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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을 대표하는 향교 두 곳은 보령향교와 남포향교로 그 형태와 부속건물을 갖춘 곳입니다. 그렇지만 중간부분에 자리한 오천향교는 사당 역할을 하는 대성전외에는 다른 건물은 제사를 도와주기 위해 자리한 건물뿐입니다. 그곳에서 어떤 배움이 있었을지 상상해보기가 어렵지만 향교를 만들려고 했던 마을 분들의 마음가짐이 무엇인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천향교를 보기전에 대천이라는 지명의 이름을 그대로 붙인 다른 여행지 대천항을 먼저 들려봅니다. 바다는 왜 계속 봐도 질리지 않는 것일까요. 보령의 대천항은 조용하지만 여행지로 따뜻하면서도 포근한 곳입니다. 

항구에 오면 사람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대표적인 새로 갈매기가 있죠.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서 반갑게 맞이해주는 갈매기는 새우깡만 있으면 부를 수 있답니다. 

대천항에는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습니다. 이 배에서 잡아오는 수많은 해산물이 대천항 수산시장을 통해 팔려 나갑니다. 

비록 사람을 키워내지는 못했지만 이 지역 유림들의 의지로 만들어진 향교입니다. 

배움이란 그렇다고 합니다. 바다처럼 안정되고 고요하며, 끝없이 흘러가는, 매지 않는 배처럼 구속됨이 없이 배움에 거침이 없어야 한다고 합니다. 

양쪽에는 농산물을 키우고 있고 오천향교에는 나무가 한그루 심어 있는데 은행나무입니다. 작은 향교입니다. 대성전과 옆에 건물 하나만 자리하고 있네요. 

오천향교는 향교길 45-26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895년 오천의 충청수군절도사영이 폐영될 때 조선(朝鮮) 개국(開國) 504년 청(淸) 광서(光緖) 21년 일본(日本) 메이지 28년 청(淸) 덕종 광서제(德宗 光緖帝) 21년 조선(朝鮮) 고종(高宗) 32년으로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던 해입니다. 

1901년 오천군이 처음 생기면서 오천향교를 건립하게 된 것이었죠. 만약 일제강점기였다면 아예 세울 생각도 못하지 않았을까요. 

이곳은 향교의 제사를 위한 제사물건들을 보관한느 곳입니다. 향교의 가르침 중에 볼 수도 없고, 작을 수도 업슨 도이지만 그속에 물이 있다고 합니다. 휘어지는 나무는 꺾이지 않기 때문에 안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몸을 구부리는 자벌레는 장차 곧게 펴기 위함이죠. 

성인은 스스로 존재를 나타내려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그 존재는 밝게 나타납니다. 스스로 뽐내지 않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공은 오래갈 수 있는 것이죠 .

옛 성현의 가르침을 받고 그 생각을 읽어볼 수 있는 향교에서의 가르침은 많은 여운을 남깁니다. 사람은 자연의 도를 체득하기에 힘써야 한다고 합니다. 도를 쫒아 행동하는 사람은 도에 동화되고, 덕에 쫑아 행동하는 사람은 덕에 동화되며, 잘못된 것에 좇아 행동하는 사람은 잘못에 동화된다고 합니다. 저도 자연을 닮고 싶은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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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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