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충남 공주시 계룡면 구룡말길의 국도변을 지나가면 이상근 얼레빗 전수관이 있는데요. 지난 2010년 얼레빗 제작을 하면서 30년을 살았던 이상근씨가 충남도 무형문화재 인정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이상근씨는 공주시청을 찾아 이준원 공주시장으로부터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42호 공주 목소장 인정서를 전수받았다고 합니다. 



전수관은 계룡산 뒷편으로 가는 국도변에 있는데요. 목소장은 전통 우리 빗을 만드는 기능 또는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로, 이 씨는 30여년 동안 얼레빗을 직접 만들었으며, 최근에는 전수관을 설립하고, 작품 전시, 후학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곳입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 공주가 아닌 전주에서 보내시는 이상근씨는 평일에 한가해질 때 이곳에 와 계신다고 하더라구요. 면적이 꽤나 넓은 편입니다. 이런 곳에 전수관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됩니다.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고 하는데요.

전수관 주변에는 오래된 건물로 보이는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얼레빗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보통 일상용품으로 사용하던 빗으로 나무는 보통 우리 딸에서 자라나는 박달나무, 대나무, 대추나무, 도장나무, 소나무, 해송 같은 나무와 조금 고급스럽게 만들기 위해서는 대모, 상아, 뿔, 은도 사용한다고 합니다. 




마침 방문했을 때는 얼레빗 장인 분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역시 장인분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서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얼레빗이 무엇인지 말이에요. 



얼레빗이란 반달모양으로 생겨서 월소(月梳))라고도 부르는 빗입니다.

얼레빗은 빗살이 성긴 것으로 긴머리를 빗질하는 데 필수적인 빗으로 보통 얼레빗으로 대강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하는데 주로 사용하는데요.  크기는 다양하며 빗살 역시 성긴 것과 촘촘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얼레빗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목공예 제품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얼레빗은 박달나무·대나무·대추나무·도장나무·소나무로 주로 만드는데 제주도에서 나는 해송은  질병과 흉액 등 귀신을 쫓는다고 하여 인기가 많다고 하네요. 




전수관 뒤쪽에는 밤으로 유명한 공주 답게 밤나무가 빽빽히 심어져 있더군요. 

가을이 되면 이곳에 와서 밤을 따도 되냐고 물어봐야 겠습니다. 



얼레빗은 2007년 유네스코 우수공예품으로 인정받았을 뿐더러  7대째 가업으로 이어온 목소장 이상근씨는 백제문양을 많이 활용하는데 할 때마다 신라문양이나 고구려문양보다는 백제문양이 단순하면서도 아주 많은 뜻이 담겨져 있어서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조선말기 단발령을 계기로 상투가 없어지는 우리 전통문화의 변화로 인해 얼레빗의 사용도 줄었다. 앞으로 우리 전통 빗의 역사는 안타깝게도 기록으로만 남겨지지만 그 역사를 이어가는 이상근 선생님 같은 분이 있어서 우리의 전통이 아직도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느린세상걷기
:
728x90
반응형

공주의 박동진 소리 전수관은 우리의 소리를 이어가는 곳으로 잘 알려진 곳입니다. 

7월 중순에 박동진 명창 명고대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무료로 소리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명창 박동진은 공주에서 태어나 평생 판소리 외길만을 걸어온 소리꾼이죠. 

지금은 고인이 된 박동진 명창의 예술혼을 이어가기 위해 지난 2000년 박동진 소리명창 명고대회가 개최된 것이 올해로 벌써 18회를 맞이했습니다. 



판소리 단일 분야로만 놓고 보았을 때 국내 최대의 경연대회로 판소리나 고수로 자신의 경력을 쌓고 싶은 사람들의 등용문처럼 인식되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면서 우리 전통문화예술의 우수성과 소중함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있을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190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많지 않았을 때 백성들이 즐길 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거리예술이었던 판소리가 지금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접할 수 있는 분야로 알고 있지만 매년 다양한 행사로 사람들과 접점을 늘리고 있었습니다. 



박동진 선생의 흔적과 업적을 남겨져 있는 박동진 소리전수관에서 2017년 4월 ~ 11월까지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는 주제로 판소리 무료강습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무료로 체험할 수 있으니 참여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제비 보일러 나간다는 박동진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소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이며 축복이여! 평생을 해온 것인데 하루라도 소리 연습을 안 하고 밥을 먹으면 죄를 짓는 것 같아!  - 인당 박동진 







박동진 선생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국창이었습니다. 





 7월 14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되는 이행사에는 전야제로 하루 전날인 7월 13일 19시 30분에는 공주문예회관 대공연장에서 14주기 추모음악회도 같이 개최가 됩니다. 



박동진 판소리 선양회에서 주관하는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는 첫째 날에 박동진 선생 추모음악제가 열리는 것을 시작으로 둘째 날의 초청 공연과 경연 예선, 마지막 날에는 본선 경연을 벌인 후 특별 공연과 시상식 및 폐회식을 합니다. 




마지막 날에는 판소리와 고법 예선을 통과한 사람들끼리 본선 경연을 벌이는데 순위에 들어온 명창부는 대산,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이 수여되고 다른 부문은 장원,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이 수여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소리꾼에게 가장 큰 대회이니만큼 명창부 대상에는 대통령상, 최우수상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명고부 대상에는 국무총리상이 각각 수여가 됩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느린세상걷기
:
728x90
반응형

현재에는 사용하지 않는 다리인 원목다리는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있는 조선시대에 만든 3칸 규모의 돌다리입니다. 원항교라고도 불리는 이 다리는 1973년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제 제 10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논산시내로 가는 국도변에서 원목다리로 가는 안내판을 보고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가뭄이 심하다고 하는데 이곳은 그래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논산은 고요하고 풍요로운 것 같습니다. 논에 물을 대놓은 것이 올해에는 잘하면 풍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원목다리는 양끝을 처지게 하고 가운데는 무지개처럼 둥글고 높게 만들었습니다. 고종 광무 4년(1900)에 홍수로 파괴된 다리를 민간인과 승려들이 돈을 모아서 다시 놓았습니다. 



원목다리였다는 것을 알리는 비석으로 보이는 곳에는 세월의 흔적으로 글씨 같은 것은 지워진 상태였습니다.



전라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구분하던 논산 원목다리는 조선시대 은진과 강경을 연결하는 다리로 총 길이 16m, 너비 2.4m, 높이 2.8m 규모로 3칸의 홍예(虹霓)로 이루어졌습니다. 가장 높은 가운데 홍예의 종석(宗石) 양쪽 끝에 용머리를 새겼고, 홍예 사이의 바닥에는 치석재(治石材)와 잡석(雜石)을 섞어 채웠다고 합니다. 



원목다리를 조심스럽게 올라가 봅니다. 

아주 튼튼하네요. 



마침 논산의 하늘을 날라가는 새 한마리가 눈에 띄입니다. 철새처럼 보이는데요. 자유로워 보이는 것이 좋습니다. 




하천 위로 물길을 연결하는 농수로가 보입니다.




원목다리 뒤로 지나가는 기차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기차 여행을 즐기시는 분들은 이 원목다리를 주의깊게 살펴볼까요. 



하루에 받을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적이니까 그중에서 가장 좋은 에너지만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위에 서니 바람이 붑니다. 바람은 볼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조용하게 있다보면 바람이 보이는 느낌입니다. 실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앞의 풀에 흔적을 남깁니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돌다리를 만났을 때 그냥 지나 가려고만 하지 말고 천천히 살펴보기를 오늘 하루 나에게 찾아온 일들 모두에게 감사하며 하루를 보내봅니다. 


새는 날려주고 씨는 뿌려주고 꽃잎은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하네요. 



728x90
반응형
Posted by 느린세상걷기
:
728x90
반응형

지금은 스크린에서 찾기 힘들지만 추상미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 있습니다. 추상미가 출연한 영화 미소에서 고령군의 고아리에 있는 벽화고분이 등장합니다.  입구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과 산책로를 따라 7-8분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고령고아리 벽화고분은 고분이지만 석빙고처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철문이 있습니다. 문이 있는 앞쪽으로는 돌이 성벽처럼 맞물려 고분을 지탱하고 있으며, 봉분이 안으로 약간 들어서 있는 형태입니다. 



이번이 두 번째로 가보는 벽화고분길입니다. 고분이 있기는 하지만 산책로로 괜찮는 곳이기도 하죠.




고아리 벽화고분이 있는 곳에는 고령상무사기념관도 있습니다. 2008년 4월 14일 설립된 고령상무사기념관은 고령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조선부보상단의 유업을 기리고, 지역 상인의 삶과 문화를 한자리에 모아 역사적 현장이죠. 



천천히 걸어서 위쪽으로 걸어 올라갑니다. 




계단을 한 걸음씩 밟아서 올라가다 보니 벽화고분의 속살이 조금씩 드러나는 느낌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걸어온 길이 뒤에 남겨져 있습니다. 

매번은 아니지만 가끔 뒤돌아보면 자신이 밟아왔던 길이 자신에게 도움이나 조언 같은 역할을 할 때가 있습니다.



벽화고분은 6세기 초 대가야 시대에 축조된 가야지역의 유일한 벽화고분으로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현실과 연도를 갖춘 횡혈식 석실의 구조를 하고 있으며, 현실은 동서로 터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벽화 대부분은 떨어져 나가고 연꽃그림 11개가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다고 합니다. 





고령에서 고분이  많은 곳은 대가야 고분관광로를 중심인데요. 그 곳을 중심으로 고분들이 있고 왕릉 전시관도 그 길의 중간에 자리하고 있죠.








고아리 마을을 이곳 저곳 둘러보았는데요. 강아지 한 마리가 저를 쳐다보면서 반갑다는 듯이 맞아주네요.





1963년에 발견된 고분에서 녹색, 분홍색, 갈색 등 다양한 색채로 그린 8엽 연화문이 남겨진 이 마을에는 삼강오륜도 주택의 벽에 쓰여져 있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고령군을 '2017년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했는데요. 올해의 관광도시 선정은 관광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느린세상걷기
:
728x90
반응형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과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다산 1.2차 산업단지 및 석재단지 등 상공업이 발달한 다산면에는 관광 레저와 전원생활지로 각광 받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대구에서 고령으로 건너오면 먼저 보이는 건물이 낙동강환경연구소 건물입니다. 국립환경과학원 산하의 연구소로 낙동강의 물의 생태와 환경을 연구하는 곳이라고 하네요.



어느 지역을 가던지 그곳을 알고 싶으면 면사무소를 찾아가시면 됩니다.  다산면의 주요 집성촌은 전의 이씨, 달성서씨, 행주기씨, 창년조씨가 있는데요. 10,000명이 안되는 인구로 인구는 않지만 살만한 곳이더라구요. 




다산면사무소가 있는 곳에는 주민자치센터가 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주민이 모여서 의논도 하고 회의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주민자치센터 안에는 회의 테이블이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요즘에 시골 마을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 곳이 많이 있는데요.

 다산면사무소 앞에도 벽화가 따로 그려져 있는데 연꽃문양이 남겨져 있습니다.



알림판이 있는 곳에는 고령군의 다양한 소식이 있는데요. 5월달에 바다와 정동하의 파워보컬 콘서트가 대가야문화누리 우륵홀에서 열렸던 것 같습니다. 아쉽네요.



주말에 근무하시는 공무원분이 다산면에 대해서 이것 저것을 알려주시는데요.

마을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이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면단위 공간마다 하나씩은 있다는 다산면 보건지소입니다.



마을 구석구석을 천천히 걸어가 봅니다. 




마을의  한구석에는 마치 거북모양처럼 생긴 돌이 있습니다. 누가 이곳에 이 돌을 세워놓았을까요.


다산면에는 게이트볼장, 족구장, 철새탐조대, 다산문화공원이 있습니다.



7월까지만 운영하고 그만 운영한다는 승마클럽입니다. 


 북동쪽의 넓은 평야지대에서는 주로 벼농사가 행해지며 수박, 참외, 감자 등의 작물재배와 더불어 향부자 등의 약용작물도 생산되는 다산면은 100m 내외의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느린세상걷기
:
728x90
반응형

가야에 대한 것을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현장에 가서 보는 것이 가장 좋기는 하겠지만 옛 가야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고 보관되는 곳은 박물관일겁니다.  ㄷ가야박물관은 사시사철 가야의 속살을 보여주는 곳으로 1980년에 개관했으니 역사가 오래되었습니다. 



대가야박물관이 자리한 고령이 처음 그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 때는 통일신라 757년이었다고 하는데요. 근대와 현대에서는 1895년에 고령군으로 정식으로 명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대가야 박물관에선느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는데요. 고령의 기와라는 주제로 4월 5일에서 8월 6일까지 열립니다.



세월의 흔적으로 얼굴이나 손의 형태가 거의 보이지 않지만 항상 이곳에서 사람들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언제까지 있어줄 것 같은 부처상입니다.



지금은 지났지만 5월 19일 대가야사에서 대가야의 국가발전 단계에 대한 학술회의가 열렸던 곳이 이곳 박물관입니다.



민속놀이를 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기구들이 준비가 되어 있으니 체험하실 분들은 언제든 와도 좋습니다. 





박물관 뒷편으로 오면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쉴 수 있는 공간이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박물관에 근무하시는 분들 뿐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쉴 수 있는 곳입니다. 



경상남도와 붙어 있는 고령군은 서쪽에 있는 가야산에서 대가천과 안림천의 물길이 시작되어 주변에 비옥한 평야를 만들며 흘러내리는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이쁜 꽃들이 눈에 많이 띄이는 것을 보면 나이가 들긴 한 것 같습니다.





이쁜 꽃들을 만날 수 있는 대가야 박물관은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야외전시장이 있습니다. 고령의 기와전이 열리고 있어서 기와에 대한 것을 찾아보았습니다. 고령 지산리의 모산골에서 나온 물산사(勿山寺)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나왔는데요. 현재 고령군 ‘지산리’라는 마을 이름이 물산(勿山)→물(못)산→지산(池山)으로 변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느린세상걷기
:
728x90
반응형

부여에 큰 사찰은 많지 않지만 왕실의 사찰이었던 정림사지가 남아 있어 백제여행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부여로 가서 처음 만난 정림사지는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데 백제가 사비시대를 열기 위해 부여로 도읍을 옮긴 시기(538-660)의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입니다. 지금은 건물 몇동과 정림사지 5층석탑만이 남아 있는 상태지만 백제 기술의 정수인 정림사지 5층 석탑이 있어 그것만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는 곳이죠. 



1942년 발굴조사 때 강당지에서 "太平八年戊辰定林寺大藏當草"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중건 당시 절이름이 정림사였다는 것이 알려진 곳입니다. 



정림사지로 들어가는 입구의 문고리가 눈에 띄입니다.  문고리는  여닫거나 잠그는  쓰기 위해 문틀 달아 놓은 쇠고리를 말하는데요. 어떤 사람과 만남에서 문고리를 잡고 있다는 것은 소통 채널을 막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정림사지 5층 석탑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그 절제된 균형미와 조화, 무게중심이 상당한 수준의 기술력이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이야 말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중에 가장 다가가고 싶으며 부담이 없는 유적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란 세계유산협약이 규정한 탈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을 의미하는데 그중에 백제역사유적지구가 한국의 12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백제의 독특한 문화, 종교, 예술적 기교를 인정한 것입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따라 사람들이 정림사지 5층 석탑을 자세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복원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정림사지가 조금 안타깝기는 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여유가 있어 좋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공존했던 시기에 한반도에서 무역이 가장 활발했던 국가가 어디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네요. 




무역의 중요성을 가장 크게 인지한 곳은 아마도 백제였을 것 같습니다. 문화적 교류를 비롯하여 국가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무역의 중요성을 백제는 알고 있었을 겁니다. 호전적인 고구려나 계속 생존을 걱정해야 했던 신라에 비해 백제의 문화가 화려한 발전을 이룬 기반에는 무역이 있지 않았을까요. 




정림사지 5층 석탑과 불상을 보고 전시관으로 향해 봅니다.



사비시대의 정림사는 웅장하면서 소박했고 화려하면서도 단아했다고 합니다. 절제할 때는 절제했었고 화려할 때는 기술을 마음껏 활용해서 과시하듯이 표현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백제의 흔적들을 살펴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나 작업을 함께하는 느낌입니다. 



박물관에 오면 정림사지의 발굴 당시 모습과 수십년 전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곳 박물관의 건물형태는 불교의 상징인 "卍“자 모양으로 중앙홀을 중심으로 진입로, 전시실, 관리실 등이 사방으로 뻗은 날개 모양으로 상호 연계하여 박물관을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림사지 재현되어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정림사지의 고고학적 조사 결과 백제시대의 중문, 금당지, 강당지 및 그 북·동·서편의 승방지, 회랑지 등이 확인되 었다고 합니다. 그 배치 평면과 같은데, 이러한 회랑에 접속된 북· 동·서 승방지의 배치는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독특한 모습 으로 백제지역에서만 나타난것이죠.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정림사지 박물관내에는 백제불교문화관, 정림사지관, 뮤지엄샵, 전망카페, 중앙홀, 기획전시실, 수장고, 중앙통제실, 사무실, 영상준비실, 화장실, 뮤지업샵, 창고, 자료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박물관내에는 생각보다 많은 백제의 물건과 불교문화를 확인해볼 수 있는 다양한 물건들이 있습니다. 




저도 백제금동대향로 기념품이 가지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비싸더라구요. 

부여에는 신라 진흥왕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왕이었던 성왕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두 번의 천도로 인해 공주와 부여를 백제의 문화를 간직하고 이를 현재적으로 활용하는 도시로 자리를 잡게 했으며 정림사지는 그 흔적입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느린세상걷기
:
728x90
반응형

서천군에는 원래 창고로 사용하던 곳이 있는데요. 그 건물을 서천군의 문화예술 활성화를 윟나 사업과 지역 예술인 양성 등 지역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사업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창작공간은 인형극 공연과 도자기 공예를 비롯한 각종 체험강좌가 진행되는 곳입니다. 서천군의 생활문화예술을 활성화하고 전시관을 활용한 기획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인형 전시 & 인형극 체험으로 이야기 다섯또봄전이 열렸고 이번주까지 바느질 여행이라는 컨셉으로 전시전이 열립니다. 



저녁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이 모여서 작업을 하고 있더라구요. 현재 지역 주민들의 문화 향유를 위한 문화예술 거점공간으로 전시, 공연, 체험 및 공연활동 등 서천군 문화예술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행복을 바느질 하는 장항 문화예술창작공간(舊 미곡창고)는 2014년 7월 1일 근대 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 제591호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가지고 싶은 아이템들이 적지 않더라구요. 




매년 서천군은 문화예술창작공간을 지역 문화예술인과 지역민이 함께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예술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한산모시 문화제가 열리는데요. 그곳에서는 맛 자랑 경연대회가 열립니다.



서천군 최초의 근대문화 유산인 장항 미곡창고는 일제 강점기 아픈 역사를 품고 낡은 모습으로 그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곳이  2012년 공장미술제를 시작으로 문화예술공간으로의 가능성을 보고 2013 리모델링을 통해 재탄생하였습니다. 












매월 격주로 지역문화단체 및 외부초청 공연을 계획하고 있는 이곳에는 지역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매월 격주로 지역문화단체 및 외부초청 공연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열리는 각종 전시전은 대부분 무료입니다. 관람을 원하는 지역주민 및 관광객 누구나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기타 문의사항은 문화예술창작공간 미곡창고(041-956-3161)로 문의하면 됩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느린세상걷기
:
728x90
반응형


오래전부터 서천의 마량포구 일대에는 공원이 조성되고 있었는데요. 

최근에 가보니까 모두 완공이 된 것 같더라구요. 


마량진 기념공원은 성경전래 당시 마량진 앞바다에 정박했던 영국 범선과 이를 문정(問情)하기 위해 마량진 첨사가 승선했던 조선판옥선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범선과 판옥선에 보행 데크와 야간 조명을 설치, 관광자원으로써 활용도를 높인 곳입니다. 




c


일본에 갔을 때 이런 조형물이 바다를 바라보며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한국에도 이런 곳이 만들어졌네요. 야경이 괜찮은 곳입니다.



마량포구에 자리한 이 공원은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성역화사업‘을 추진하면서 조성된 곳입니다.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건립 개관식은 2016년 9월에 진행이 되었습니다. 



서천군에 있는 배 모양의 조형물에는 조선시대의 판옥선 배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범선이 바다를 지배하고 있었는데요. 성경번역을 위해 목포로 향하던 중 선박충돌 사고로 순직한 아펜젤러 역시 범선을 타고 이곳에 들렀다가 순직 장소인 어청도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 마량리에 관련 기념공원이 자리하게 된 것입니다. 






밑에 물이 있으면 더 실감날 것 같은데요. 

영화 캐리비아읜 해적처럼 배를 몰아보는 상상을 해봅니다.  



의자에 앉아서 회의를 하고 있을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네요. 





 마량포구는 바다쪽으로 꼬리처럼 튀어나온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어 서천의 땅끝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충남 서천 마량포구 입구에 위치한 동백나무숲은 이른 봄부터 만개한 동백을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곳이기도 하죠. 



바다의 부근에 자리한 이 공원은 산책하기에도 좋습니다.



화장실도 배안에 있는데요. 시설이 깔끔하게 되어 있어서 이용하기에 편리하더라구요. 

 




성역화를 통해 서면 마량리 산 16-3번지 일원 7200여평에는 종교문화 박물관, 한.영 문화교류 기념관, 명상의 집, 야외 조각공원 등이 자리했습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느린세상걷기
:
728x90
반응형

10년 전에 태안에서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역사속에 기록될만한 검은 기름이 유출되어 태안의 앞바다를 검은색으로 물들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죠. 지금은 이전으로 대부분 돌아갔지만 당시에는 TV에서 하루가 멀다하게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을 보여주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학습공간으로 자리매김한 태안 유류피해 역사전시관은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2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곳의 옥상에는 푸른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태배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길게 뻗은 한반도처럼 태안 역시 해안선을 따라 길게 뻗은 지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형 덕분에 잘 알려진 만리포해수욕장을 비롯하여 무려 25개에 이르는 해수욕장이 태안에 빼곡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태안의 길은 바다의 고어인 '아라'에서 유래된 바라길, 원유유출 사고로 몸살을 앓은 이곳 소원길 구간, 파도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파도길 구간, 민불과 바닷물이 만나는 솔모랫길 구간, 석양의 아름다운 붉은 노을이 보기 좋은 노을길 구간, 삼별초가 주둔하며 훈련했다는 샛별길 구간, 썰물 때 드 넓은 갯벌이 펼쳐지는 바람길 구간까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감이 충만한 곳입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태안의 앞바다는 장관이네요. 



태안에 있는 해수욕장은 자주 가본 기억이 있는데 유류피해 역사 전시관은 처음 와봅니다.







2007년 태안의 앞바다는 기름유출로 인해 검은 기름으로 뒤덮였습니다. 원래의 모습을 찾기까지 오랜 세월이 지나야 할지 가늠도 안되었던 그때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와 지역주민들의 땀과 노력은 아픔을 딛고 새로운 태안으로 거듭나게 만들어 준 것이죠. 




사고의 현장을 극복하기 위해 참여한 123만 명의 땀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당시의 아픔을 치유하고 극복했습니다. 



유류피해 역사 전시관(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은 2007년 12월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를 극복했던 당시의 기억을 남기기 위해 2014년 8월 26일에 당시 사용했던 방제도구와 오염실태, 자원봉사자들의 방제 작업 사진 등을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태안의 앞바다 화창도 부근에서 수집한 돌에도 당시 기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태안에는 해변길이라는 트레킹길도 만들어져 있나 봅니다.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독특한 해안생태계를 체험할만한 공간인 태안해안국립공원 내에 조성된 이 길들은 구비치는 서해의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펼쳐집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느린세상걷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