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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유명한 학자라고 하면 우암 송시열과 동춘당 송준길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오랜시간 대전이라는 지역에서 학문을 연구했던 유학자로 회덕 황씨와 은진송씨가 있습니다. 그리고 안동 권씨가 있습니다. 안동 권씨는 대전 서구 도산서원이라는 곳에 모셔져 있는 권시가 대표적인 유학자입니다. 

권시의 묘가 있는 곳에는 그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고택도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구에서 거의 유일한 서원으로 도산서원이 대표적입니다. 고택이 자리한 안쪽으로 들어오면 자리한 도산서원은 마을 뒷산을 도산이라고 했던 그 이름을 따서 붙여진 서원이라고 합니다. 

도산서원은 따로 조성이 되어 있는데요. 고택의 안쪽에 오면 도산서당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건물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가정교육이 중요하다고 한 것은 한국의 교육의 기본이었습니다. 서당이라는 곳은 학생들은 가정에서 한문 해독 능력을 갖춘 다음 서재류(書齋類)의 사설 교육기구나 관학인 향교를 통해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교육과정을 밟았는데 서당이 그런 역할을 맡았다고 합니다. 

권시의 묘는 대전이라는 도시에서 가장 중심지에 자리한 곳이기도 합니다. 

도산서원은 이곳에서 도로쪽으로 나가면 나오는데요. 이 건물은 도산서원관리사무소로 사용되는 건물입니다.  

권시도 그 길을 이은 기호학파는 이황(李滉)의 학설을 따르는 영남지방의 성리학자들을 지칭하는 영남학파와 구별하여 일컫는 말로 기호지방은 경기도를 중심으로 황해도와 충청도 일원을 의미합니다.  

날이 좋은 때 권시의 묘로 올라가보았습니다. 묘는 양지바른곳에 쓰였는데요. 소나무들이 인상적이네요. 

권시의 흔적이 보관된 건물입니다. 예송문제가 있을 때, 송시열과 송준길에 대립하여 윤선도를 지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같은 서인의 규탄으로 파직되어 낙향하던 중 광주(廣州)의 선영에 머물러 살았는데 나중에는  한성부좌윤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이듬해 공주(公州: 현재 大田)의 옛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대전지역도 공주에 포함된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만회집과 탄옹문집 판목도 기회가 되면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대전에 잘 알려진 집성촌으로 은진송씨가 머물며 살았던 송촌동이 있는데요. 대전의 끝자락으로 가면 안동 권씨가 머물렀던 유회당 종가가 남아 있습니다.  

탄옹 권시는 우암 송시열(宋時烈), 동춘당 송준길(宋浚吉), 초려 이유태(李惟泰) 등과 함께 대전 지역의 대표적인 예학자로 1672년(현종 13) 사후, 보문산 남쪽에 가매장된 뒤 1700년(숙종 26) 현 위치인 탄방동으로 유해가 이장된 것입니다. 

기호학파이면서 예론에 밝았던 권시의 묘에서 보니 그냥 도심속의 마음이 머물고 싶은 곳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대전지역은 백제시대에는 우술군으로, 노사지현(유성지방), 소비포현(유성구 덕진동), 진현현(진잠지방)이 속했으며 치지는 회덕지방으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옛날의 흔적으로 찾는 것은 대전의 역사를 걷는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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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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