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당진의 유명한 아미산쪽으로 가다가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였던 인덕룡장군묘의 이정표를 보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인덕룡장군은 교동인씨의 후손으로 임진왜란당시 정난원종 2등 공신에 녹훈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정표를 보고 안쪽으로 들어오니 묘가 나왔습니다. 그 후손들의 묘도 함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묘소가 있는데 인덕룡 장군의 자세한 기록이 없는 것이 아쉽지만 임진왜란대 원종공신 인발 선략장군을 지냈다고 합니다. 

탁트인 곳에 자리한 묘소는 이곳 지명의 이름인 교동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려의 마지막을 지킨 무장 하면 최영 장군이 대표적이지만 동시대에 최영 장군 같은 활약을 보여준 무장인 인당장군도 있었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기도 합니다.  인당장군은 교동 인씨의 시조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마을의 이름이 교동리입니다. 


멀리 인당장군 사당이라는 충정사의 이정표를 보고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중국 진(晉)나라의 인서(印瑞)가 신라 유례왕(儒禮王) 때 들어와 아찬(阿飡)의 벼슬을 하고, 그의 후손 인빈(印邠)이 고려 인종 때 한림학사·문하시사(門下侍史)를 지내면서 교동부원군에 봉해져 교동인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나 교통인씨의 세보를 보면 인당이 시조로 되어 있습니다. 


충정사는 인당장군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인당장군은 밀직 이권(李權)과 함께 자연도(紫燕島)와 삼목도(三木島)에 침입한 왜구를 서강(西江)에서 막고 1354년에는 전라도만호로서 왜구를 격파하였으며, 이해 석성부원군(碩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정남만호(征南萬戶)로 원나라 군대와 함께 홍건적(紅巾賊)을 격퇴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고려말의 왕인 공민왕은 노국공주와 사랑이야기로도 잘 알려진 왕이었습니다. 그는 원나라에 협조하는 가운데 배원정책으로 국권을 회복하려고 했었다고 합니다.

 

그랬던 공민왕이 인당장군에게 명을 내렸는데 1354년 서북면병마사가 되어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강중경(姜仲卿) 등과 함께 압록강 서쪽의 8참(站)을 공략하였다고 합니다.  이 때 강중경이 술에 취하여 말을 듣지 않으므로 그를 베고 단독으로 압록강을 건너 파사부(婆娑府) 등 3참을 공파하였습니다.



오래된 사당이었지만 당진시의 끝자락에 위치해서 그런지 일부 시설은 관리가 필요해보였습니다.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원나라는 고려가 국경을 침입하였다 하여 고려의 사신 김구년을 요양성에 가두고 80만 병력을 동원하여 고려를 토벌하겠다고 협박을 하자  7월 참지정사(參知政事, 종 2품에 까지 오르게 되었지만 공민왕에 의해 서북면 병마사였던 인당은 목이 베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려사절요에는 그 내용이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인당장군 사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미인의 눈썹같이 아름다운 산이라는 아미산방문자센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포문화 숲길이기도 한 이곳은 산은 나지막하고 산세도 부드러워 산행하기가 좋은 곳으로 등산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곳입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느린세상걷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