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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하면 많은 유학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논산의 한적한 곳에 자리한 김항선생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이 없어서 아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김항선생은 조선 후기 정역(正易)을 집대성한 논산 출신의 학자로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도심(道心), 호는 일부(一夫). 부인은 여흥민씨(驪興閔氏)였습니다. 

 

논산은 광산김씨의 후손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김장생선생도 그렇고 김집선생도 모두 광산김씨입니다. 조선시대 들어와서도 광산 김씨는 명문가로 명신과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최고의 영예인 문묘 종사와 종묘 배향을 동시에 이룬 6현 중 하나인 김집을 배출해 6대 국반(國班)의 대열에 올랐다고 합니다. 

저곳이 김항선생의 묘소로 한적한 곳에 소박하게 묘를 사용하였습니다. 문묘 종사 현인을 한 가문에서 2명을 배출한 것은 은진 송씨(恩津 宋氏) 송시열, 송준길과 광산 김씨(光山 金氏) 김장생, 김집 뿐인데 송시열, 송준길이 사계 김장생의 제자들이고 보면 광산 김씨의 업적은 실로 조선시대 유일무이한 업적이라고 합니다. 

이곳에 잠들어 있는 김항은 스승이 남긴 오언절구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 노력은 19년이라는 세월을 통해 열매를 맺었다고 합니다. 

서전(書傳)과 주역(周易)을 탐독하고 영가(詠歌)와 무도(舞蹈)를 통한 정신의 개발 등에 정진한 끝에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으며 지금도 그 흔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생에 대부분을 앉아서 생활하였는데, 밤에도 눕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 마지막 순간인 죽는 상황에서도 앉아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1885년(고종 22) 김항은 조선 후기 후천개벽사상을 집대성한 『정역(正易)』을 저술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김항선생 묘소

논산시 양촌면 황산벌로 57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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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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