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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다락골 줄무덤 성지는 충청남도 청양군 화상면 다락골길 78-6에 있는데 한 무덤에 여러 사람을 함께 묻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 줄무덤으로 지금은 종교와 상관없이 탐방할 수 있는 청양의 여행지이기도 합니다. 오래간만에 청양의 대표적인 성지인 다락골 성지를 찾아가보기로 했습니다. 

입춘이 지나고 경칩까지 지나고 나니 날이 확 풀리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이제 곧 춘분이라는 절기가 찾아옵니다. 태양의 중심이 춘분점 위에 왔을 때이며 태양은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고 지구상에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으니 낮의 시간이 더 길어지는 시점입니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에 다락골 성지를 잠깐 방문해보았습니다. 주변을 잘 살펴보면 꽃이 피어나는 것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대원군 집정 이후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심할 때 당시 홍주 감옥에서 순교한 교도들이 많았는데, 그 친척들이 야간을 이용하여 이곳으로 운구 암장하였는데요. 그래서 다락골 성지 부근으로 오시면 성지 순례길의 이정표를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성지로 이어지는 길과 성당만 있었는데 지금은 성지 공원처럼 조성되어 청양의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공원처럼 조성이 되어 있는 곳에 예수의 고난을 의미하는 고난의 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길위에 서면 ‘달을 안은 골짜기’라는 뜻의 다락골. 이름처럼 포근하고 평화로운 마을은 최양업 신부가 사목했던 이전의 교우촌들과 느낌이 다른 곳입니다. 

성지마다 고난의 길은 표현방법이 제각각 다릅니다. 본질적인 뜻은 같은데 표현하는 방식이 모두 다른 것을 보는 것도 관점의 차이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자동차등으로 어렵지 않게 올 수 있는 길이었지만 이렇게 골짜기에 있는 성지를 오는 것도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산 속에 숨어있지 않고 탁트인 풍경은 그 곳에 들른 이에게 평온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곳에서 태어나서 다락골에서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었을 최양업 신부는 조선의 신자들을 위해 기꺼이 험준하고 위험한 길을 걸으며 이곳까지 왔을 겁니다.  

인적이 보이지 않는 곳이지만 조용하게 그 날의 기억을 상상해보며 이곳을 돌아봅니다. 새로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새터'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이곳은 서울, 경기, 내포(충청도 북서부), 전라도 북부지역에 형성된 큰 신앙공동체의 중간에 위치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37명의 사람들이 이곳에 묻히고 나서 모두 잊고 살다가 방윤석 베르나르도 신부에 의해 이 마을의 구전과 사료를 수집하여 현지답사를 계속한 끝에 1981년에 줄무덤이 한 군데가 아니고, 세 군데임을 밝혀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1줄 무덤 서남쪽으로 밑으로 20m쯤 떨어진 지점에 10기의 제2줄 무덤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제3줄 무덤은 제1줄 무덤에서 100m 떨어진 능선 너머에 위치해 있는데 13기가 있다. 이렇게 이곳에 있는 무명 순교자의 무덤 수는 모두 37기가 된다고 합니다. 

김대건 신부와 더불어 최초의 유학 신부이며,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 신부(사제)인 최양업 신부(1821~1861)의 출생지이기 했기 때문에 최양업신부 생가터도 남아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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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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