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집에 서재를 따로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책이 주는 가치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선 정제된 정보를 담고 있는 책의 가치는 아는 사람은 그냥 떠다니는 정보와 다르다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요즘 전국에는 작은 마을 도서관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요.

숲속의 옹달샘도서관은 고령군 덕곡면 덕문로 604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옹달샘 같은 작은 도서관도 설립 기준이 있더군요.

건물면적은 33평방미터 이상에 열람석이 6석 이상이고 자료는 1,000권 이상 되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기준에 따르면 옹달샘  도서관은 충분하네요. 


비고: 건물면적에 현관ㆍ휴게실ㆍ복도ㆍ화장실 및 식당 등의 면적은 포함되지 아니한다.
※지자체 조례에 따라 운영기준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연환경이 좋은 고령에 있는 작은 마을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길목입니다.



큰 도서관으로도 갈 수 있지만 바로 옆에 이런 도서관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 같습니다. 미래를 이끌어 갈 인재 양성 교육이나 이 부근에서 워크숍이나 포럼 등의 교육 및 행사를 진행하면 좋겠네요. 



옹달샘 도서관은 독서실도 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벽에는 그림도 걸려 있습니다. 

아이가 감을 따려고 하는 모습이 익살스러워 보입니다.



성인이 올만한 도서관이라는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차분히 앉아서 책을 읽고 사람들과 의견을 토론할만한 분위기입니다. 



공식 도서관 처럼 책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수천권은 되어 보입니다. 




작은 도서관 진흥법의 1조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제1조(목적)

이 법은 작은도서관의 진흥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지식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생활 친화적 도서관문화의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많은 분들이 이용하고 많이 사랑해주고 아껴주면 이곳도 오래도록 지역민들의 보금자리가 될 듯 합니다. 



옹달샘 도서관에 꽂혀 있는 책 한권을 꺼내 봅니다. 2010년 우수 학술도서로 지정된 도서라고 합니다.




다른 지역의 수많은 작은 도서관에서는 문화 프로그램뿐만이 아니라 꿈다락 문화학교, 북콘서트, 인문 놀이터등이 운영되고 있는데요. 숲속의 작은 옹달샘 도서관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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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든것을 사랑하는 사람 쩡은&참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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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내에서도 외곽지역에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곳에 자리한 만남재는 조선시대의 재실입니다. 지금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8홀 지정된 곳입니다. 1670년에 선산을 지키고 있는 문중의 최회소로 사용되기 위해 건립된 곳이라고 합니다. 




고령군에 이런 건물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만남재라는 이름의 의미가 조금 남다른 것 같습니다. 

 



만남재는 고령박씨(高靈朴氏)의 중시조 청하공(淸河公)의 고향인 평지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어사  박문수(朴文秀) 선친의 묘가 봉안되어 있는 곳 바로 아래 있는 재실이 만남재입니다. 




만남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현재 ‘嘉慶十八年癸酉六月日(가경18년계유6월일)’의 명문(순조 13년, 1813년)이 적힌 기와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만남재라는  건물의 배치는 토석담장을 돌린 장방형 일곽 전면에 솟을삼문이 있습니다. 정면에 보이는 건물의 중앙 2칸은 우물마루를 깐 대청이고 좌·우협칸에는 온돌방 1칸씩을 두었으며, 대청과 온돌방 앞쪽에는 반칸 규모의 툇마루가 있습니다. 


 


보다시피 만남재 정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차랑이라고 보기에는 조금은 이상해보이는 텅빈공간이지만 주차하는데에는 무리는 없습니다. 


 


이곳 만남재의 구조는 5량가의 소로주장집이다. 전면의 평주는 모두 원주이나 나머지는 방주를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어사 박문수의 흔적이 이곳에도 이어진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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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든것을 사랑하는 사람 쩡은&참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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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유명한 곳에 가면 모두 박물관이 한 곳씩은 있습니다.

서울, 공주, 부여, 경주등 모두 한 국가의 수도가 있던 곳이죠. 고령군은 잊혀져서 잘 알려진 것이 없는 대가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맑은 날 대가야 박물관의 입구로 들어가봅니다. 대가야박물관이라는 글씨가 옛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입구에 들어오면 대가야의 기념품과 대가야 우륵의 가야금이 가장 먼저 맞이합니다. 

 


마침 5월달에는 제주도를 주제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더군요. 아름다운 섬, 제주의 사람들의 자연의 여유속에 감춰진 탐라문화를 보여주겠다는 것인데요. 제주도는 물이 구하기 어려워서 용천수가 있는 곳에만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합니다. 

 


제주도가 지금까지 독자적으로 남아 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제주도는 예전에는 탐라국이었답니다. 

 


다소 원시적인 모습일지는 몰라도 옛날에는 이렇게 생긴 투망을 가지고 고기를 잡기도 했다고 합니다. 


 


제주는 마을마다 그 지역을 지키는 오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름은 마을의 공동자산으로 목재와 땔감, 지붕을 잇는 띠, 약초의 생산지로 이용되기도 했던 곳입니다. 



제주도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2층으로 올라오면 비로서 대가야 대해서 접할 수 있는 대가야박물관이 나오네요. 

 


대가야읍 회천변의 알터마을 입구에 위치한 가로 6m, 세로 3m 정도 되는 바위면에 새겨져 있었다는 장기리바위그림입니다. 그림은 나이테 같은 둥근 동심원과 마치 깃털이 달린 네모진 가면 모양의 그림이 여러개 있스빈다. 



고령의 옛땅이었던 곳에 가야국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가야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삼한의 작은 나라들이 모여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요. 이때에 고령의 반로국이라는 나라가 가라국이 되었고 후에는 대가야국으로 불리워졌다고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자연속에서 만들어지는 도구들만 가지고 다양한 활동을 했었습니다. 


 


그릇받침도 이렇게 그럴듯하게 만들어서 사용했었습니다. 




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재료들이 필요합니다. 철가루, 숯, 사철등이 필요한데 그것들을 가지고 화려한 청동기 및 철기문화를 꽃피운 겁니다.   



고령박물관 위쪽을 가면 철을 만들기 시작할때의 모습ㅇ르 재현해놓은 것이 있습니다.

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까운 철광산에서 철광석을 캐와 잘게 부수는 등의 작업이 필요합니다. 




백제나 신라의 토기는 많이 본적이 있는데 대가야의 토기를 이렇게 많이 접하게 된 것은 처음이네요. 대가야가 차지했던 영토에서 나온 토기는 신라나 백제와 구별되는 토기들이 출퇴되었다고합니다. 



사람에게도 전성기가 있듯이 국가에도 전성기가 있습니다. 전성기의 대가야는 합천, 거창, 함양, 남원 등 넓은 지역에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대가야의 토기에는 대왕이라는 글씨와 하부사리리라는 글씨가 새겨진 것이 있는데 수도 고령에 있는 대왕이 하부라는 지방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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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은 그다지 크지 않은 곳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중심에서 조금만 움직이면 주변에 대부분의 볼거리를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대가야 문화제가 이렇게나 오래 되었나요. 제1회 대가야 문화제를 찍은 사진을 보니 년도가 1967년이네요. 



당시에는 미스대가야도 같이 뽑았나 봅니다. 고령군내를 미스대가야를 태운차와 앞뒤로 사이드카가 호위하면서 카퍼레이드를 했었던 것 같습니다. 

고령군의 중심에는 고령종합시장이 있습니다. 

고령종합시장은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잇는데요. 오일장입니다. 




5일이 되지 않아도 영업을 하는 곳은 있더군요. 원래 이곳은 조선시대 고령 관아 관문 밖에서 개시되었떤 읍내장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시장이라서 역사적으로 보면 상당히 오래된 것이죠. 

 


고령종합시장은 매 4일과 9일에 열린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고령옥미, 무공해 쌍림딸기, 개진감자등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고령군에 있다고 해서 작은 것은 아닙니다. 대지 면적 9,930㎡, 연면적 2,493㎡ 규모이며 266개 점포이니 규모가 작은 것은 아니죠.  




고령 종합시장을 보고 나오니 어디선가 많이 본 돌이 보입니다. 



이 돌은 사찰의 법회나 의식이 있을 때 당을 걸었던 긴 장대를 당간이라고 하며,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세운 2개의 돌기둥으로 당간지주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당간지는 통일신라시대 중기인 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는 314cm 입니다. 이렇게 공개되어 있어서 그렇지 단정하고 아담하여 조각 솜씨가 뛰어난 당간지주로 평가된다고 합니다. 

 


고령군내에서 조금 옆으로 벗어나오면 주변의 주요 관광지와 자연휴양 및 체험장의 위치와 리스트를 확인할 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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