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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는 정말 오래 생존하는 나무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일본을 갔을때에도 1,000년이 훌쩍 넘는 은행나무를 본 기억이 저에게 생생합니다. 일본을 갔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을 훌쩍 넘었습니다. 언제 해외를 나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가게 된다면 백제사람이 심었다는 그 은행나무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간혹합니다. 

 

대신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 찾아가기도 합니다. 제가 차가 없기 때문에 아들에게 부탁을 해서 이동을 하곤 합니다. 이곳은 금산의 보석사라는 곳으로 생각날때마다 찾아가는 곳입니다. 가을의 노란색이 물들때도 좋지만 흰 눈이 내렸지만 나무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이는 지금도 괜찮습니다. 

보석사는 은행나무로 잘 알려진 사찰이지만 이 부근에서 금이 났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사찰이기도 합니다. 창건 당시 절 앞산에서 채굴한 금으로 불사을 주조했기 때문에 보석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을 버텨낸 보석사는 창건주 조구가 제자 5인과 더불어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상징하는 뜻에서 둥글게 여섯 그루를 심은 것이 하나로 합해졌다고 합니다. 어떻게 여섯 그루가 하나로 합쳐질 수 있었을까요. 

지금의 사찰은  885년(헌강왕 11)에 조구(祖丘)가 창건하였을때의 모습은 아닙니다. 오래전에는 금산이 전라북도로 속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1912년부터는 31본산의 하나로서, 전라북도 일원의 33개 말사를 통괄한 것을 보면 금산이라는 지역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눈이 내린날 이곳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요즘에 갑자기 추워져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 좀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보석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1839년 5월에 금산 군수가 절 입구에 세웠다는 의병승장비(義兵僧將碑)는 공주의 청련암(靑蓮庵)과 보석사에서 무예를 익힌 뒤 임진왜란 때 왜병과 싸우다가 전사한 승병장 영규의 순절비입니다.  

저도 혼자서 살게 된 것이 오래되어서 그런지 마음의 평안을 얻는 곳이라면 자주 찾아다니는 편입니다. 금산의 보석사에는  대웅전·진영각·심검당(尋劒堂)·산신각·응향각(凝香閣)·체실(體室)·요사채 등이 남아 있는데요. 대표적인 건물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다포집 맞배지붕이며, 법당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관세음보살·문수보살의 좌상(坐像)을 모셔두었습니다.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는 않지만 이곳에 머무시는 스님들이 추운 겨울날에 방안에 있을듯 합니다. 

조용하면서도 은은한 종소리가 이곳에 울리고 있었습니다. 바람에 울리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조용하게 걸어봅니다. 

낮에도 밤에도 불을 밝혀줄 것만 같은 돌로된 석등이 보석사의 경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찰을 가도 저런 석등을 볼 수가 있는데요. 석등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매년 가을에 보석사에서는 은행나무 대신제를 열고 있다고 합니다. 금산군은 보석사 은행나무를 후대에 계승하기 위해 매년 유지보수 및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올라오는 길목에 자리한 의병승장비(義兵僧將碑)를 지나치면 보석사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무릇 석산이 있습니다. 작년에 금산군에서 예산을 투입해서 보석사와 은행나무 일원의 산책로에 꽃무릇을 심었다고 하니 올해에는 8월에 피어나 9월에 절정이 된다는 꽃무릇을 담아봐야겠습니다. 

천년 이상 금산 군민들과 함께한 보석사 은행나무는 그 역사성과 중요성을 인정받아 1990년 8월 2일 천연기념물 제36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제 충청남도에 자리한 천연기념물이 어떤 것들이 있는가 찾아보는 여행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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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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