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천안에서 동쪽으로 조금더 가다보면 천흥사가 자리했다는 천흥사지가 있습니다. 

직접 가서 보면 사찰이 있었던 공간이긴 하지만 탑이나 기단석 일부를 제외하고는 다른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곳입니다. 뒤에 있는 저수지는 나중에 만들어진 것 같은데 뒤쪽으로 산행길이 있어서 천안 시민들의 산책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천흥사지로서의 흔적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곳은 바로 이 석탑이네요. 

천흥사지는 천흥사라고 쓰여져 있는 기와 조각이 나오면서 절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요. 

주변에서 고려의 기와편이 나온 것으로 보아 고려의 절터로 유추되는 곳이에요. 발굴조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아서 어디까지가 가람이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곳에 대한 학술조사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것이 도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개인 땅으로 사용이 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가장 큰 부지에는 포도나무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포도가 적지 않게 생산될 것 같은데요. 천안 거봉포도하면 유명한데 여기에서도 포도를 생산합니다.




천흥사지는 성환읍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로 주변에서 조금만 파보면 천흥사라고 적혀져 있는 기와편이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이 석탑은 신라시대의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1층의 몸돌이 조금 깨져 있는 상태인데 이 탑의 조성시기는 근처에서 발굴된 천흥사 동종을 만든 시기와 같은 1010년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흥사지 5층 석탑의 지붕골은 넓고 얇게 만들어져있으며 낙수면은 좁은 편이고 경사각은 완만한 편입니다. 

탑이 위쪽으로 올라갈 수록 좁아지는 비율이 작은 편입니다.








처음본 천흥사지 5층석탑은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돌의 구성에도 규율성이 있는데요. 특히 탑신에서 보이는 완만한 체감율은 온화하고 장중한 느낌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고구려와 신라에 의해 땅이 좁아지기 전까지 충청도와 경기도 지역까지 모두 백제땅이었는데요.

고려를 세웠던 왕건이 이곳에서 후백제의 견훤과 일전을 벌이면서 결국 이 곳까지 접수를 했습니다. 천흥사는 아마도 왕건시대에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천흥사지가 있는 곳 위쪽으로 올라가면 천흥저수지가 나옵니다. 옆으로는 산으로 산행을 할 수 있는 길이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성거산 자락에 있는 저수지와 가볍게 등산까지 할 수 있는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천안에서 유명한 태조산과 흑성산까지 쭉 이어서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가파르지 않은 산행길을 걸어가면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 뿐만이 아니라 천안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뷰는 덤입니다.  



천흥저수지가 있는 곳에는 학생들이 한 번 쯤은 모여서 놀았을 것 같은 뚝방길이 있는데요. 

이 근처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이곳에 추억이 있을 것 같네요.




저 안쪽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네요. 




천흥저수지의 뚝방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뒤쪽의 성거산은 동쪽의 산을 보고 신령이 있다고 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고 성거산이라고 부르게 했다는 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천흥사는 사라졌지만 석탑만이 그자리에서 옛 흔적을 지키면서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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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가끔 여행을 가다보면 발견되는 흔적이 하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만세운동을 한곳인데요. 예산군 고덕면사무소가 자리한 곳에서 가까운 곳에 한내장 4.3만세운동 유적지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대천해수욕장이 있는 곳도 아닌데 교량의 이름은 대천교라고 되어 있네요. 

크지 않은 안내판이어서 이 마을 분들이 아니면 그냥 휙 지나갈 것 같습니다.


만세운동 유적지에는 일제강점기에 만세운동을 했던 사람의 흔적 뿐만이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국가유공자 기념비도 있습니다. 




가끔 이곳에서 공연도 하는지 조그마하게 야외공연장이 있습니다.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지정된 이곳에는 인한수선생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요. 

1919년 4월 3일 예산군 고덕면 한내장터에 모인 시위군중을 이끌고 대천교 옆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후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대열 선두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던중 일본 헌병과 일경들이 휘두른 총검으로 인하여 많은 군중이 부상 당하는 것을 보고 격분하여 말을 타고 있던 일본군 수비대장에게 달려들어 다리를 끌어내려 내동댕이치자 수비대장이 군도로 목을 찔러 그 자리에서 순국하였다고 합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1976년에 건립된 비 뒤로 약수터가 하나 있고 뒤로 산행을 할 수 있는 길이 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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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갈로 유명한 강경에도 도서관이 있습니다. 

저도 자주 젓갈을 사려고 강경을 와보았지만 도서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하고 매번 지나가기만 했는데요.

강경도서관은 강경의 마을정보센터와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강경도서관에는 젓갈에 관련된 내용이 많이 담겨져 있을까요. 



강경에서 시내라고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강경의 중심이 있는 근처에 강경도서관이 있습니다. 

이 지역의 도서관치고 규모는 작지는 않은 편입니다. 

 




크지는 않지만 강경 젓갈을 잘 살펴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구성한 도서관으로 채색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책을 빌리는 것이 어렵지 않아졌고 반납하는 것도 이렇게 간단합니다. 

도서관마다 책을 반납하는 시설은 조금씩 다른 것 같습니다.



2016년 선정 청소년 교양도서입니다. 눈에 익숙한 책들도 적지 않네요. 다시 시작하는 독서, 기생충 콘서트, 애들아 우리 집으로 와, 군함도,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 등 다양한 관점과 이야기가 담긴 책들입니다. 




강경도서관에는 아이들이 많은편입니다. 어른들보다 책을 빌리는 학생들이 더 많더군요. 





규모가 크지 않다고 해도 장서의 양이 적은 편이 아닙니다. 




꽂혀 있는 책들을 보니까 저도 다시 독서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독서에 길이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것이지만 저도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았거든요.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그린 그림들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아빠의 생일을 축하는것일까요. 생일선물로 소원을 하나 준다는 의미일까요.




어릴때 두발 자전거를 배우는 것이 그렇게 무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직도 성인이면서 자전거를 못타는 사람들도 있죠. 균형 잡는 것이 쉽지 않거든요. 

 



강경도서관에서는 사진도 찍고 칭찬을 먹으로 갈수도 있습니다. 강경도서관 북콘서트에 오면 사진도 찍고 추억도 남길 수 있습니다.




2층으로 올라오면 강경젓갈장터 정보화마을이 있는데요.

이곳에서 정보화교육도 하고 컴퓨터도 사용해서 간단한 교육이나 업무도 할 수 있습니다. 





조용한 가운데 컴퓨터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정보화 센터에 있었습니다.



정보화센터는 아쉽게도 주민에게만 열려 있는 것 같습니다. 평일은 일반 업무시간과 비슷하게 이용할 수 있구요. 말만 잘하면 외지사람도 이용은 할 수 있다고 하네요. 






공부하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언젠가는 기회가 올겁니다. 물론 전부가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일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강경 도서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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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사연이 담겨져 있는 천흥사지 당간지주는 원래 천흥사가 얼마나 큰 사찰이었는지 알려주는 표식이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당간지주란 절에 행사가 있을 대 절 입구에 걸어두는 당이라는 깃발을 매다는 장대입니다. 천흥사지의 당간지주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을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의 뒤를 쫓아서 올라가보았습니다. 

이곳에서 사신지 오래되었는지 당간지주를 그냥 지나쳐서 가시더라구요.  




당간지주로 올라가는 길에는 고목이 한그루 있는데요. 비탈길에 살짝 걸쳐서 자라고 있는데요. 시간이 지나면 멋스럽게 자리잡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간지주가 있는 공간은 너른 곳에 있어서 마을 입구에서 여유를 주는 것 같습니다.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는 보물 제 99호로 지정되었으며 높이는 3m정도인데요.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당간이라고 하면 쉽게 말하면 깃밧을 달아놓을 수 있는 기둥을 의미합니다.




천흥사지 당간지주는 60cm간격으로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습니다. 

기단은 흩어져 있던 것을 복원하였는데 기단 주위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는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234번지에 있습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안쪽면에 조각은 없고 아래쪽 기단은 조금 부서져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완이 필요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기단에는 구름문양처럼 보여지는 것이 새겨져 있는데요. 

인간이 이룩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닳아가면서 그 흔적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당간지주는 아까 길가에서 본 주민의 집 바로 옆에 세워져 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조금은 멋스러운 것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주변을 정비하면 조금더 낫지 않읆까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전국  사찰의 당간지주를 많이 보긴 했지만 이렇게 주택가안쪽에 들어가 있는 당간지주는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천흥사가 있던 자리에서 출토된 관음상은 온화한 표정이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고 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이곳에서 많이 거주하는 것 같았는데요. 젊을때의 삶을 꽃이라고 하면 늙으면 지혜라는 은은한 향이 나는 것 같습니다. 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자신이 가진 꽃을 낭비하는 것이 아닐까요. 천흥사지 당간지주를 보고 내려오면서 묘한 생각만 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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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에는 문화유산이 많이 있는데요.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곳이 많아서 찾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서울이나 인천이 아닌 강경에 화교학교가 어떻게 세워졌을까요. 옛날에는 그만큼 강경이 이지역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하고 강경에 근대문화유산이 많은 것을 보면 이곳이 무역의 거점으로 활용되던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경의 화교학교로 들어가는 길을 찾는 것이 쉽지가 않은데요.

강경초등학교의 건너편에 조그만한 골목으로 들어가야 강경화교학교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식당옆쪽으로 들어가니 화교학교가 눈에 띄입니다.



아주 옛날에 중국을 가본 기억이 있어서 건물들의 색채를 조금은 알고 있거든요.

중국의 시골에 갔을 때 보았던 건물과 느낌이 비슷합니다.


그래도 옛날 건물들이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요즘에는 화교라고 따로 부르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요. 화교란 중국과 타이완의 국적을 가진 자로 해외에 정착하여 거주하는 중국인이나 그 후손을 의미합니다.


생각보다 부지가 넓은 편입니다. 학교가 맞긴 한것 같은데요. 

이곳에는 교직원이 묵을 수 있는 숙소도 따로 만들어져 있고 실습동과 화장실, 본 건물들이 보존되고 있는 상태인데 이곳을 잘 활용하여 관광자원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1925년에 신축된 강경지역 근대 상권의 흥망성쇠를 엿 볼 수 있는 상징적 건물입니다.  교사는 전면에 복도를 둔 목조 건물로 흰색 출입구가 아치형을 이루는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택은 부부 교사가 지내던 공간과 독신 교사가 지내던 공간이 따로 나누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학생들이 다니던 곳이라서 시멘트와 철골로 만든 미끄럼틀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요.

이런 미끄럼틀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탈수는 있는 것인가요.  


보통 화교들이 있는 곳을 연상하면 인천의 차이나 타운을 연상합니다. 

한국은 다른 국가와 달리 화교들의 영향력이 크지는 않은 편입니다. 해방직후와 한국전쟁 이후에 적지 않은 화교가 있었으나 지금은 대략 5만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아까본 시멘트 미끄럼틀입니다. 이곳에서 미끄럼을 타면 엉덩이가 다 까지거나 옷이 모두 닳아서 없어질 것 같네요.  



벽도 얇고 전체적으로 난방이 잘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에 사시는 분들이 이곳에서 소규모 경작을 하는지 밭이 조성되어 있더라구요. 




저곳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화교 본건물입니다. 

중국의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공간입니다. 시골을 가더라도 분교도 저런식을 지어지지는 않거든요. 




안으로 들어오니까 더욱 중국스러운 느낌이 납니다. 책상과 의자가 함께 있는 형태인데 보통 이런 형태는 초등학교나 중학교가 아닌 대학교를 가야 볼 수 있는데 아주 옛날에도 이런 형태로 만들어진 것을 보면 조금 신기하네요. 정면에 걸려져 있는 사진속의 인물은 한국말로 손문이라고 하고 중국 사람들은 쑨원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삼민주의로 대표되는 중국의 공화제를 창시하고, 국민 정부 시대에는 중국의 국부(國父)로 일컬어졌던 사람입니다. 타이완에서도 그는 ‘국부(國父)’로 칭송받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상하이 임시정부를 지원한 공으로 196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인들은 다른 나라와 달리 중국에 대한 애국심이 대단하다고 하더라구요. 

중국지형도가 한쪽 벽면에 걸려 있습니다. 




교실은 두개가 있는데 중간에 빈 공간 같으면서 교사들이 머물렀을 것 같은 완충 공간이 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곳은 다른 교실입니다. 아까본 것과 달리 이곳은 책상과 의자가 따로 나뉘어져있습니다.



중국인들이 모신다는 공자상이 걸려 있습니다. 


공자하면 유교이고 그의 가르침이 지금도 중국에서는 꾸준하게 내려오고 있습니다. 

강경속의 작은 중국을 만나고 싶으신 분은 이곳을 찾아가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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