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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과 같은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는 어촌문화 가치와 삶의 애환을 담고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옛 문헌과 지도에는 해소포(蟹所浦)로 표기되어 있으며, 쇠(金)를 반출했기 때문에 쇳개로 불리고 금포(金浦)로 표기했다고도 했던 곳이 바로 쇗개포구입니다.  

조운에 이용된 배가 그 지역 호족이 마련한 사선이었으므로 조운에는 배의 사용료가 지불되었던 곳이 포구였었다고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스스로가 낮추지 않아도 세상은 여러 방향으로 사람을 위축되게 하고 보잘것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작은 가치를 찾고 그 속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 틈새를 발견하는 것은 개인적인 역량이기도 합니다.

 

 

 

여행은 그런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령은 개인적으로 연관이 있는 지역으로 자주 가보았던 곳이지만 포구라고 하면 대규모의 항구들만 생각했는데 크고 작은 항구들이 적지 않았던 곳이었습니다. 

 


보령의 첫 관문인 대천역과 종합터미널 주변에 위치한 쇗개포구는 2018년부터 쇗개포구 명소화 조성사업으로 사업비 60억 원을 투입해 인도교 설치와 함께 분수광장 조성, 주탑을 설치해 야간경관도 만들어두었습니다.

 

 

 

이곳은 풍광이 좋은 곳이어서 잠시 멈추어서서 바라보아도 좋습니다.   

 

2~3년간의 사업으로 설치된 인도교는 길이 114m, 폭 3.5m로 역세권과 전통시장, 구 시가지를 이어주는 보행축 역할 및 시민의 휴게공간과 친수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바다와 연결된 공간입니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바다와 연결된 이곳이 왜 쇗개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돌이 많이 생산되는 보령의 웅천도 있는데 쇠도 많이 반출되었던 모양입니다. 고통을 잘 느끼고 있다면 살아있다는 반증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갈등과 긴장의 불안의 연속 가운데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일 수는 있습니다. 포구의 주된 기능은 조운(漕運)의 기점으로서의 역할이었습니다. 고려시대에 포는 992년(성종 11)에 군현제(郡縣制) 정비의 일환으로 새롭게 개칭되어 관(關 : 館)·역(驛)·강(江) 등과 함께 군현의 하부행정구역으로 편성되었던 공간입니다. 

 


이곳은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이어서 아마도 물이 상당히 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것을 경험한 두뇌는 어느 순간부터 화수분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포구는 사람들이 삶을 영위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냥 이렇게 한적한 생태의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갯벌과 육지에서 흘러내려오는 물과 바닷물과 만나는 곳으로 가끔 이곳에서 보면 낚시를 하는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쇗개포구에서 막걸리를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다시 돌아가야 하기에 잠시 풍광만 눈과 마음에 담아봅니다. 

 


쇗개포구의 끝에는 나름 잘 꾸며진 정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자에서 앉아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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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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