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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사람은 드물죠. 그래서 가끔씩은 이해가 안갈 때가 있습니다. 정해진 것이 없는 것이 정치이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정치라고 합니다.

정치인들이 바라는 권력욕은 세상을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욕구이며 지배욕이기도 합니다. 조선왕조에서 권력욕을 가졌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왕이 되기도 했고 왕에서 끌려 내려지기도 했었습니다. 대표적인 권력욕의 전쟁의 주인공은 바로 이방원입니다.

 

 

최근 KBS드라마 태종 이방원으로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1차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의 형제들은 모두 권력의 근처까지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이성계라는 거대한 산 같은 사람을 넘어선 유일한 인물이 이방원이었지만 스스로도 왕위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버지인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후 희안대군에 봉해진 이방간입니다.  

 

이방간은 이방원의 바로 위의 형으로 그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자랐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보통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으면 그렇게 많이 싸우는데 이들도 그랬던 모양입니다. 이곳은 문화재자료 제352호로 지정된 충남서산시 부석면 강당리 312에 자리한 서산 숭덕사입니다.  

 

서산 숭덕사는 희안대군 이방간과 부부인 여흥 민 씨, 밀양 황 씨, 김포 김 씨의 신주를 모신 사우로 희안대군의 둘 때 아들인 창녕군이 1422년 (세종 4년) 아버지의 신주를 어머니 밀양 황 씨의 묘 옆에 가묘를 짓고 봉안해 오다가 1607년에 왕명에 의해 현손 이유가 이곳에 사우를 건립하여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이방간은 제1차 왕자의 난에 정안군 방원을 도왔으며, 그 이듬해 제2차 왕자의 난이 실패하자 토산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세종 1년(1419) 천명을 누리다가 홍주에서 죽었으며 시호는 양희(良僖)라고 합니다. 세조는 핏줄을 나눈 형제에게도 피를 뿌렸지만 이방원은 형인 이방간을 살려서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서산 숭덕사는 고종 1년(1864)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왔는데 건물 규모는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一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습니다. 내부의 건물들은 사당과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는데 1988년에 신축된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입니다. 

 

조선초에는 왕자들이나 유력 가문들은 모두 가병들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가병들은 그들에게 힘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권력욕을 채워줄 군사들이기도 했습니다. 이방간 역시 왕의 꿈을 꾸었지만 이방원에게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아들들은 조선왕조를 개창하면서 많은 피를 뿌렸지만 그 이후 500여년의 역사동안 왕조가 이어졌습니다.  

매년 음력 3월 9일마다 후손들이 모여 제례 행사를 지내오고 있는 부석면 숭덕사는 서산 아라메길의 한 구간으로 2구간(해미읍성-황락저수지-숭덕사-한티 고개-천장사-신송저수지-촛대바위-고북면 간척지) 22.2㎞에 포함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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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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