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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몸을 가지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램입니다. 남자여자를 떠나서 이쁜몸은 운동도 많이 해야 하지만 관리가 철저해야 하거든요. 주변에서 클라이밍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아는데요. 클라이밍은 몸을 이쁘게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도 요가를 해서 몸관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클라이밍은 참 매력적인 운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분들도 꾸준한 노력을 통해 클라이밍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야외시설은 관계자가 있을때 같이 해볼 수 있는 곳입니다. 

비용도 상당히 저렴한 편입니다. 다른 운동을 생각하면 클라이밍의 매력은 가격에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만들더라구요. 

보통은 실내 리드월에서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즐긴다고 합니다.  나 자신의 몸을 지탱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운동이지만 중력을 통해 우리의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려면 이곳을 가보면 됩니다.  

여성분들도 한 손과 발에 의지해 실내 클라이밍을 하고 계시네요. 

겉으로 보는 것과 직접 해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운동 좀 했다는 저도 쉽게 보았다가 어렵게 내려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짜릿한 스릴도 즐길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근력 수준을 알고 싶다면 이곳을 찾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이용하는 것이 쉽지 않구나라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는 것이죠. 

클라이밍을 즐겼다면 위쪽에 만들어진 전망대에서 문경을 바라보는 것도 속시원한 느낌이 들어서 좋습니다. 

사랑의 조형물이 문경의 사과와 닮게 만든 것도 참 독특해 보입니다. 저곳에서 인증샷도 남겨보세요. 어떻게 시간이 멈춘 듯이 고요하게 보일까요. 마음의 균형도 저렇게 평온하게 흘러가면 세상에 아무런 걱정도 없지 않을까요. 

이곳 클라이밍센터는 총사업비 23억 6,000만 원을 들여 지상 6층, 건축면적 438㎡ 규모로 실외 국제규격 스포츠클라이밍 경기장(폭 30m, 높이 17m) 및 1층 교육장, 2층은 높이 12m의 실내 리드웰 연습장과 3층 볼드 링 연습장, 5층 휴게소, 6층 전망대 등을 갖춘 최신 시설로 만들어진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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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을 타작한다는 의미는 수타로 만들어서 음식을 만든다는 의미인데요. 문경 영강공원입구에 자리한 면타작이라는 음식점은 착한 가격으로 지역민들에게 잘 알려진 중국집입니다. 4월 말까지 고객감사 기념으로 짜장면을 한 그릇 2,900원에 맛볼 수 있다고 합니다. 

 

수타 손짜장이며 옛날식으로 짜장면을 만드는 곳입니다. 영강체육공원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이곳을 많이 이용한다고 합니다. 운동하고 나면 배가 고프기 마련이지요. 

문경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는 4월 28일에 문경시민과 함께하는 무료문화공연이 열립니다.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있는 공연이겠네요. 

이곳이 개업이 3주년이 된 것이 이번 달이라고 합니다. 4월 말까지 손짜장은 2,900원, 미니탕수육을 8,000원에 먹어볼 수 있습니다. 

이날 짜장면을 먹고 싶었으면 좋을텐데 마침 짬뽕이 먹고 싶어서 착한가격의 짜장면은 맛보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아쉽네요. 

공기밥도 무료입니다. 면을 마음껏 먹고 밥을 말아먹을 수 있습니다. 역시 착한가격음식점 다운 배려입니다. 

해물 혹은 고기와 다양한 야채를 기름에 볶은 후 닭이나 돼지뼈로 만든 육수를 넣어 끓이고 삶은 국수를 넣어 먹는 음식 짬뽕은 항상 중국집을 가면 고민하게 만듭니다. 

면발도 쫄깃하면서도 고기와 해물이 가득 들어가 있는 짬뽕의 맛입니다. 

짬뽕의 기원을 찾아가보면 1899년 나가사키로 중국인들에게 저렴하면서도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해산물과 야채를 이용한 나가사키 짬뽕을 처음 고안했다고 합니다. 일본도 짬뽕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것이죠. 

한국의 음식 역사에서 짬뽕은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가장 많이 먹는 음식 중에 하나로 전국에 소위 짬뽕 맛집이라는 곳이 즐비합니다. 

계산대에 있는 부엉의 모습이 부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부엉이를 좋아해서 부엉이를 수집하는데요. 이제 저런 그림도 수집을 해볼까 무척 고민중이랍니다. 건강하게 한 끼 식사하시고 행복한 한 주 되세요. 

 

면타작

경북 문경시 영강공원길 111

054-555-8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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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의 시조가 된 사람의 흔적을 찾아가는 것은 시작이라서 의미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국가로 이어지고 사람들의 삶으로 이어지기에 더욱더 보존될 이유가 있고 여행지로서의 매력이 있습니다. 김수로왕은 바로 대가야를 세운 사람으로 그 왕릉으로 찾아가 보았습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태어나고 그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주시나 공주, 부여, 고령, 서울 등은 한 국가의 수도였던 곳이기에 왕릉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고 나서 백제의 왕릉들도 주목을 받고 있지만 가야의 왕릉은 이제 막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먼 남해의 도시 김해에는 수로왕릉과 수로 왕릉비가 있습니다. 가락국은 금관가야를 칭하는 다른 말입니다. 초기에는 여러 가야 중 맹주국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대가야(大加耶) 또는 본가야(本加耶)라고도 불렸으며 지리적으로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남가야(南加耶)라고도 하였다고 합니다.  


옛 설화에서 새의 알에서 왕이 탄생했다는 것은 익숙합니다. 새는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주는 신령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했기에 자연스러운 설화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솟대와 솟대를 연결시킨 것이 일본 신사로 들어가는 도리이도 그것에 기반한 것입니다.  



구지봉(龜旨峰)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6개의 알을 수습하여 집에 가져오니 모두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중 한 사람이 수로왕으로 ‘가락국’을 세웠는데 그 사람이 김수로입니다. 김수로와 그 왕후 허황옥은 둘 다 신화에서 등장합니다.  



서남쪽 앞바다에 배 한 척이 붉은 돛을 달고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도착했는데 여인이 나와 아유타국의 공주로 성은 허 씨이고 이름은 황옥이라 하며 그녀가 왕후가 됩니다.  

"하늘에 내게 명하시기를, 이곳에 와서 나라를 세워 임금이 돼라 하셨다. 그래서 내가 왔으니 너희는 이 산꼭대기를 파고 흙을 집으면서 이렇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어라. 그러면 너희는 하늘이 내린 대왕을 맞이하여 기뻐 춤추게 될 것이다." 이런 말을 듣고 알을 가져왔는데 아이들의 성을 황금빛 알에서 나왔으니 김(金)이라 하고, 가장 먼저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세상에 처음 나왔다고 하여 수로(首露)라 지었다고 합니다. 김이라는 성씨가 그렇게 세상에 등장한합니다.  


다른 국가의 왕릉에 비해 김수로왕의 릉은 소박한 편입니다.  


조용하면서도 정비가 잘되어 있어서 돌아보면서 생각을 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금관가야를 건국한 왕이라기보다는 태어날 이유가 있는 사람 두 명이 태어나서 만나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왕비는 157살이 되던 해에 세상을 떴고 수로왕도 슬픔과 그리움에 빠져 살다가 158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정말 행복하게 오래 산 셈입니다.  


아유타국에서 와서 왕후가 된 허황옥의 후손 중 허선문(許宣文)은 공암촌(孔巖 : 현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에 살면서 농사(農事)에 힘써 많은 양곡(糧穀)을 비축(備蓄)하였는데,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을 정벌할 때 군량이 부족하여 사기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군량(軍糧)을 보급해 주면서 오늘날에도 그 성씨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수로왕릉은 한반도의 끝자락에 있지만 많은 역사 흔적을 남기고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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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박물관은 단순히 가야의 문화뿐만이 아니라 선사시대부터 고대, 가야왕국, 통일신라, 고려, 조선대에 이르기까지 한 번에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구성해서 만든 곳으로 김해를 여행한다면 꼭 가볼만한 곳입니다. 김해인의 삶은 어떠했을까 궁금하다면 가장 먼저 국립 김해박물관을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해봅니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에 전국에는 그늘막이 펴지고 있습니다. 무더위 그늘막은 지름 4.7m 크기의 고정‧접이식 파라솔 형태로 여름철 직사광선을 90% 이상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아무것처럼 보이지 않은 돌들도 선사시대 사람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도구였다고 합니다. 긁개, 밀개, 뚜르개, 새기개라는 것은 후에 문명시대를 산 사람들이 붙인 것이겠지만 당시에는 어떻게 불렀을까요.  


우선 1층으로 들어가 봅니다. 1층에는 김해가 자리한 낙공강 하류의 선사문화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 흐름을 보다 보면 가야의 여명과 가야의 성립과 발전을 단계를 밟듯이 볼 수 있습니다.  


가야(加耶)의 건국신화가 깃든 구지봉 기슭에 자리 잡은 국립 김해박물관은 1998.7.29.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 전시하기 위한 고고학 중심의 박물관으로 탄생하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는 바로 김 씨입니다. 주변에 있는 친구 중에 김 씨 한 명 없는 사람은 홀로 칩거하던가 세상을 등진 사람일 것입니다. 그만큼 김 씨가 많으며 그중에 김해 김 씨는 500만 명에 이른다. 김해는 안 가봤어도 김해 김 씨는 흔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선사시대의 강력함은 돌을 어떻게 쪼개서 쓸 수 있으며 식량을 보존해서 먹을 수 있느냐에 따라 부족의 운명이 정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의 흔적을 살펴보다 보면 식량을 보관했던 토기 항아리들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정에서 냉장고가 없는 곳이 있을까요. 그만큼 냉장고는 우리 실생활을 변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앞으로로 그럴 것입니다. 사람은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냉장고만큼 혁신적이었던 것이 바로 토기였습니다.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칼과 검들입니다. 지금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철의 성질상 녹이 슬었지만 서슬 퍼런 그때로 돌아가면 어떨까요.  

백제와 신라가 양쪽에 있고 여러 국가로 나뉜 가야가 있었습니다. 고성의 소가야, 김해의 금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창녕의 비화가야, 고령의 대가야, 상주의 성산가야로 이루어진 연합국가였습니다. 연합국가의 형태가 아니라 하나로 합쳐졌다면 신라를 대신할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봅니다.  

 가야와 관련한 시사프로그램을 보면 알겠지만 가야가 발전한 그 힘에는 바로 덩이쇠에 있었습니다. 대국가에서 제철은 오늘날 핵무기에 비견될 수 있는 위협 수단이었습니다.  

보통은 죽은 사람의 두개골을 보는 것은 흔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박물관에 오면 어디든 두개골은 꼭 볼 수 있는 듯 합니다. 사람의 뇌가 들어 있는 부분인 사람의 두 개(cranium)는 공 모양이며 얼굴에 비해 큰 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물에 있어서는 윗니와 코가 있는 두개골의 안면부가 두 개보다 더 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야인들은  바퀴를 물건을 싣는 용도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싣고 가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죽은 자의 영혼을 상당히 중요시했다는 것을 박물관을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야 김수로왕이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이할 때  왕후와 함께 수레를 타고 신하 부부도 나란히 수레를 타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가야 사람들이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는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수레를 사용했었습니다.  

김 씨가 출발하기 시작한 김해인들의 삶은 선사시대 이전부터 시작했겠지만 가야의 꽃을 피우며 번성했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는 김해박물관은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길 190에 있습니다.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당일, 추석 당일. ※단, 월요일이 공휴일이거나 징검다리 공휴일에 포함될 때는 공휴일 다음의 첫 번째 평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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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길로 자주 찾는 문경의 여행지로 여우목성지가 있습니다. 이제 성지순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일상이 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요. 이날은 광주에서 오신 분들이 여우목성지를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문경의 여우목성지는 천주교안동교구 문경성당에 속해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250미터를 걸어서 안쪽으로 가야 합니다. 

 

문경읍과 동로면 사이에 위치한 여우목고개에는 병인박해와 관련이 있으며 윤달이 있는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때 순교한 신자들을 성인으로 시성하면서 이 곳이 성지로 지정된 곳으로 여우목성지라고 불리고 있는 곳입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물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려서 좋은 곳입니다. 한 여름에는 저곳에서 발을 담그고 열기를 식혀보고 싶네요. 

 

광주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와 점심식사를 하면서 하루의 여유를 즐겨보고 계셨습니다. 

 

야유회를 나오듯이 이곳을 찾아오셨는데요. 천주교 안동교구의 여우목성지는  1866년에 발생한 병인박해 때 이 곳에서 살던 30여 명의 천주교 신자가 체포되어 참수당해 순교한 곳입니다. 

나이드신 분들도 많았지만 젊은 분들도 간간히 눈에 뜨이더라구요. 여우목성지에는  1968년에는 병인박해 기간 중에 순교한 24명이 복자(福者)로, 1984년에는 성인(聖人)으로 오르게 됩니다. 

주변으로 예수의 고난을 상징하는 조각상들이 있습니다. 보통 성당이나 성지를 가면 모두 제각기 다른 모습같지만 내용은 같은 형태로 만들어져 있어서 그 길을 따라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우목에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성 이윤일 요한 가정이 이곳으로 이사를 와고 서치보요셈의 가정이 이곳에 피난해 오면서 신자들이 살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우목성지는 경상도 동쪽지방의 사람들이 서울로 가기 위하여 문경 읍내와 새재로 넘어갔던 교통의 요지에 있습니다.

문경의 대표 성지는 여우목으로 산, 강, 바위와 같은 특징적인 자연환경을 신성한 장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순교하신 분의 상이 순례온 사람들을 맞이해주고 있습니다. 양반의 구분이 없이 신분의 귀천 없이 모두가 동등하게 대우받는 세상을 꿈꾸며 살았던 것은 당시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죠. 

마실나가듯이 오는 이 여행지는 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주고 때론 여유도 주는 여행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경에서도 조금 벗어난 곳에 있지만 가끔씩 와서 마음의 안식을 얻어보고 싶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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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를 대표하는 세 곳의 서원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는 서원은 구천서원입니다. 봄이라서 그런지 더 화사하고 더 아름다운 공간으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김해에서도 조금 외곽에 자리하고 있어서 김해시내에서는 한참을 올라가야 만나볼 수 있습니다. 

 

김해 구천서원은 비교적 늦은 시기인 조선 말기에 건립된 곳입니다.  1822년(순조 22)에 거인리(지금 외동外洞)에 창건하였으나 습지로 인하여 다음해 왕후릉동편(王后陵東便)에 이건하여 매년(음) 3월 10일에 향례를 하고 있습니다. 

구천서원하면 김해의 역사와도 연결이 깊다고 합니다. 바로 김해를 기반으로 왕국을 만들고 500여년을 이끌어갔던 금관가야 가락국시조왕의 후예인 허경윤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기 때문이죠. 

구천서원에는 봄꽃이 만개해 있는데요. 건물들이 새 것 같아서 찾아보니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898년 유림 및 후손들이 중산(中山)학계를 창설하여 이곳 애춘재(愛春齋)에서 덕행을 기리며 학맥을 이어오다 1996년(병자)에 서원복원을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구천서원 옆으로는 산책로도 조성이 되어 있으니 시간이 있으신 분들은 봄향기를 맡으면서 주변을 걸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김해 구천서원은 맵에서도 잘 나오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열심히 잘 찾아보니 주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서원이나 향교등을 보면 외삼문이 있고 내삼문이 있는데요. 그 차이는 바로 1,000년이 넘는 시기의 인물을 모신 곳은 내삼문을 만든다고 합니다. 즉 그만큼 역사와 유래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라는 것이죠. 

柴扉尨亂吠 사립문의 삽살개 요란스레 짖는다
窓外白雲迷 창밖에 흰 구름 떠도는 것 보고...
石徑人誰至 돌길 이어진 여기 누가 찾아오리
春林鳥自啼 봄 숲에는 새들만 지저귀는데...

 

이곳에 모셔진 인물 허경윤의 한시입니다. 

실제로 죽암은 선조가 직접 주관한 과거에 합격했지만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고, 정승 이원익이 여러 차례 관직을 제시했을 때에도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돌길이 끝나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는 그의 산속 집은 세상의 번잡함과 권력 다툼에서 벗어난 자연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벼슬을 하지 않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외적 침입에는 분연히 궐기하여 일어났습니다. 

학문을 했으며 정성을 다해 제자들을 길러냈지만 나라의 운명에는 온몸을 던져 신념을 지키는 삶을 살았던 분입니다. 

 

4월 14일 부산진성, 4월 15일 동래성을 무너뜨린 일본군은 17일 김해로 밀려왔는데요. 당시 김해읍성을 지키던 군사들은 전멸을 하고 수로왕릉까지 파헤쳤다고 하네요. 그 소식을 듣고 100여 명 장정을 급히 조직한 허경윤은 바로 수로왕릉으로 달려갔다. 그저 헛소문일 뿐 수로왕릉이 무사하기만을 간절히 빌었지만, 왕릉과 왕비릉은 처참하게 파헤쳐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적들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한밤을 이용, 장정들과 함께 능의 봉분을 다시 본래 모습대로 회복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홀로 산으로 들어가서 세상을 떠난 뒤에도 허경윤은 결코 쓸쓸하지 않았습니다. 1822년, 온 나라의 선비 221명이 뜻을 모아 김해부 서쪽 거인리(현 내외동)에 구천서원(龜川書院)을 세운 것입니다. 

허경윤이 분연히 지키기 위해 일어났던  원래의 김해읍성은 본래 전체 길이가 1950m, 동문 해동문(海東門), 서문 해서문(海西門), 남문 진남문(鎭南門), 북문 공진문(拱辰門)으로 구성된 곳이었습니다. 

죽암 허경윤은 조식의 제자였다고 합니다. 죽암이 임진왜란이 끝난 뒤 전란 중 불타버린 산해정(山海亭, 조식이 제자들을 기른 강학 장소,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25호)을 재건하는 일에 앞장선 것도 군자다운 올바른 행동이었습니다.

 

김해 구천서원

김해시 상동면 상동로 27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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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모셔서는 안 되는 영을 모든 사정을 고려해 모신다면 그것은 아첨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해야 한다고 느기는 일이 있는데도 모든 사정을 고려해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임진왜란때 김해에 자리한 김해성을 사수하다가 순절한 세분의 인물이 있습니다. 

 

송담서원에 모셔진 송빈(宋賓)·이대형(李大亨)·김득기(金得器) 세분은 김해성을 사수하다가 순절하신 분입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5칸의 강당,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신문(神門)·고사(雇舍)·창고 등이 남아 있습니다. 

서원철폐령으로 이곳도 철폐되었지만 규모가 작은 규모가 아닙니다. 김해를 대표하는 서원중 송담서원은 말그대로 해야 될 일을 했던 사람들을 모셨기에 의미가 더 큰 곳입니다. 

 

푸르른 녹음이 함께하고 있을 때 이곳을 오니까 더 의미가 큽니다. 이곳은 고종 8년(1971)에 왕명으로 사충단에 4충신을 향사하였다가 1995년 바로 이 장소로 옮기고 송담서원을 국비와 도비, 시비 20억원을 들여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가야만 하는 길을 선택하려는 것 자체가 벌서 '인'이라 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인'이라는 것은 똑바른 길, 갈림길 아닌 길이 그대 앞에 펼쳐져 있을 터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송담서원에 모셔진 이들은 조선 선조 25년(1592) 동래성을 함락한 왜군이 김해성을 공격하자 당시 김해성의 주장군이던 서례원이 성을 버리고 달아남에 따라 백성들과 함께 군대를 조직해 끝까지 왜적에 맞서 싸운 최초의 의병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공을 기려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의병으로, 선조는 임진왜란 후 3년만인 1600년(선조 33) 이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벼슬을 하사했습니다.

저도 부모님에게 인이라는 것에 대해 많이 배운 기억이 납니다. 군자가 인간애를 잃고 어찌 군자의 명예를 지키는지 묻고 있습니다. 혼란할 때도 인을 잊지 아니하고 환난에도 인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많이 들었습니다. 

 

송담서원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성안벽화마을이라고 벽화마을이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김해성이 있었을 때 성안에 있던 곳이라서 성안벽화마을이라고 부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해에도 벽화마을이 여러곳 만들어져 있다고 하는데요. 다음번에는 벽화마을 위주로 돌아봐야 겠습니다. 

김해시는 김해성으로 쳐들어 온 왜적에 맞서 사흘 간 성을 지키다 순국한 음력 4월 20일을 정해 매년 제례를 올리며 우국충절의 넋을 기리고 있습니다. 김해 사충신은 △송빈(1542~1592) △이대형(1543~1592) △김득기(1549~1592) △류식(1552~1592) 등 4명의 의병장입니다.

 

송담서원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신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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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서북구 성정11길 19에 있는 삼계탕 전문점 진달래식당은 육수가 좋아서 저도 가끔 가는 곳인데요. 보신탕은 먹지 않지만 삼계탕을 한 그릇을 먹기 위해 가는 곳입니다. 

 

천안의 진달래식당은 매주 일요일은 정기휴일이고 개점은 12시입니다. 문을 닫는 시간은 9시이니 확인하고 가셔야 될 듯 합니다. 

 

진달래라는 꽃의 의미가 참 좋은데요. 진달래꽃은 산 넘어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을 완연히 느낄 때 즈음에 피기 시작합니다. 진달래는 비옥하고 아늑한 좋은 땅은 우악스런 경쟁자들에게 모두 빼앗기고 생존의 극한 상황인 산꼭대기로 쫓겨난 나무나라의 가난한 백성이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서민들에게 더욱더 따뜻한 꽃이기도 합니다. 

 

반찬도 직접 담그시는지 맛이 딱 손맛이 드러납니다. 깍두기와 김치가 맛이 좋아서 삼계탕과 잘 어우러집니다. 

 

금산시에서는 선비의 효성과 인삼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강씨가 처음 인삼을 재배한 자리에 개삼각(開蔘閣)을 지었다고 하는데요. 산신령이 알려준 인삼으로 만들어진 음식이기에 더욱더 건강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삼계탕은 맛이 자극적이지 않아 외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기 때문에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한국 요리 중 하나로 꼽고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들 중 대추는 삼계탕의 나쁜 성분을 흡수하므로 먹으면 안 된다는 말도 있는데, 사실이 아니므로 먹어도 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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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매실 갈비
충남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아랫말 1길 8에 있습니다. 

 

매실명태회냉면으로 잘 알려진 이 음식점은 착한가격업소이자 함경도 아바이냉면 1세대 전수자의 집이기도 합니다. 착한가격업소의 대회도 열린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됩니다. 

 

회냉면은 다음 기회에 먹기로 하고 오늘은 밥을 먹고 싶어서 알밥정식을 주문해 봅니다. 꼭 좋은 음식이나 별미가 아니더라도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같이 어릴 때부터 흔하게 먹는 음식만으로 저는 행복해집니다. 

착한가격업소이며 모범음식점이어서 그런지 꽃이 더 이뻐보이는 느낌입니다. 

2인 기준 3인분으로 함경도 아바이냉면 1세대 전수자의 집으로 고기도 맛이 좋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착한가격업소로 상을 받은 것은 2015년으로 음식점으로 입상하여 수상했네요. 우수상을 받은 곳이라고 합니다. 

 

알밥메뉴에는 된장찌개와 함께 제육이 함께 나오는데요. 전 된장찌개가 제 입맛에 맞았습니다. 삼국사기에서도 보면 신라 신문왕 3년조에 왕비를 맞이할 때의 납폐품목에 장·시(메주) 등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면 콩을 원료로 한 발효식품인 된장은 오래 전부터 우리 식생활에 등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건강하게 비벼서 맛있게 한끼 식사를 잘 먹어보았습니다. 톡톡튀는 알밤과 맛있는 된장찌개 그리고 반찬이 어우러져서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밥을 맛있게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모두들 행복한 한주를 보람차게 시작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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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오래된 것을 모두 철거하고 새로 짓는 것보다 재생하여 도시의 색깔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더 경쟁력 있다고 합니다. 인천항 제8부두에서는 인천시와 국토교통부, 문화일보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2019 도시재생 산업박람회’가 열러서 찾아가 보았습니다. 봄에 열렸으니 재생의 봄인 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시재생 산업박람회에서는 정말 많은 지자체들이 참여를 했습니다. 지역마다 도시재생 1길부터 5길까지 가로가 조성이 되어서 마치 도시를 탐하는 것 같이 돌아볼 수 있습니다. 

남해로 가니 거제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거제부스가 나왔습니다.  도시재생은 블록 및 개개의 건물의 중요한 도시생활 메커니즘인 인간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높은 수익만을 노린 접근방식이나 프레임이 아니라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는 것이 도시재생입니다. 

 

우선은 거제의 캐릭터와 거제의 특산품인 유자로 만들어진 거제 막걸리가 눈에 뜨입니다. 

저 멀리 있지만 도시재생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마을마다 다양하게 도시재생사업이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장승포 마을카페와 게스트하우스등도 그 사례중 하나입니다. 

 


미래에는 인공지능 혹은 기계화라는 것이 인간이 초인을 동경하여 로봇화에 대한 환상을 가져 점점 자신과 인간성 상실이 진행되는 가운데 얼마나 그것들로부터 탈피하여 회복시키는 데 있다고 합니다. 재생하듯이 살기 좋은 생활과 환경을 만드는 것이 미래 도시재생의 목적입니다. 

거제의 8경에 대한 소개를 비롯하여 지역 활성화를 위한 어촌계활동과 세부 사업 추진계획 및 공동체 추진 계획도 접해볼 수 있습니다. 

장승포라는 곳은 일제 수탈시대에 거점이 되기도 했던 곳입니다.  자연환경이 좋은 여행지인 거제도 역시 도시재생을 통해 고현동의 중심성 강화와 지역 활력 인프라 구축사업에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역 공동체 활성화 사업도 포함이 되어 있다. 가능성 있는 도시는 내용에 신중해야 합니다. 

 

도시재생대학이라는 조직도 만들어졌습니다. 도시재생대학에는 주거재생팀이 있어서 거제의 도시재생을 계획적으로 추진하게 됩니다. 

 

장승포 마을관리 협동조합(소비자 협동조합) 개념도를 보면 마을기업과 협동조합이 함께 하면서 주택관리와 공동구매, 교육, 상담, 케어등의 서비스가 순환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도시엔 활력을, 지역엔 일자리를'라는 슬로건으로 17일 오픈된 박람회는 오는 20일까지 인천항 제8부두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도시재생 박람회는 올해 첫회로 전국의 지자체 136곳, 공공기관 21곳, 민간 기업 31곳이 참여해 각 도시나 기관의 도시재생 사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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