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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동엽 문학관을 전에 방문해 본 적이 있었는데요. 

이번에 부여를 간 김에 둘러보았더니 사진 연꽃전이 열리고 있어서 둘러 보았습니다. 

신동엽문학상 수상작가 도종환 시인이 이번 정부에서 장관으로 취임하였다고 합니다. 



부여에 있는 신동엽 문학관은 부여에 자리 잡은 신동엽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곳입니다.  신동엽의 주요 작품으로 “아사녀”(1963),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1979), “금강”(1989) 등이 있습니다. 




작년에 신동엽이 서사시로 풀어낸 금강을 뮤지컬로 만나보기도 했는데요. 동학농민혁명을 서사시로 풀어낸 “금강”이 처음 무대에 오른 것은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기를 맞는 해였습니다. 당시 가극 “금강”은 민요, 전통음악, 민중가 요 등 다양한 음악으로 현대적인 우리의 음악극을 찾으려는 시도였다고 합니다.




매년 신동엽 문학상을 받는 사람들이 배출이 됩니다. 시인부터 소설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문학상을 받았네요.



시대를 한걸음 앞서갔던 신동엽 시인의 시선으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의 목소리를 빌려 이 시대에 문학과 사상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다양한 세미나도 열리는 곳입니다. 



연, 하늘을 잇다


수면위에 잎을 틔우고

아침햇살 받아 몸을 일으키니

꽃봉오리 하늘에 올라

아침이슬 머금는다.


비바람 몰아치며 

연잎위 파도 너울

힘겨운 나날 지나

꼿꼿이 하늘 본다.


동녘 태양 타오을때

붉은 입술 숨을 쉬며

가슴 가득 홍련 피우구나.


님이여 

생에 빛으로 오소서

꽃을 활짝 피워

하늘에 이르로서




부여하면 연꽃이고 연꽃하면 부여죠. 그리고 역사속에서 연꽃을 가장 많이 활용한 곳은 바로 백제였습니다. 



다양한 연꽃의 근접사진을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연꽃은 보통 멀리 있어서 아름답기는 했지만 자세하게 보는 것이 쉽지 않았거든요.



신동엽 문학관에서 하는 연, 하늘을 잇다전은 지난달 22일부터 시작해서 8월 27일까지 부여 신동엽 문학관 기획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껍데기는 가라/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중략)껍데기는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껍데기는 가라' 일부)




연꽃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으면 사진전을 감상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신동엽 기념관 옆에는 신동엽 생가가 다시 복원되어 있습니다. 





신동엽의 시가 오늘날에도 주목받는 이유는 한반도에서 벗어나 전 세계적인 탈식민주의적 상황을 그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국비와 도비, 군비 등 26억9,000만원이 투입되는 '신동엽문학관'은 부지 624㎡에 시인의 문학관을 2009년에 개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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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핫하게 즐기던지 차갑게 즐기던지 그것은 선택에 따라 다른데요. 

대천해수욕장에 오면 요즘 말로 '하태하태'가 어울리는 그런 열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머드 축제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아직 우리에겐 8월이 남아 있습니다. 



8월에도 대천해수욕장은 여전히 덥습니다. 

7월 마지막 주말에는 30도가 넘는 무더위를 피해 60만여 명의 피서 인파가 몰려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정말 많은 곳이기에 사람구경 하는 재미가 있는 해수욕장입니다.

해운대처럼 멀지도 않고 가까이에 있기에 후딱 출발해서 후딱 즐기고 올 수 있는 곳이기도 하죠. 





특히 올해의 대천해수욕장은 대천해수욕장 국민여가캠핑장과 머드 기반시설 및 멀티랜드마크 조성사업이 모두 완료되어서 편리하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대천해수욕장은 길이만 3.5㎞, 폭이 최대 100m 이상인 널찍한 백사장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 3만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펜션·모텔·연수원·호텔 등 300여 개의 숙박시설이 있는 이곳은 피서지로 특히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지만 특히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찾아오는 곳 대천해수욕장에는 많은 사람들의 표정이 있습니다.



계절영업 허가자와 피서객들의 잦은 마찰을 사전 예방하기 위해 대천해수욕장 머드광장(계단 앞)과 분수광장(계단 앞) 2곳을 ‘프리존(자유이용구역)’으로 지정·운영되고 있습니다. 



대천해수욕장은 수상스포츠의 거점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곳입니다. 시원한 파도를 가르는 서핑도 좋지만 그냥 수상레저를 즐기기만 해도 좋습니다. 저는 서서 탈 수 있는 SUP보트(Stand Up Paddle Boat), 바다 위에서 낙하산 모양의 연을 타는 카이트보딩(Kite Boarding) 등 색다른 해양스포츠도 즐겨보고 싶네요. 




모두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수준에 맞춰 진행돼 누구나 안전하고 재미있게 수상 레저 스포츠를 체험할 수 있기도 하지만 오는 17일부터 20일까지 보령 대천해수욕장에서는 핀수영, 카누, 철인3종, 요트 경기 등 정식종목 4종과 바다수영, 드래곤보트, 고무보트, 카이트보딩 등 번외종목 4종의 경기가 개최돼 다양한 해양스포츠의 진수를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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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전래되어 한국과 일본에 자라나고 있는 탱자나무는 용도가 많은 나무열매를 맺기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지름이 3~5㎝ 정도인 열매는 노란색의 장과(漿果)로 익는데, 향기는 좋지만 날것으로 먹지 못하지만 열매 껍질을 말린 것은 지각(枳殼)이라 하여 건위제·이뇨제로 쓰는데, 지각은 관장제(寬腸劑)로, 지실은 습진 치료제로도 사용합니다. 



문경장수황씨종택은 경북 문경시 산북면 금천로 671에 있습니다. 

앞에 걸려 있는 태극기가 인상적이네요. 




익성공 방촌 황희의 증손자인 승의부위 부사정 황정이 문경에 장착하면서 그들의 흔적이 이곳에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황희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재상이기도 했습니다. 




문경 장수 황씨 종택은 400여년전 문경시 산북면 대하1리에 건립됐으며, 1991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종가가 의미 있는 이유는 단순히 오래되었다기 보다는 선인들의 가르침이 대를 이어 내려오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청백리 정신의 황희 정승의 가풍이 면면이 이어져 있는 곳이기도 하죠. 



안쪽으로 들어오니 그 유명한 탱자나무를 만나게 됩니다.  




문경장수황씨종택에 심어져 있는 탱자나무는 앞뜰에 두 그루가 나란히 자라고 있는데요. 동쪽의 탱자나무는 3개의 큰 가지로 나뉘어 자라고 있으며, 서쪽의 탱자나무는 4개의 가지가 나와 전체적으로 한 그루인 것처럼 반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탱자나무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35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죠.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오래된 탱자나무가 있어서 그런지 종택의 모든 건물들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한 쌍의 탱자나무가 가문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건 단지 크고 오래된 나무라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공존과 공생의 지혜를 온몸으로 가르쳐 주는 나무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희 집도 이런 고택이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황시간은 마지막 임종 시 "내 자손되는 자들은 악이 적다하더라도 절대 행하지 말라"고 유훈을 남겼다고 합니다. 





찾아보니 이 종택에서는 그 유명한 술인 호산춘이 전통주로 내려오고 있다고 하는데 언제 한번 기회가 되면 맛보고 싶네요. 

'쌀 한되에 술 한되가 나온다'고 하며 술이 너무 좋아 술에 빠져 지내다가 몸과 집안을 망친다고 해서 망주(亡酒), 신선이 좋아한다 하여 호선주입니다. 




사랑채 뒤쪽에는 안채가 있고 안채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사랑채 오른쪽 전면부에 중문채가 있었지만 지금은 화재로 인해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사랑채는 전면에 퇴칸을 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로 좌측 2칸에 난간을 돌린 마루를 두고 2칸 온돌방과 연결시켰습니다. 2009년 경상북도에서 직영사업으로 사랑채를 전면적으로 보수하여 언제라도 거주할 수 있도록 정비가 된 곳이기도 합니다. 





너른 마당에는 언제 사용했을지 모르는 우물이 하나 있습니다. 베푸는 삶을 실천하여 공익을 위해 아낌없이 나누는 철학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황씨의 후손의 생각이 반갑습니다. 


지금 이곳에는  황방촌 유물로 황희 정승이 생전에 사용하던 유물로서 옥서진(玉書鎭, 옥으로 된 종이누르개) 1쌍, 산호영(珊瑚纓, 산호로 된 갓끈) 1종, 옥연(玉硯, 옥벼루) 1개. 서각대(犀角帶, 코뿔소 뿔로 된 허리띠) 1개, 분재문서(分財文書, 재산분할문서) 1매가 보존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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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되었는데 어디 멀리 바다로 가기도 마땅치 않고 시원한 계곡으로 가자니 위치 좋은 곳에 자리 잡는다는 보장도 없고 참 난감하실 겁니다.  세종과 청양, 부여에서도 찾아가는 피서지가 공주에 있습니다. 곰나루 어린이 수영장은 지난 7월 13일 곰나루 관광단지내 (웅진동 소재)에 개장하고 나서 한 여름의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차에서 내리자 하늘에서 내려오는 엄청난 열기와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한데 어우러져 저를 괴롭히네요. 역시 여름은 더워야 제 맛이라고 하지만 상당히 더운 것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온이 상승하면 사람의 식욕이 떨어져 영양실조나 잔병, 기력이 쇠약하게 되어서 질병에 걸리기 쉬운데요.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여 덥지 않게 지내려는 노력을 하게 되고 오랜 생활경험을 통하여 피서하는 방법을 강조하는 지혜가 생긴 것입니다. 




곰나루 관광단지가 있는 곳에는 더위를 피하기 위한 아이들만의 공간 곰나루 수영장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과 손잡고 와서 쉴만한 곳입니다. 



피서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은 햇볕을 피해 그늘에서 쉬는 것입니다. 우선 햇볕을 가리는 일이 피서에 있어 초보적인 일이고 다음은 그늘지고 물이 흐르는 계곡을 찾는 일이죠. 그것도 쉽지 않다면 이렇게 인공적으로 조성되어 있는 수영장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곰나루 관광단지 내에서는 아이들이 나와서 목욕은 아니어도 물놀이를 할 수 있고 잠시 더위로 부터 탈출도 할 수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서로 이름을 불러 무심코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게.” 하고 외쳐서 더위를 팔면 그 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고 지낼 수가 있는 옛날 방법도 한 번 해보아도 좋습니다. 



아이들은 무더위가 반갑기만 한 모양입니다. 이때나 부모와 함께 나들이 나와서 물놀이를 할 수 있으니까요. 





이곳을 찾으신 분들은 보면 대부분 먹을거리를 가지고 나오셨는데요. 다양한 먹거리가 있었는데 그 중에 눈에 띄는 것은 영계백숙 같은 음식이었습니다.  찬 음식과는 반대로 이열치열(以熱治熱)로 뜨거운 음식을 먹음으로써 땀을 흘리게 하여 몸을 보하는 음식은 뜨겁게 먹으면 원기를 돋우어 더위를 이길 수 있다고 하여 무더위에 오히려 탕을 먹는 풍속이 오래 전부터 전승되오고 있는 것이죠. 




최근에 추가된 물놀이 시설들이 아이들을 더욱더 즐겁게 해주고 있는데요. 물도 얕아서 유아들까지 놀 수 있을 정도입니다. 

 




피서는 뭐니뭐니 해도 이렇게 물이 있는 곳에서 납작하게 업드려서 피하는 것이죠. 대야에 물을 떠놓고 탁족을 해서 더위를 잊는 방법도 있지만 야외로 나오는 것도 온몸의 더위를 잊을 수가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어린이 놀이터가 있는 곳 옆에는 어린이 수영장도 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허벅지까지 오는 깊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머리까지 오는 깊이 정도가 됩니다.




올해의 곰나루 어린이 물놀이장은 총 4440㎡ 규모에 수영장 1820㎡, 물놀이장 2020㎡(14종 시설), 놀이시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오는 8월 20일까지 운영됩니다. 






부모와 함께와서 즐길 수 있는 곰나루 어린이 수영장은 5∼13세 어린이가 이용할 수 있고 이용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며 1일 평균 450여명 사전예약 없이 현지 선착순 무료 입장해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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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변의 자리한 강경은 서울의 한강만큼이나 큰 강이 강경읍의 중심을 지나가는 곳입니다. 

대전에도 갑천이 있지만 이정도로 강폭이 넓지는 않거든요. 

이정도로 폭이 넓으니 조선시대와 근대까지 3대 포구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네요. 



너른 금강변을 보기 위해 걸어 올라가 봅니다.



강경읍내의 어느쪽에서 걸어가도 금강으로 접근하는 경로는 짧은 편입니다. 




천변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자전거길도 잘 만들어져 있는 금강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전에 상시장이 설치되었을 때는 강경의 최대 인구가 3만 여명이었고 유동 인구까지 합치면 10만명이 될 정도로 흥했던 곳이 강경입니다.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기차의 발달은 한반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요.

강경의 금강 수운이 빠른 속도로 쇠퇴하게 된데에는 경부선, 호남선, 군산선의 철도가 부설되면서 부터입니다. 



강경의 인구 규모 치고는 상당히 너른 천변길이 펼쳐집니다. 




강경의 상권이 축소되기는 했지만 매년 하는 강경 젓갈 축제가 열릴 때에는 이곳에도 적지 않은 차량들이 찾아와서 주차난을 겪기도 합니다.  1910년의 강경 사정을 전하는 기록을 보면 “강경의 상업 규모는 군산 다음으로 번성하였다고 합니다. 



저 곳으로 올라가보면 강경 전망대가 나오는데 강경읍내와 옥녀봉 그리고 주변의 지형을 한눈에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강경하면 젓갈이 가장 유명하듯이 강경에는 젓갈 전시관도 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현재의 강경은 엣날에는 신포 또는 김포라고 불렸던곳입니다. 가장 상권이 발달되었을때의 강경의 시장권은 은진군·석성군·노성군·연산군·부여군·임천군·홍산군·공주군·정산군, 그리고 전라북도의 여산군·용안군·익산군·함열군·고산군·금산군·진산군을 포괄하기도 했었습니다. 



젓갈로 유명한 강경이지만 국내 상품 중 가장 비중이 컸던 것은 소금이었다고 합니다. 19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강경에는 소금 거래를 중개하는 객주가 30여 호가 있었으며 부두의 한 구역 전체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젓갈 역시 소금이 필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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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이색하면 이 땅에 성리학의 뿌리를 제대로 내린 유학자로 유명한 사람이죠.

정몽주와 조선을 개국한 정도전의 스승이며 정신적인 지주였던 사람입니다. 



한옥 숙박이 가능한 문헌서원이 있는 곳에는 문헌전통호텔이라는 곳이 있어서 1박 2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충남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에 있는 문헌서원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5호. 1594년(선조 27)에 창건되었으며, 이곡·이색의 위패를 모셨는데요.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10년(광해군 2)에 한산 고촌으로 옮겨 복원했습니다.




한국관광공사 인증 한옥스테이로 지정된 곳입니다.



이곳은 한옥이 불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있는 곳입니다. 한옥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공간의 넉넉함을 가진 곳입니다.



가격대는 평일과 주말 그리고 방의 크기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가격은 100,000 ~ 150,000 사이 정도 됩니다. 



식사준비를 요청하면 아침, 점심, 저녁을 이곳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음식과 퓨전 음식이 준비되는 곳이라서 가격대에 맞춰서 먹어볼 수 있습니다. 




수저와 젓가락이 놓여 있는 곳은 서천의 주요 여행지에 대한 안내가 되어 있습니다. 특색이 있습니다. 음식들은 한정식 위주로 되어 있고 연과 서대, 각종 나물 위주로 나옵니다. 




 주로 정과나 조림, 튀김 등에 사용하며 아삭아삭한 식감이 씹는 맛이 있는 연근은  꽃의 뿌리로 식이섬유가 풍부해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뿌리가 긴 것은 1.8m 이상이 되며 날로 먹으면 달달하면서도 전분 맛이 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바다와 접해 있는 서천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서대가 반찬으로 나옵니다. 날것으로도 먹을 수 있고 이렇게 말려서 요리를 해서 먹기도 합니다.



가지와 야채가 들어간 탕수육입니다. 먹음직스러워 보이죠. 깨가 고소하게 뿌려져 있어서 그런지 더욱더 맛이 좋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여름에 먹으면 더 맛있는 듯한 백김치입니다. 

백김치 잘하는 곳에 가면 그것만으로 물국수를 먹어볼 수 있습니다. 



역시 한옥에서 숙박은 기분이 다른 것 같습니다.


`

목은 이색이 모셔진 문헌서원에는 정자가 있고 연못이 있는데요. 이곳은 1611년에 사액을 받았으며, 이종학·이자·이개를 추가 배향했습니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69년 지방유림들에 의해 복원되었으며 이종덕을 추가 배향한 후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흐린날 


날이 흐리매 병든 삭신이 배나 고통스러워 손이 와서 의관 걸치니 흡사 허수아비로세 억지웃음은 흥미 없음을 스스로 알거니와 말을 하려고 때로 다시 정신을 분발하노라 - 목은 이색



이곳 영모재는 이색 선생의 후손들이 선조들의 학문과 덕행을 영원히 기리고 추모하는 제향을 모시는 재실입니다. 



남산에 올라가서 꽃을 감상하다


남산 꼭대기에 달려 올라가 사방을 보니 광대한 봄바람에 새벽은 아직 차가운데 하늘은 푸른 장막이요 꽃은 비단 같아서 일개 서생의 시야가 아특히 탁 트이누나 - 목은 이색





고려 말의 유학자로 목은 이색의 문하에는 정몽주, 길재, 이승인 등의 제자들이 고려왕조에 충절을 다했으며 조선의 창업에 큰 도움을 준 정도전, 하륜, 윤소증, 권근등을 배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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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에 문경시청에서는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SNS서포터즈 기자단 취촉식이 문경시청 대회의실에서 있었습니다. 

작년에도 문경시를 알리기 위해 활동하면서 문경에 대해 잘 알게 되더라구요.

SNS서포터즈 기자단은 문경시의 참여와 소통의 시정 홍보를 위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원래는 행사가 먼저 진행될 예정이었는데요.

선거와 축제등이 있어서 조금 늦추어진 것입니다.

6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될 SNS 서포터즈의 활동을 기대해봅니다. 





문경시에서 거주하시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 분이 선물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아몬드가 들어간 케익과 곶감입니다. 




작년과 달라진 점과 SNS서포터즈로서 활동하기 위한 가이드등을 알려주는 자료 공유가 있었습니다.

문경시 가이드는 자신이 소개하고자 하는 곳을 취재하고 동선에 따라 포스팅 합니다.

그곳의 현황이나 방문한 장소에 대한 주소를 공유하면 됩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서포터즈는 전부는 아니었지만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위촉식의 선서를 통해 올해 문경시를 알릴 의지를 다시 잡아봅니다. 




SNS서포터즈는 SNS상에서 문경의 시정 소식, 특산물, 관광지 등을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은 취재 활동을 진행합니다.


자체의 대내외 홍보에 큰 역할을 하게 될 분들입니다. 





문경시장은 고윤환  “SNS서포터즈는 한 분 한 분이 우리 문경을 대표하는 홍보대사와 같다” 는 말과 더불어 문경시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면서 당부했습니다. 



발대식이 끝나고 식사자리가 이어졌습니다. 

식사의 메뉴는 문경의 대표음식인 약돌돼지였는데요. 

약돌은 게르마늄(Ge)·셀레늄(Se)·세륨(Ce)·홀뮴(Ho) 등의 특수성분을 함유한 거정석(페그마타이트, pegmatite)을 말한다고 하는데요. 


궁리한 끝에 약돌을 잘게 부숴 돼지사료에 섞어 먹여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약돌사료를 먹인 돼지는 고기 살이 쫄깃하고 부드러우면서 맛이 좋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지금까지 문경의 특산품으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확실히 고기맛이 담백하면서도 기름이 빨리 굳지 않는 느낌입니다.

지금은 한방 찜이나 약돌 한우도 만들어지고 있어서 전국적으로 명성이 더해가는 약돌음식입니다.  


올해 2기째를 맞이한 문경시 SNS서포터즈는 총 50명의 기자단이 오는 12월 31일까지 활동하게 되는데요. 

저도 의미있고 재미있는 정보를 많이 전달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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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물건에는 사람의 혼백이 들어가 있다는 말이 있는데요.

그래서 오래된 물건을 보면 정감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오래된 것은 버려지기 마련이라서 옛날 흔적을 찾는 것은 박물관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강경에 가면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에 강경역사관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벽돌과는 조금 달라 보이는 적벽돌로 만들어진 이 건물의 주변에는 옛날 흔적을 그대로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건물이 조금 특이해 보입니다. 역사관으로 사용되던 건물 옆에도 건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건물로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면 참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앞쪽에는 사진으로 강경의 대표 여행지로 볼만한 건물이나 역사적인 흔적 10곳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정말 옛날 물건이 아니라 가장 오래된 물건이 100년 정도로 근현대에 한국에서 사용했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저도 어릴때 보았던 카세트도 보입니다.



옛날에 사용하던 뒤주 같은 것도 있습니다. 넓은 의미의 뒤주로는 버드나무 굵은 것이나 가는 싸리나무, 대나무오리를 써서 큰 독과 같은 형태로 엮은 것도 있습니다. 보통 뒤주는 널빤지를 짜서 만드는 뒤주는 네 기둥을 세우고 벽과 바닥을 널빤지로 마감하여 공간을 형성하고 머리에 천판(天板 : 천장을 이루는 널)을 설치합니다. 



예전에 사용했던 기름통인데요. 이런 기름통은 군대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강경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시장이 있었는데요. 1900년대에는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곤 했습니다. 보통시장이라 불린 5일장은 북옥동·홍교동의 상시장(上市場)과 중앙동의 하시장(下市場)을 합친 것을 일컫는데요. 수산물이 대종을 이룬 어채시장(魚菜市場)이 매일 열려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강경에는 대구가 섬유시장으로 집중되기 전에는 섬유와 의류시장으로 발달을 했던 곳입니다. 

그래서 옛날방식으로 옷을 짜던 기구들이 남아 있습니다. 




하늘하늘한 옷이 남겨져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런 기계도 상당히 비쌌다고 합니다.  주로 옷감을 짜기 위한 실을 만드는 데 쓰이는 섬유는 실을 만들 수 있는 가늘고 긴 모양을 한 물질로 천연 섬유에는 목화 · 아마 · 모시 등의 식물성 섬유와, 양털 · 명주 등의 동물성 섬유, 그리고 석면과 같은 광물성 섬유가 있습니다. 



옛날에 금고로 사용되던 공간은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는데요. 문이 엄청나게 두껍습니다.




금고를 작품에서 표현한 것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채만식이라는 작가가 쓴 탁류에서 은행가는 사악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위선과 살의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는 여주인공 초봉이의 비극적 인생에서 첫 번째 불행은 고태수를 만났는데요.  초봉이의 첫 남편 고태수는 천하에 둘도 없는 난봉꾼이고 배임과 횡령을 일삼는 사기꾼이었습니다. 나중에 칼에 찔려 죽는 그의 직업은 은행 당좌계 대리였습니다. 




강경과 논산지역에서 기증을 받은 옛날 물건이 가득 있는 강경역사관은 근대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우리 부모세대의 물건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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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유산을 자원화하여 관광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는 강경에는 오래된 고택들도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 강경의 강을 바라보고 있는 자리에 있는 죽림서원과 임리정은 가장 대표적인 오래됨을 가지고 있는 곳일거에요. 


1665년(현종 6) ‘죽림’이라 사액되어 서원으로 승격한 죽림서원은 1626년(인조 4)에 이이(李珥)·성혼(成渾)·김장생(金長生)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들이 세운 황산사(黃山祠)가 그 기원입니다. 새롭게 칠해진 홍살문은 이곳이 옛날 교육을 담당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충남 논산시 강경읍 금백로 20-8에 위치해 있는 죽림서원은 다른 서원들과 달리 물길을 바라보고 있어서 경치가 괜찮은 곳이죠.



죽립서원은 조광조(趙光祖)·이황(李滉)까지 배향하다가 1695년(숙종 21)에는 송시열(宋時烈)을 추가 배향하였다. 이곳은 1653년(효종4년) 송시열과 윤선거((尹宣擧)가 만나 주희(朱熹)의 사상을 비판하고 개혁적 사상을 가진 윤휴를 두고 논쟁을 벌였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서원에는 사람들이 거주하던 건물도 있습니다. 죽림서원의 윤휴는 논어, 맹자, 중용, 대학 사서의 경전을 주희와는 다르게 해석을 내렸는데 주희의 해석만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던 송시열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때문에 송시열은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았지만 윤선거는 경전의 새로운 해석을 내놓은 윤휴의 학문이 높다고 평가했는데요. 지금 보면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그런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죽림서원 주변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천천히 돌아볼 수 있습니다. 




죽림서원이 있는 강경이 속해 있는 도시 논산은 많은 학자들을 배출한 ‘서원의 도시’입니다. 돈암서원부터 죽림서원, 충곡서원, 효암서원, 노강서원 등 다양한 서원들이 즐비합니다. 



스승을 모시고 그들의 생각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우리네 정신이었는데 최근에 보면 스승이나 제자의 의미가 상당히 많이 퇴색된 것 같아 아쉽더라구요.



죽림서원 뒤쪽으로 올라오면 임리정이라는 곳이 나옵니다.



금강이 보이는 이곳은 김장생(金長生)이 1626년(인조 4)에 하향하여 후진을 교육하던 자리로서 그는 이 정자를 짓고 《논어 論語》의 ‘如臨深淵(여림심연)’, ‘如履薄氷(여리박빙)’이라는 문장의 뜻을 따서 임리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합니다. 




임리정은 정면 세 칸 , 측면 두 칸 건물인데, 우측 반 칸은 누마루처럼 띄우고, 반 칸은 온돌방으로 만든 '내장형 누마루'를 가진 독특함을 숨긴 구조입니다. 이 건물을 보고 송시열은 스승이 지은 집이 잘 보이는 언덕에 스승이 지은 집과 똑같은 집을 지었는데요.  그곳에서 금강으로 풍덩 뛰어드는 저녁 해를 보았다고 합니다. 




조그마한 공간인 마루에 앉아서 독서하면서 사색하였던 김장생과 그의 제자들 그리고 그 제자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송시열을 생각해봅니다. 




앞쪽으로는 금강이 보이고 뒤쪽으로는 밭과 강경이 한눈에 보이네요. 




충남 논산에서는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유적 탐방’을 매년 시행되고 있는데요. 주요 답사지는 임리정, 팔괘정, 죽림서원, 옥녀봉, 탑정호, 백제군사박물관, 돈암서원, 명재고택, 종학원 등으로 다양한 답사 일정을 선정해 선택 답사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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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시 계룡면 구룡말길의 국도변을 지나가면 이상근 얼레빗 전수관이 있는데요. 지난 2010년 얼레빗 제작을 하면서 30년을 살았던 이상근씨가 충남도 무형문화재 인정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이상근씨는 공주시청을 찾아 이준원 공주시장으로부터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42호 공주 목소장 인정서를 전수받았다고 합니다. 



전수관은 계룡산 뒷편으로 가는 국도변에 있는데요. 목소장은 전통 우리 빗을 만드는 기능 또는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로, 이 씨는 30여년 동안 얼레빗을 직접 만들었으며, 최근에는 전수관을 설립하고, 작품 전시, 후학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곳입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 공주가 아닌 전주에서 보내시는 이상근씨는 평일에 한가해질 때 이곳에 와 계신다고 하더라구요. 면적이 꽤나 넓은 편입니다. 이런 곳에 전수관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됩니다.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고 하는데요.

전수관 주변에는 오래된 건물로 보이는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얼레빗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보통 일상용품으로 사용하던 빗으로 나무는 보통 우리 딸에서 자라나는 박달나무, 대나무, 대추나무, 도장나무, 소나무, 해송 같은 나무와 조금 고급스럽게 만들기 위해서는 대모, 상아, 뿔, 은도 사용한다고 합니다. 




마침 방문했을 때는 얼레빗 장인 분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역시 장인분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서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얼레빗이 무엇인지 말이에요. 



얼레빗이란 반달모양으로 생겨서 월소(月梳))라고도 부르는 빗입니다.

얼레빗은 빗살이 성긴 것으로 긴머리를 빗질하는 데 필수적인 빗으로 보통 얼레빗으로 대강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하는데 주로 사용하는데요.  크기는 다양하며 빗살 역시 성긴 것과 촘촘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얼레빗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목공예 제품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얼레빗은 박달나무·대나무·대추나무·도장나무·소나무로 주로 만드는데 제주도에서 나는 해송은  질병과 흉액 등 귀신을 쫓는다고 하여 인기가 많다고 하네요. 




전수관 뒤쪽에는 밤으로 유명한 공주 답게 밤나무가 빽빽히 심어져 있더군요. 

가을이 되면 이곳에 와서 밤을 따도 되냐고 물어봐야 겠습니다. 



얼레빗은 2007년 유네스코 우수공예품으로 인정받았을 뿐더러  7대째 가업으로 이어온 목소장 이상근씨는 백제문양을 많이 활용하는데 할 때마다 신라문양이나 고구려문양보다는 백제문양이 단순하면서도 아주 많은 뜻이 담겨져 있어서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조선말기 단발령을 계기로 상투가 없어지는 우리 전통문화의 변화로 인해 얼레빗의 사용도 줄었다. 앞으로 우리 전통 빗의 역사는 안타깝게도 기록으로만 남겨지지만 그 역사를 이어가는 이상근 선생님 같은 분이 있어서 우리의 전통이 아직도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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