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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문이 지금까지 유지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중에서 안살림을 책임지는 여성들의 힘은 대단했는데요. 논산의 가문인 광산김씨 역시 그러했다고 합니다. 이제 종가라는 개념은 과거의 이야기로 사라졌을 만큼 희미해졌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이야기는 남아 있습니다.

 

연산 영사재 가는 길목에는 양천 허씨 정려(陽川許氏旌閭)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려는 마을에서 난 충신이나 효자, 열녀를 기리기 위한 것. 김장생의 7대 할머니인 양천 허씨는 광천 김씨 가문에 출가했다가 17세에 남편을 잃었다고 합니다. 

이를 불쌍히 여긴 부모가 그를 개가시키려고 했으나, 아들을 업고 개성에서 시댁인 연산 고정리로 돌아와 평생을 홀로 지내며 아들을 훌륭히 키웠다고 합니다. 김장생 종가 인근에는 이 양천 허씨의 재실인 논산 영모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국에 자리한 종갓집들은 가족공동체의 삶이 견고했을 때의 흔적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종갓집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곳에는 제향 하는 공간인 재실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문화재자료 제378호로 지정된 논산 연산면의 영사재는 광산 김 씨인 김극뉴의 처 의령 남 씨를 제향 하는 곳으로 200여 년 전에 세워진 곳이라고 합니다. 처의 재실을 만들어 두었을 정도로 사계 김장생의 광산 김 씨 비중을 볼 수 있습니다. 

김극뉴는 불천위 사당에 모셔진 김국광의 아들로 그의 묘는 8대 명당이라는 순창군 마흘리라는 곳에 터 잡고 있다. 수많은 김계휘, 사계 김장생과 김집 등, 명신현관을 배출한 데에는 그의 묘의 터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이곳 저곳에 보입니다. 간혹 TV소리도 들리는 것 같네요. 


이곳에서 거주하고 계신 분의 겨울 식량인 모양입니다. 말려지고 있는 생선이 겨울바람에 꼬들꼬들하게 보입니다. 논산에는 같은 영사재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재실이 있는데 그곳은 반남 박씨의 재실이며 이곳과 다른 곳입니다.

이곳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가문을 위해 희생했던 김장생의 7대 할머니 양천 허 씨를 위한 재실인 논산 영모재와 의령 남 씨의 연산 영사재는 광산김씨 가문을 지탱했던 힘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연산 영사재의 작은 문을 통해 뒤로 나오니 '유명조선 정부인 의령 남씨지묘'의 무덤이 보입니다. 무덤앞에 호패형의 묘비는 1689년(숙종15)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재실로 지어진 곳이지만 살림집과 다를 바가 없는 연산 영사재였습니다. 재실은 앞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팔작지붕입니다. 연산 영사재내의 동재와 서재는 최근에 세워진 것이라고 합니다. 김극뉴의 묘는 순창에 있지만 그의 처 의령 남씨의 묘는 연산 영사재의 뒤편 구릉의 동향 사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묘에는 묘비, 문인석, 석등, 상석 등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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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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