태극의 형국으로 풍수지리적으로 대길지라고 합니다.  

계룡산 남쪽 아래 평원지역을 1393년 태조 이성계가 왕사인 무학대사와 함께 국가의 수도로 정하고 신도로 되면서 왕도건설을 추진하다가 중단되어, 그때부터 도읍 예정지 안쪽으로 신도안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때 심어두었다는 나무가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나무로 자리잡았습니다. 괴목정공원의 중심을 지키고 있는 이 나무는 오랜시간이 지나도 그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을겁니다.  

 1356년에 귀국한 무학 자초(無學自超, 1327~1405)는 조선 최초이자 최후 왕사로 왕사란 덕행이 높은 고승에게 주던 최고의 승직이었다고 합니다.  

계룡산의 명칭은 무학대사가 금계포란형이자 비룡승천형이라 한데서 계와 용을 따왔다는 설이라고 합니다.  무궁화가 많아서 무궁화 학습원이기도 한 괴목정은 나무가 크고 넓게 퍼져 있어 정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저와 비슷한 연배의 분들이 주말이나 평일에도 와서 쉬고 있는 분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고목 주변으로 벤치와 평상같은 것이 준비가 되어 있어 쉼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수목이 심어져 있는 괴목정 공원에는 멋드러진 소나무들도 중간중간에 볼 수가 있습니다.  

7~10월의 약 100일 동안 매일 새 꽃이 줄기차게 피는 꽃나무로, 이름도 '끝없이 핀다'는 의미에서 유래한 무궁화는 한국인들에게는 의미가 큰 꽃이기도 합니다.  꽃은 매일 이른 새벽에 피며 저녁이 되면 시들어 말라 떨어지는데, 3개월 동안 매일 새 꽃이 피어 계속 신선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괴목정 공원에는 괴목정 숲속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괴목정 숲속도서관에서 많이 보았던 책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한때는 풍수와 관련된 책이 상당히 유행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후에 화장이나 혹은 자연속으로 돌아가게 하는 요즘은 풍수의 의미가 희석되었지만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였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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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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