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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한 관아에서 모든 것을 다 처리했었다고 합니다. 사법과 행정, 입법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역에서 법이 필요하다면 재량으로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지자체에서도 의회가 있듯이 사법과 행정, 입법이 모두 분리가 되어 있죠. 

해뜨는 서산, 도약하는 서산, 살맛나는 서산은 서산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구입니다. 서산시는 제11회 대한민국 지식대상 국무총리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1월의 마지막날 서산시를 방문해 보았습니다.  

충청남도에서 옛날에 사용했던 건물과 함께 있는 곳은 제가 알기로는 홍성과 서산입니다. 홍성이 조금더 옛스러운 느낌이 들지만 서산도 그에 못지 않게 옛 흔적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서산 관아문 및 외동헌앞에는 읍내동 귀부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화강암제 조각으로 서령군문의 정면의 좌츠고가 우측에 2구가 놓여 있는데요. 용도는 비석의 받침이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서쪽의 귀부석은 눈과 귀가 둥글게 표현되어 있고 동쪽의 귀부석은 서쪽의 것과 대체로 비슷하지만 얼굴의 양 눈썹 사이가 좁고 눈은 옆으로 긴 타원형이 특징입니다. 

건물의 규모가 작지 않아 보입니다. 옛날에 서산관청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위용을 보여주었을 겁니다. 서산읍성에는 객사, 동헌, 사령청ㅇ, 군관청, 군기고, 관노청, 외삼문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처럼 관아문과 외동헌, 객사만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서령군문이라고 쓰여져 있는 건물의 아래에 귀부가 보입니다. 관아문의 현판 서령군문과 외동헌의 현판 사령관은 1310년 고려 충선왕 2년에 붙여진 서산시의 옛 지명인 서령부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서산의 옛 지명이 서령부였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고려 왕조 개창 후에도 처음에는 부성군이었다가 1143년(인종(고려) 21년) 부성현으로 격하된 적도 있다고 합니다. 1284년(충렬왕 10년) 서산군(瑞山郡)으로 부활하며 최초로 서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1308년 서주목(瑞州牧)으로 승격, 다시 2년 뒤인 1310년 서령부(瑞寧府)로 바뀐 역사가 있습니다. 

서산시청을 전면에 두고 다른 이름의 공원이 양쪽에 있는데요. 이곳 공원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놓여 있습니다. 

외동헌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은 지금은 서산 외동헌 문화유적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는데요.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지은 팔작지붕 건물이라고 합니다. 

다시 건너편의 공원으로 오면 산책하기에 좋은 공간으로 조성을 해두었는데요. 특히나 고목이 많이 심어져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수백년은 됨직한 고목들이 여름에는 그늘을 드리워줍니다. 

오솔길을 걸듯이 소나무 사이를 걸으면서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봅니다. 서산시의 소식을 하나 알려드리면 한옥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높이고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올해 처음으로 ‘한옥지원사업’을 시범 시행하는데요. 올해 지원하는 사업량은 2개 동이며, 1동당 한옥 신축에 필요한 공사비의 1/2 범위 내에서 최대 4천만 원까지 지원할 것이라고 합니다. 지원조건은 공고일인 2023년 1월 6일 이전 서산시에 주민등록을 두고 실제 거주하고 있는 자로서, 바닥면적 60㎡ 이상인 한옥 주택을 신축할 예정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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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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