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봄의 분위기가 좋은 서천 목은 이색의 공간 문헌서원은 유학자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논어에서 공자는 어질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아는 것에 대해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군자는 학문으로 벗을 모으고 벗을 통해서 인의 덕을 수양한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물질로 인해 삭막함만 커지는 듯합니다. 

 

 

 

자장은 나라 안에서 반드시 명성이 있고 집안에서도 반드시 명성이 있는 것을 통달했다고 생각했지만 이에 공자는 본바탕이 곧고 의로움을 좋아하며, 남의 말을 잘 헤아리고 모습을 잘 살피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의 쓰임새와 사람의 행동과 눈빛, 정보가 적절한지를 보면 사람이 보입니다. 말은 중요하지만 거짓될 수 있고 살아오면서 몸에 밴 것은 거짓으로 포장할 수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곳에 배향된 목은 이색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곡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습니다. 본관이 한산인 이곡은 1317년(충숙왕 4) 거자과(擧子科)에 합격한 뒤 예문관검열이 되었으며  그는 유학의 이념으로써 현실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결하려 했지만 저물어가는 고려 귀족 정권에서 그의 이상은 실현되지는 못하였다고 합니다. 

 

지식은 쉽게 습득할 수는 있어도 지혜는 쉽게 통달할 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색의 아버지 이곡은 정몽주·우탁(禹倬)과 함께 경학의 대가로 꼽히며  중소지주 출신의 신흥 사대부로서 유학의 이념을 가지고 현실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으나 그 뜻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조용하게 문헌서원의 길을 걸어서 올라가 봅니다. 이곡의 죽부인전은 가전체로 만들어진 글로 남녀가 비록 다르나 그 절개는 한 가지인데, 한 사람에게 꺾였다면 어찌 다시 세상에서 있겠는가라며 절개가 꺾이면 살지 못함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이곳에 물이 항상 담겨 있습니다. 원나라에서 벼슬한 과거급제 자 중에 정식 과거에 합격한 사람은 이곡이 유일하다. 고려시대 ‘죽부인전’으로 유명한 가정 이곡(1298~1351년)은 원나라에서 벼슬하였으며 아들이 유명한 목은 이색은 괴시리 마을이 처갓집이라 경북 울진을 주유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오래간만에 찾은 곳이어서 그런지 정감이 가는 공간입니다. 이곳에도 봄이 만연해 있어서 봄꽃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문화재자료 제125호 문헌서원을 활용한 서천 ‘온고지신 문헌서원’은 지역 문화재 활용사업으로 선정되었는데 지역 문화재 활용사업은 각 지역에 소재한 문화재를 활용해 체험·교육·공연·전시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내용입니다.

그의 장모가 영양 남씨였고, 이곳에 모셔진 아들 목은 이색은 외가인 영덕의 영해면 괴시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목은 이색이 태어난 집터에 고택 한 채를 옮겨놓았고 그를 기리는 공간으로 해 놓았다고 합니다. 영덕을 가보신 분이라면 바로 이 서천의 문헌서원으로 와서 그의 생각을 다시 돌아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느린세상걷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