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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모셔서는 안 되는 영을 모든 사정을 고려해 모신다면 그것은 아첨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해야 한다고 느기는 일이 있는데도 모든 사정을 고려해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임진왜란때 김해에 자리한 김해성을 사수하다가 순절한 세분의 인물이 있습니다. 

 

송담서원에 모셔진 송빈(宋賓)·이대형(李大亨)·김득기(金得器) 세분은 김해성을 사수하다가 순절하신 분입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5칸의 강당,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신문(神門)·고사(雇舍)·창고 등이 남아 있습니다. 

서원철폐령으로 이곳도 철폐되었지만 규모가 작은 규모가 아닙니다. 김해를 대표하는 서원중 송담서원은 말그대로 해야 될 일을 했던 사람들을 모셨기에 의미가 더 큰 곳입니다. 

 

푸르른 녹음이 함께하고 있을 때 이곳을 오니까 더 의미가 큽니다. 이곳은 고종 8년(1971)에 왕명으로 사충단에 4충신을 향사하였다가 1995년 바로 이 장소로 옮기고 송담서원을 국비와 도비, 시비 20억원을 들여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가야만 하는 길을 선택하려는 것 자체가 벌서 '인'이라 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인'이라는 것은 똑바른 길, 갈림길 아닌 길이 그대 앞에 펼쳐져 있을 터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송담서원에 모셔진 이들은 조선 선조 25년(1592) 동래성을 함락한 왜군이 김해성을 공격하자 당시 김해성의 주장군이던 서례원이 성을 버리고 달아남에 따라 백성들과 함께 군대를 조직해 끝까지 왜적에 맞서 싸운 최초의 의병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공을 기려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의병으로, 선조는 임진왜란 후 3년만인 1600년(선조 33) 이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벼슬을 하사했습니다.

저도 부모님에게 인이라는 것에 대해 많이 배운 기억이 납니다. 군자가 인간애를 잃고 어찌 군자의 명예를 지키는지 묻고 있습니다. 혼란할 때도 인을 잊지 아니하고 환난에도 인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많이 들었습니다. 

 

송담서원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성안벽화마을이라고 벽화마을이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김해성이 있었을 때 성안에 있던 곳이라서 성안벽화마을이라고 부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해에도 벽화마을이 여러곳 만들어져 있다고 하는데요. 다음번에는 벽화마을 위주로 돌아봐야 겠습니다. 

김해시는 김해성으로 쳐들어 온 왜적에 맞서 사흘 간 성을 지키다 순국한 음력 4월 20일을 정해 매년 제례를 올리며 우국충절의 넋을 기리고 있습니다. 김해 사충신은 △송빈(1542~1592) △이대형(1543~1592) △김득기(1549~1592) △류식(1552~1592) 등 4명의 의병장입니다.

 

송담서원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신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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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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