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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박물관은 단순히 가야의 문화뿐만이 아니라 선사시대부터 고대, 가야왕국, 통일신라, 고려, 조선대에 이르기까지 한 번에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구성해서 만든 곳으로 김해를 여행한다면 꼭 가볼만한 곳입니다. 김해인의 삶은 어떠했을까 궁금하다면 가장 먼저 국립 김해박물관을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해봅니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에 전국에는 그늘막이 펴지고 있습니다. 무더위 그늘막은 지름 4.7m 크기의 고정‧접이식 파라솔 형태로 여름철 직사광선을 90% 이상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아무것처럼 보이지 않은 돌들도 선사시대 사람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도구였다고 합니다. 긁개, 밀개, 뚜르개, 새기개라는 것은 후에 문명시대를 산 사람들이 붙인 것이겠지만 당시에는 어떻게 불렀을까요.  


우선 1층으로 들어가 봅니다. 1층에는 김해가 자리한 낙공강 하류의 선사문화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 흐름을 보다 보면 가야의 여명과 가야의 성립과 발전을 단계를 밟듯이 볼 수 있습니다.  


가야(加耶)의 건국신화가 깃든 구지봉 기슭에 자리 잡은 국립 김해박물관은 1998.7.29.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 전시하기 위한 고고학 중심의 박물관으로 탄생하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는 바로 김 씨입니다. 주변에 있는 친구 중에 김 씨 한 명 없는 사람은 홀로 칩거하던가 세상을 등진 사람일 것입니다. 그만큼 김 씨가 많으며 그중에 김해 김 씨는 500만 명에 이른다. 김해는 안 가봤어도 김해 김 씨는 흔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선사시대의 강력함은 돌을 어떻게 쪼개서 쓸 수 있으며 식량을 보존해서 먹을 수 있느냐에 따라 부족의 운명이 정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의 흔적을 살펴보다 보면 식량을 보관했던 토기 항아리들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정에서 냉장고가 없는 곳이 있을까요. 그만큼 냉장고는 우리 실생활을 변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앞으로로 그럴 것입니다. 사람은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냉장고만큼 혁신적이었던 것이 바로 토기였습니다.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칼과 검들입니다. 지금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철의 성질상 녹이 슬었지만 서슬 퍼런 그때로 돌아가면 어떨까요.  

백제와 신라가 양쪽에 있고 여러 국가로 나뉜 가야가 있었습니다. 고성의 소가야, 김해의 금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창녕의 비화가야, 고령의 대가야, 상주의 성산가야로 이루어진 연합국가였습니다. 연합국가의 형태가 아니라 하나로 합쳐졌다면 신라를 대신할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봅니다.  

 가야와 관련한 시사프로그램을 보면 알겠지만 가야가 발전한 그 힘에는 바로 덩이쇠에 있었습니다. 대국가에서 제철은 오늘날 핵무기에 비견될 수 있는 위협 수단이었습니다.  

보통은 죽은 사람의 두개골을 보는 것은 흔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박물관에 오면 어디든 두개골은 꼭 볼 수 있는 듯 합니다. 사람의 뇌가 들어 있는 부분인 사람의 두 개(cranium)는 공 모양이며 얼굴에 비해 큰 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물에 있어서는 윗니와 코가 있는 두개골의 안면부가 두 개보다 더 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야인들은  바퀴를 물건을 싣는 용도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싣고 가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죽은 자의 영혼을 상당히 중요시했다는 것을 박물관을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야 김수로왕이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이할 때  왕후와 함께 수레를 타고 신하 부부도 나란히 수레를 타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가야 사람들이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는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수레를 사용했었습니다.  

김 씨가 출발하기 시작한 김해인들의 삶은 선사시대 이전부터 시작했겠지만 가야의 꽃을 피우며 번성했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는 김해박물관은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길 190에 있습니다.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당일, 추석 당일. ※단, 월요일이 공휴일이거나 징검다리 공휴일에 포함될 때는 공휴일 다음의 첫 번째 평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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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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