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지금도 가끔씩 국방부에서 홍보하는 것을 보면 대를 이어 군인이 된 가족 이야기를 볼 때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무신이었으며 대한민국때에는 군인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이 땅을 지키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당진에도 그런 분들의 이야기가 있는데요. 남유장군과 남이흥장군이 그 주인공입니다. 

 

충장사라는 이정표를 보고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충절의 고장이라는 비가 뒤에 세워져 있는 곳입니다. 

이 마을 분들의 선조들의 이야기가 비에 빼곡하게 써져 있는 공간을 지나가면 바로 남유와 남이흥장군의 묘가 나옵니다.  

수많은 전쟁이 조선에서 일어났는데 외세에 의해 전역이 화마에 휩싸인 대표적인 전쟁은 왜란과 호란입니다. 조선의 힘이 미약할때 지정학적인 여건으로 인해 일어난 전쟁으로 일본의 에도막부를 형성하는 시기와 중국 왕조의 교체시기에 일어났습니다. 


당진의 대표 호국인물이라는 충장공 남이흥 장군의 일생이 쓰여 있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무신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전쟁의 시대에 시간을 뛰어넘는 영웅이 나오기도 합니다. 조선의 이순신은 1597년 조선과 강화가 결렬되지 일어난 전쟁 정유재란중 노량해전에서 승리했지만 전사하게 됩니다. 이때 충무공 이순신을 도와 싸우다가 전사한 남유장군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남이흥장군의 일가 유품도 남겨져 있습니다. 


이곳에는 의령남씨인 남유장군과 그의 아들인 남이흥장군의 묘가 자리하고 있씁니다. 그리고 이들을 기리는 충장사와 그 충성심을 기리는 남씨양세충신정려가 함께 조성되어 있습니다. 


충장사 아래에 있는 오래된 고택은 조금 특이한 형태의 고택입니다. 계속 수선 과정을 거치면서 원래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자연스러워 보이는 집입니다.  


조금 올라가 보니 사당의 위에는 남씨양세충신정려라는 현판이 보이고 그 설명을 접해볼 수 있습니다. 1636년에 세워져 1963년에 내부공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남씨양세충신정려의 남이홍 정려와 남유의 정려를 뒤로 하고 언덕으로 올라가면 충장사가 보입니다. 이곳은 남이흥장군묘역으로 충장사, 남씨양세충신정려, 고택, 모충관1, 2, 충장정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남이흥장군의 부친인 남유장군이 충무공 이순신을 따라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후 그의 아들은 남이홍 역시 무인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는 아버지가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것에 생각을 바꾸어 문신의 길이 아닌 무신의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남이흥은 지리적으로 유리한 길마재[鞍峴]에 진을 치고 위에서 적을 내려다보며 공격하자는 정충신(鄭忠臣)의 주장에 동조해 대승하며 이 공으로 연안부사가 되었고, 진무공신(振武功臣) 1등에 책록됩니다. 


남이흥장군의 묘 일원에는 남이흥장군을 비롯하여 부인 하동정씨, 부실 연안김씨, 아버지인 남유, 어머니인 전주 유씨 묘소가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경기도에 있었으나 성남단지 조성 때인 1971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국경방어를 하고 있던 남이흥은 1627년 정월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안주성에서 후금군(청나라)을 막았는데 속도가 빠른 기병 위주의 3만의 후금군은 순식간에 의주, 능한산성, 안주성에 이르렀으나 막지 못하고 함락되게 됩니다. 


결국 후금을 막지 못한 남이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의춘부원군에 추봉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군에 맞섰던 남유장군과 청나라에 맞섰던 남이흥장군의 흔적을 살펴보면서 역사는 계속 배워야 하는 중요한 자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느린세상걷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