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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항노화엑스포가 열리고 있는 경북 산청에 가면 기획전시로 열리고 있는 법의학 특별전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세원-원한을 씻어주고, 무원-원한을 없게 하며, 평원-원한을 잠재운다는 것이 조선시대 법의학의 핵심적인 가치였다고 합니다. 

"시체를 검험하는 것은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달려 있다. 지방의 관리 중에 친히 검시하지 않고 아전에게 맡기는 경우가 있다 하니 이는 온당치 못하다. 반드시 친히 검험하도록 하라." - 1432년 세종의 교시 

 

 

요즘에 범죄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많이 등장해서 그런지 법의학과 관련된 사람들이 TV에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요. 오늘날의 법의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200년이 조금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초기에 어떤 사람이 죽은 채로 발견되었을 때 법의학적 증거로 제출되는 내용은 주로 사인이나 사망 시각을 밝히는 정도였습니다.

 

현대 법의학의 발달은 과학 전반의 발달과 발맞추어왔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 불행하게도 당시의 의학 수준은 과학이라기보다 미신에 가까웠습니다. 현대의 법의학은 서양의학기술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19세기 들어 인간의 신체와 해골을 보다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자 관찰과 측정만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어떤 것이 있을까 하는 데 많은 관심이 쏟아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법의학은 동양뿐만이 아니라 고대에도 있었고 서양에도 있었다. 동아시아의 법의학은 유럽의 법의학보다 약 300년이 앞섰으며 중국의 법의학전문서 '세원집록'과 무원록'은 유럽과 동아시아 전역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의학서라고 합니다. 

 

법의학은 법률상 문제 되는 의학적 사항을 과학적으로 밝혀내어 이를 해결하는데 법운영에 도움도 주지만 근본적으로 인권옹호에 이바지하는 학문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전시된 책자나 기록들은 조선시대들의 것이기도 합니다. 증수무원록에서는 검험관이 하루이상 걸려 검시현장에 도착할 경우 투숙장소가 사건의 이해당사자의 집이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건과 무관한 장소를 골라 숙식을 해결하였다는 것입니다. 

 

검시에 필요한 것들은 지금과 다르지만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범죄 현장 조사에 기본 원칙은 20세기 초 프랑스의 에드몽 로카르가 간략한 경구로 표현한 바가 있습니다. '모든 범죄는 증거를 남긴다'는 지금도 모든 현장에서 적용이 됩니다, 

 

 

조선시대 검요중에서 발에 차여 죽은 남자에 대한 내용을 보면서 마치 조선만 추리소설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이렇게 다양한 법의학이 발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의미있는 기획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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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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