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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에는 백제시대의 많은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요. 공주와 부여에 가장 많기도 하지만 다른 지역에도 적지 않은 백제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요. 그중에 서산에서는 서산 부장리 고분군, 기지리 유적(機池里遺蹟), 언암리 유적(堰岩里遺蹟), 여미리 유적(余美里遺蹟), 예천동 유적(禮川洞遺蹟) 등이 백제의 흔적이 나오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뜻밖에 아파트 단지와 상당히 가까운 곳에 고분군이 있어서 의아하다 생각했는데요. 서산시 음암면에 임대 아파트를 건설할 때 매장 문화재 발굴 조사를 하던 도중에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이곳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은 고분군이 마치 산책공간처럼 생각될 것 같네요. 백제 시대 분구묘는 모두 13기가 조사되었는데, 나지막한 구릉의 정상부에서 남쪽과 서쪽의 경사면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데요.  




서산 부장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환두 대도는 한성기 백제 지방 사회에서 확인되는 최고의 위세품으로, 피장자의 사회적 성격과 권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 유물이라고 합니다. 금동 관모나 장식 대도와 같은 위세품적 성격이 강한 유물은 중앙에서 하사된 물품으로서 특정한 정치적 목적성이 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남쪽에 가면 이런형태의 고분군이 적지 않게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요. 충남에서 이렇게 근거리에 친근하게 있는 고분군은 처음 만나보네요.



백제가 온전하게 하나의 국가라기보다는 지방세력들의 연합체로 구성이 되었기 때문에 위세품등을 주기적으로 하사했다고 하는데요. 백제 중앙과의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성장하여 5세기 대에는 서산 지방 일대의 대표적인 세력으로 성장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멀리 펼쳐지는 서산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곳입니다. 지방 사회에 대한 계층화를 유도함으로써 일원화된 지배 체제를 구축하면서 서산의 주요 세력을 백제 왕의 권위속에 귀속시킨 흔적입니다. 






백제 금동관, 환두대도 등 1677점의 유물과 241기의 유구들이 나온 서산부장리 고분군은  당초 아파트건립 예정지였던 이곳은 2005년 11월 문화재 발굴조사과정에서 청동기시대와 백제시대 유물들이 많이 나와 2006년 11월6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7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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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중리동에 오래 살아봐서 잘 알지만 중리동은 계획된 단독주택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곳입니다. 지금은 30년이 넘어서 주택들이 노후화되었지만 새롭게 재건축등을 하면서 조금씩 바뀌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중리동에 어머니가 계셔서 가끔 오기는 하지만 옛날에 학교를 다닐때는 수없이 오고가고 했던 공원이 중리근린공원이었는데요. 그때는 둔산동도 없어서 대형공원이 대전에 많지가 않았습니다. 





어릴때는 중리근린공원이 참으로 크게 느껴졌는데요. 요즘에는 근린공원이 잘 조성된 곳이 많아서 작게 느껴지지만 지금도 와보면 무언가 고향에 온 기분입니다. 

 




체육의 생활화와 국민의 체력·정신력 강화로 국력배양 및 여가생활의 활용을 위한 공간이 근린공원인데요. 원래는 체육공원으로 불리다가 1991년부터 체육청소년부의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한 정책수립 때 근린공원으로 그 명칭이 바뀌게 됩니다. 




당시 게이트볼이 익숙하지 않았을때 중리근린공원에는 게이트볼장이 만들어졌는데요. 어릴때는 게이트볼이 참 신기했습니다. 나이드신 분들이 주로 하는 스포츠중 하나죠. 




중리동에서 가장 큰 규모의 근린공원이라고 볼수 있는 이곳은 1983년 보완지침에 따라 인구 10만 이상의 도시에 1개 이상의 공원을 조성하여 전국 각지에 공공시설·직장체육시설·민간영리시설·민간비영리시설의 형태로 지어지면서 만들어진 곳입니다. 




저도 어릴때 이곳에 와서 약수를 많이 떠 간 기억이 납니다. 구봉약수터로 하루에 6번씩 시간마다 물이 나오는데요. 물맛이 좋기로 유명해서 주변 분들뿐만이 아니라 옛날에 이 물을 마셔보신 분들은 다시 찾게 된답니다. 




평일 낮시간에는 주변에 거주하시는 노인분들이 이곳으로 나와서 담소도 나누고 가볍게 몸을 풀고 계십니다. 




공원이라는 모두가 같이 이용하는 공공의 공간을 이용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것이 있습니다. 






생활체육시설과 농구장, 족구장등으로 활용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요. 옆으로는 최근에 만들어진 체육시설을 이용하시는 분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오늘 평행봉을 했습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해본 평행봉입니다. 처음 평행봉은 독자적 종목으로 개발되었다기보다는 안마 종목을 잘해내기 위한 근력 운동 기구로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1811년에 얀이 베를린 교외의 하젠하이데 체조 경기장에 평행봉을 설치하면서 오늘날의 평행봉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저도 이곳에서 농구를 참 많이 했었습니다. 지금이야 농구에 대한 관심이 많이 멀어졌지만 중학교 다닐때는 친구와 이곳에서 농구를 하면서 땀을 흘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네요. 날이 시원해져서 나들이하기가 좋은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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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대덕구 신탄진로 756번안길 218-1에 있는 신탄진 체육공원은 신탄진에 거주하시는 체육인들에게는 잘 알려진 공간이지만 신탄진에 거주하지 않은 분들은 안쪽 외진곳에 있어서 잘 모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도 이번에 처음 그곳에 체육공원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신탄진체육공원으로 가는 길은 대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탄진 정수사업소로 올라가는 도로를 따라 더 올라가야 합니다. 




신탄진 체육공원에서 가장 큰 공간은 축구장이고 그 외에도 테니스장과 족구장을 비롯하여 주변으로 지압을 해볼 수 있는 길과 산책로가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신탄진 체육공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위로 걸어서 올라가야 합니다. 오늘은 참 계단을 많이 오르고 내립니다. 




위로 올라오니 탁트인 공간속에 큰 규모는 아니지만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체육공간들이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신탄진 체육공원이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다른 이름으로 신탄진정수사업소 체육공원으로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며 편의시설로 화장실과 음수대가 있습니다. 이곳을 이용하시기 위해서는 팩스신청을 하시면 됩니다. 이용료는 무료입니다. 


문의전화 042-715-6516



기본적인 편의시설과 마실물이 준비되어 있어서 운동하는데 편리한 곳입니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탄진로756번안길 223(용호동)에 있는 이곳을 대중교통으로 가기 위해서는  간선(703번, 704번, 705번) 지선(712번), 급행(2번) 신탄진 하차 외곽버스 71번을 타시면 됩니다. 



이용신청을 했지만  천재지변, 우천 등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사용이 불가능하게 된경우 사용취소.변경이 될수도 있습니다. 




사각형정자를 중심으로 둘레길이 조성이 되어 있는데요. 전체를 한 바퀴 다돌아보는데에 걸리는 시간은 20여분 정도입니다. 




이곳에만 왔을뿐인데 벌써 가을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가을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네요. 



지압길인데 한 여름에는 너무 뜨거워서 돌에 발을 디딜 수 있었지만 9월이 되니 지압길도 걸어볼만하네요. 지압은 체내의 에너지가 "자오선(子午線)"을 따라 흐른다는 것을 개념으로 삼고 있는데요. 물리적인 압력을 통해 자오선을 막고 있는 것을 없앤다는 것이 치료의 개념으로 발로 하는 지압은 보통 체중을 이용하여 합니다. 






시설이 만들어진지 오래되어서 조금은 노후화되었지만 이용하는데에는 별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저 곳이 바로 신탄진 정수사업소입니다. 대전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大田廣域市 上水道事業本部, Daejeon Metropolitan City Waterworks Authority)는 대전광역시의 수돗물의 안정적 공급과 급수 서비스의 향상을 위하여 대전광역시청 산하에 설치된 사업소로 대전에는 월평동과 송촌동, 신탄진에 정수사업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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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化城面) 구재리에 있는 상의사에는 채제공 선생의 초상이 있습니다. 채제공의 영정은 현재 4본이 알려져 있는데요. 나주(羅州)미천서원(眉川書院) 소장의 흑단령본(黑團領本)은 분실되어 지금은 사진만이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채제공 선생의 영정이 있다는 청양의 상의사는 보령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화성중학교를 입력하고 찾아가셔도 갈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정승을 지낸 번암 채제공(1720~1799) 선생은 화성면 구재리가 고향으로 79세의 생애동안 영조와 정조라는 뛰어난 두 국왕이 이끈 국정의 중심에서 의미 있는 여러 개혁을 주도한 조선시대의 명재상이었다고 합니다. 




관련된 분들을 비도 옆에 세워져 있는데요.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 것들입니다.




청양 상의사에 있는 채제공의 초상화는 특히 정조대에 절정에 달했던 사실주의적 시각 표현의 한 극점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관복 표현은 그런 모습을 더욱 잘 보여 준다. 즉 금관(金冠)과 그 양(梁)의 정교하고 세밀하다고 합니다. 




드라마등에서 간혹 표현된 채제공 선생을 접해본 기억이 있습니다. 

 




세종 대에는 명재상 황희의 도움으로 화려한 세종 문화가 이룩되었고, 정조 대에는 명재상 채제공(蔡濟恭)의 도움으로 조선의 르네상스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채제공의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 번옹(樊翁)입니다. 1720년(숙종 46)에 지중추부사 채응일(蔡膺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주변은 정비가 잘되어 있는데요. 매년 이곳에서는 청양군과 이 지역의 유림들이 참석해서 제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백성의 어려움을 돌보고 세상의 의리를 올바르게 세우기를 바랬던 채제공 선생의 혼이 이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채제공 하면 독상(獨相)으로도 유명합니다. 실록에는 “여러 해 독상을 지내 백 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독상이란 가장 높은 관직인 삼정승, 즉 좌의정, 우의정, 영의정 자리에 다른 정승 없이 홀로 국정을 살피는 것을 말합니다. 

 



영정이 안에 있지만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채제공 선생의 명성은 이미 익히 잘 알기에 그 사람을 생각해봅니다.





한림(翰林)의 권지(圈紙)를 들여오라고 명해 특별히 채제공에게 2개의 어점(御點)을 치고 소시(召試)에 응하라고 명했다. 채제공은 권점이 없었는데 바야흐로 기주관(記注官)으로 입시했으니 그의 재능을 아까워해서였다.



《영조실록》 권68, 영조 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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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에서 보령으로 바로 갈 수 있는 도로가 뚫리고 나서 정산면을 갈일이 거의 없어졌는데요. 정산면에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서정기 구층석탑과 향교를 비롯하여 마을 공동제의인 정산동화제가 전승되고 있는 곳입니다. 



지인이 잠깐 만나자고 해서 정산면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정산에 왔으니 서정리 9층석탑을 안보고 갈수는 없겠죠.




여름이 거의 지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잎과 연꽃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청양정산 백련지는 400년간 지켜오다 2000년 정산면사무소 보수공사를 하다가 이곳에 백련을 옮겼는데 이식이 불가해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다가 토종 작물로 연꽃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서정리9층석탑 주변에 복원되었습니다. 



그리높지 않은 산들을 뒤에 배경으로 두고 있어서 그런지 서정리9층석탑은 우뚝 서있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문화재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매번 이 석탑을 보면 전체적으로 참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한국에 현존하는 9층탑은 오대산 월정사의 팔각구층탑과 정산리 9층석탑뿐이라고 합니다. 탑의 아래에 세밀하게 새겨져 있는 층을 보면서 그 단단하다는 한국땅의 돌을 조각하는 우리 선조들의 기술력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이제 서서히 연꽃도 저물고 있습니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가네요. 올해가 4개월도 안남았습니다. 좀 있으면 겨울이라고 해서 크리스마스 노래가 울려퍼지겠네요. 





시간이 지나가고 나서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근처에 있는 정산도서관으로 발길을 했습니다. 





정산도서관에서는 9월 프로그램으로 할핀을 이용한 움직이는 동물 관절 인형만들기가 진행이 되는데요. 9월 18일저녁 6시부터 8시까지 진행이 되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정산도서관으로 전화문의 및 방문접수를 하면 됩니다. 




어린이도서관 및 도서관 시설은 6시까지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열람실은 9시까지 이용할 수 있으니 공부하고 싶은 분들은 이곳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책 한잔 어때라는 문구가 참 의미있네요. 9월은 독서의 달로 술 한잔이 아니라 책 한 잔을 해보세요. 맛있어서 머리가 맑아지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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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의 청소년들만을 위한 공간인 곳이 있습니다. 보령 시내에 자리한 보령청소년문화의 집은 방과후와 주말에 많은 청소년들이 방문해서 놀고, 즐겁게 배울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마련이 되어 있습니다. 



자녀가 있는 어른들이 아니면 이곳에 보령청소년문화의 집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를겁니다. 1995년에 사단법인 대한불교 청소년교화연합회 보령지부가 설립되고 나서 청소년지원센터로 운영되다가 지금의 청소년문화의 집으로 걸어왔습니다. 



여성가족부와 관련있는 이 시설은 보령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보령시 청소년자원센터꿈드림, 보령시 청소년문화의 집, 보령시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 보령시 청소년자원봉사센터가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층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바로 우리가 여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여는 세상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1층 안내 데스크에 가서 청소년지도사 선생님께 사용하고자 하는 시설에 문의한 후 신청서를 작성하면 이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곳은 보령시 청소년활동 거점기관으로 청소년들만을 위한 공간입니다.



2018년 지역사회 주말행복배움터는 토요일에 만나볼 수 있는데요. 오는 9월 8일부터 청소년 어울림마당, 나만의 악세사리 만들기, 나만의 드림캐쳐 만들기, 씨네톡톡, 요리교실, 놀이 한마당, 넵킨아트, DIY목재공작소등의 프로그램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1층은 작은 도서관이자 청소년들이 쉼을 해볼 수 있는 장소로 활용이 되고 있습니다. 이곳의 도서는 청소년들에게 우선 제공이 됩니다. 

 



아직도 핫한 책들이 책장을 채우고 있습니다. 책은 만화책이던 일반책이던간에 많이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DVD등을 빌려 이곳에서 감상할수도 있습니다.  




2층에는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댄스교실부터 고민이 있을때 신청하면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상담실등이 있습니다. 

 




제가 자랄때만 해도 학생증은 그냥 학생임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었는데 지금의 청소년증은 증하나로 교통카드부터 시작해서 가맹점에서 결제를 할 수 있는 기능도 제공이 되고 있습니다. 레일플러스, 원패스, 캐시비등 대부분의 대도시와 도에서는 모두 사용이 가능합니다. 





보령시청소년문화의 집에서는 9월과 10월의 무료 프로그램으로 우리문화(민화)를 품다, 청소년 차문화 교실, 만세보령 역사보물찾기, 미니어처 미이정원, 요리교실, 재난안전교육, 스쿨오브 기카교실, 청소년 창작도예교실등이 준비가 되어 있으니 궁금한 청소년들은 문을 두드려보길 바래요.





청소년들이 만든 작품들입니다. 모양도 제각각이고 어디에다가 사용해야 할지 모르는 물건들이지만 청소년들이 그런것이 아닐까요. 미래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가능성이 있기에 의미있는 것이죠. 


시설이용


하절기(3월~10월) 평일 10:00 ~ 21:00/주말 10:00 ~ 18:00

동절기 (11월~2월) 평일 10:00 ~ 21:00/주말 10:00 ~ 18:00

연락처 041-936-2096,2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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짦은 장마가 저 끝으로 물러가고 난 뒤에 인취사에서 보는 것은 여름이 끝나는 날의 서정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매미소리도 많이 줄어들고 주변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요. 백로가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날이 가을의 그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감자가 한참 나올때라 전통시장에 가면 흔하게 감자들을 볼수 있는데요. 이때쯤에 요리를 해서 먹으면 가장 맛이 좋죠.  



아산에 자리한 인취사는 처음 와보는 곳입니다.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열기가 확 끓어올랐던 여름의 열기가 잠잠해지니 돌아다닐만해서 올라가봅니다.



아산의 인취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여름에 연꽃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합니다. 경내에 있는 삼층석탑이 지방문화재 자료 제235호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인취사는 무엇보다도 연꽃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합니다. 연꽃은 한 여름 무더위에서만 핀다는 연꽃은 흐린 물에서도 고결한 향기를 풍기는 꽃입니다. 





직접 올라와보신분들은 알겠지만 인취사는 시원시원한 경내와 경치가 멋진 곳입니다.



바로 이곳이었군요. 인취사의 연꽃은 호수같은 곳이 아니라 이렇게 화단처럼 조성된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뜨겁게 끓는 염천의 땡볕 아래서 홍련과 백련이 두 손 모으고 합장하듯 고요하게 꽃 몽우리를 틔워내고 있네요. 



인취사의 연꽃은 전국에서도 인취사-연꽃이라고 따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인취사 연못에 피는 백련은 꽃잎의 순백색이 맑고 깨끗하기로 이름났는데요. 인취사의 백련이 전북 김제의 청운사로 건너가 ‘하소백련’이란 이름이 붙었을 정도입니다. 




인취사 석탑은 강화 석재로 만들어진 3층 석탑으로 기단부는 땅속에 묻혀 있고 갑석만 드러나 있는 형태입니다. 상륜부에는 네모반듯한 모양의 노반과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돌을 보주 자리에 얹어둔 형태입니다. 





인취사에 모셔진 석조 아미타 삼존 불상은 인취사 극락전에 모셔져 있는 삼존 불상으로 주존불인 아미자 석조 여래 좌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관세음 부살과 오른쪽에는 지장보살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고려때 몽고의 침입과 왜구의 침노등이 있었는데요. 그때 인취사의 관세음보살은 백성들에게 이승에서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권능을 갖춘 존재였으며 지장보살은 지옥의 고통에서 건져 주는 존재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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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면은 당진시의 중심지에서 떨어진 곳에 있지만 볼것도 많고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면천면에는 오랫동안 그 곳에서 살아오는 사람들의 끈끈한 정이 있는 곳입니다. 면천면의 주민자치위원회에서는 매년 2회 정도 면천면의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면천면의 사람을 길러냈던 면천향교는 많은 분들이 오가는 곳입니다. 당진시의 다른 향교보다 뻥 뚫린 곳에 있어서 시원시원한 느낌의 분위기의 향교입니다. 

 




면천향교가 있는 면천면은 고대 사회로부터 당진의 중심 고을로 통했던 지역으로 백제 시대에는 혜군에 속했으며 통일 신라 때인 제 35대 경덕왕 때에는 혜성군으로 되었다가 고려 제8대 현종 9년(1018)에는 운주에 속했던 지역입니다. 





면천향교의 안쪽으로 들어가봅니다. 면천면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이곳에 한 번 이상은 와서 체험한다고 합니다. 





면천향교는 1392년에 세워진 곳으로 충청남도 기념물 제14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면천향교가 있는 공간앞에는 한옥으로 지어진 건물이 있는데요. 이곳에서는 매년 2회씩 주민자치위원회 주도로 관애 학교의 학생들을 데리고 면천면의 역사와 그 의미에 대해 보여주고 서로 공감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주민자치가 잘 이루어져여서 지역의 역사를 공감하는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곳도 많지가 않은데요.




1박 2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면천면의 주민자치위원장의 노력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즐기는 것 같이 자신의 고향에 대해 접해보고 서로 의견을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면천향교는 오래된 향교로 이곳에서 향교를 운영하는 분들의 초상이 사진으로 걸려 있습니다. 9월 1일 당진 면천면에서 추진이 되었으니 이제 다음 프로그램은 2019년 봄이 조금 지난 시기에 진행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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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비가 많이 와서 온도가 낮아지나 했더니 아직 덥네요.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계룡산국립공원에 자리한 갑사쪽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갑사까지 갔다면 비빔밥을 한 그릇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먹거리 장터를 둘러보았습니다. 




비오는 날 계룡산 국립공원은 한적하고 조용하네요. 동학사쪽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상시 등산하는 분들이 많아서 북적거리지만 갑사쪽은 특정한 날이 아니면 인적이 드뭅니다.  



이곳에 오니 새로운 소식도 만나게 됩니다. 마곡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지나간 백중을 갑사에서 진행한다는 플랭카드도 아직 걸려 있네요. 





갑사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갑사의 산신을 모시는 그런 공간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제단에 매번 술과 향이 피워져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매일 매일을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는 분들이 있더락요. 소원을 빌며 건강을 기원한다고 합니다. 





작은 무대가 갑사의 먹거리 장터 앞에는 공주를 대표하는 고마곰과 공주가 위풍당당하게 사람들을 맞이해주고 있습니다. 

 




매번은 아니지만 공주야행이 있을때면 이곳에서 작은 공연과 콘서트가 열립니다. 그때는 이곳에 의자들이 설치가 됩니다. 



갑사에는 산행을 즐기신 분이나 저같이 한 때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온 사람들을 위한 먹거리 장터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음식점을 비롯하여 커피숍, 노래방등 20여곳이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고 나니 배가 고파집니다. 먹거리 장터의 음식점 중 한 곳을 들어가 봅니다. 공주에서는 모범음식점으로 지정된 음식점에는 이런 물통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계룡산등에서 채취된 산나물로 맛있게 버무려진 산채비빔밥을 주문해봅니다. 반찬은 단촐하지만 산채비빔밥 하나만으로도 맛이 좋습니다. 






참기름이 들어간 산채비빔밥을 먹기 좋게 잘 비벼보았어요. 어떤가요. 계룡산 국립공원에 와서 한 끼 식사하기에 괜찮지 않은가요. 





공주시는 모범업소를 지정하고 그 중에서 좋은 곳을 으뜸 맛집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지만 운치도 있고 건강한 한끼도 잘 먹고 나니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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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은 옛날에 어떤 사람들이 살던곳인지 어떤 의미가 있던 곳인지 알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최근에 금산역사문화박물관이 개관을 했는데요. 그곳은 아직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조만간 그곳으로 발길을 해볼 생각입니다. 금산의 충효예공원은 금산향교를 중심 두고 주변공간으로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금산의 옛날 분들의 흔적도 접해볼 수 있지만 이곳의 주된 컨셉은 바로 효입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은 "충과 효를 함께 실천하다"를 몸소 보여주었던 분이며 도산 안창호, 만해 한용운, 단재 신채호 선생은 모두 겨레에 대한 효를 직접 실천했던 분들입니다. 



금산이라는 지명의 연혁은 1896년 고종 칙령에 의해 충청도 공주부의 금산군과 진산궁이 전라북도에 편입이 됩니다. 지금은 충청남도에 포함이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전라북도에 속해 있기도 했습니다. 





금산군에서는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 홍범식 금산군수는 한일병합이 되자 조종산에서 목을 메어 순절을 했다고 하는데요. 전국 군수 중 유일하게 정충대절의 절개를 지킨 군수입니다. 




조선태조의 태실이 바로 금산군에 속해 있었군요. 1293년에 태실을 만인산에 봉안한 후 진주군으로 승격이 된 것이죠. 





충절의 고장 금산의 인물들입니다. 최초 천주교 순교자인 권상연과 역시 최초 천주교회 순교자인 윤지충, 조선의 선비이며 후학의 교육에 정진했던 윤선거등이 금산의 인물입니다. 





이렇게 공원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죠. 승당 임영신, 옥계 유진산, 임희재등은 금산이 오늘날 있게 한 인물들입니다. 





공원에서 조금만 위쪽으로 올라오면 금산향교가 나옵니다. 홍살문이 있고 옆에는 금산향교의 연혁을 볼 수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태실이 묻혀 있는 만큼 금산의 위상은 조선에서 상당히 큰 역할을 차지했을 겁니다. 금산향교와 금산에서 나온 인물들을 알리는 비가 빼곡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수생연못이 만들어져 있어서 한 여름의 더위를 잠시 식혀볼 수 있습니다. 



수변생태 식물도 있고 생물들도 연못 안에 있습니다. 효라는 것은 조선시대에는 80세가 중요한 기준이었다고 합니다. 세종대에도 남녀의 귀천과 신분을 초월하여 연령이 80세가 넘으면 대우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효라는 단어 하나로 모두 정리가 되는 공간입니다. 효는 상호적인 가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부모가 해야 할 도리를 다하고 자식이 자식이 해야 할 도리를 다할 때 효가 바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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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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