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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 500리길로 유명한 대청호의 안쪽에 가보면 여흥 민 씨 집의 공파 종갓집이 지금도 보존이 되고 있습니다. 집의 공파 민충원의 16대 종손이 고종 때 승지를 지낸 민후식이 경기도 여주에서 이주하여 지은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여흥 민 씨는 민칭도(閔稱道)를 시조로 하는데 여흥이라는 지명은 지금 경기도 여주의 옛 이름이기도 합니다.  여주도 안 가본 것이 몇 년 되었는데 그 지역은 근현 - 황효 - 황려 - 여흥 - 여주로 지명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피와 자신의 DNA가 이어지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연결고리라고 생각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라는 것을 기록한 이후에 바뀌지 않았습니다. 같은 성씨라고 하더라도 파가 달라지고 이어 가문이라는 것을 이룬 사람도 있고 그중에 지속된 곳은 제사를 올리는 재실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대전의 여흥 민 씨는 주로 왕족과 연결이 되어 있으며 논산의 파평 윤 씨의 경우 성리학과 같은 명문세가로 알려져 왔습니다. 

여흥민씨 집의공파 종갓집에서 조금만 나오면 풍광 좋은 삼정 생태공원이 나옵니다. 

역시 삼정생태공원은 언제와봐도 풍광이 좋습니다. 

여흥민씨가 조선의 역사에서 대표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두 번으로 기억합니다. 태종이 자신의 아들 세종을 위해 왕후였던 원경왕후의 동생인 민무구, 민무질의 세도를 염려해 처형했을 때와 명성황후의 민씨형제들의 세도정치 때입니다. 물론 그중간에 수많은 여흥민씨가 벼슬을 했습니다.  


삼정동에는 여흥민씨의 묘역이 있는데 이곳에는 민수, 민구손, 민제영, 민광민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누렸던만큼 여흥민씨는 그만큼 많은 부침이 있었습니다.

 

설명을 읽어보니 이곳에 묻혀 있는 사람으로 을사사화로 낙향한 민제영이나 왕조실록 사초로 인해 제주도 유배를 갔던 민수가 대표적이라고 합니다. 


여흥민씨 묘역에서 조금 더 위쪽으로 올라오면 좌찬성 입암 민제인 선생 초장지이며 손자 운춘공 민여검의 묘역이 나옵니다. 민제인 선생은 문장과 역사에 능통하였다고 하며 동국사략과 입암집을 남겼다고 합니다.

 

 


인지도면에서 여흥민씨의 대표인물이라면 명성황후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이곳에 자리한 사람들은 조선 후기의 인물들입니다. 여흥민씨 집의공파 종갓집에서는 민광훈, 민정중, 민진장 3대가 장원급제하였으며 후대의 왕비로는 인현왕후, 명성황후, 순명효황후가 있다고 합니다.

 

이곳은 차량 통행이 많으니 조심해서 이곳을 살펴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좌찬성 입암 민제인 선생 초장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역사속에서 태종의 왕권 강화책과 정치운영방식에 따른 외척세력 제거에 의해 여흥민씨 가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민제의 네 아들들이 차례로 죽임을 당하면서 조선 전기 여흥민씨 가문의 위세는 잠시 추락하였으나, 세종 중반 이후 완전히 복권되어 그후로도 지속적으로 왕비를 배출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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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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