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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충현서원은 충청남도에 다양한 글을 쓰면서 여러번 가본 곳인데요. 그곳에 모셔진 사람중 서기선생이라는 사람이 항상 궁금했습니다. 국도를 지나쳐가다가 스윽지나가는 이정표에 쉽게 들어가기가 쉽지가 않더라구요. 눈이 내린 어느날 서기선생의 묘소가 궁금해서 과감히 들어가 보았습니다.

 

다행히 입구까지는 눈이 녹아 있어서 많이 안 걸어 올라가도 되었습니다. 신발이 그냥 평범한 신발이어서 올라가려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거든요. 

 

제사를 모시는 제실도 입구부근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언제 열릴지는 모르겠지만 이곳까지 오는 사람도 적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정표에 신도비가 남겨져 있는 서기 선생은 1910년 융희 경술년에는 정이품 자헌대부 규장각 제학으로 추증 시호 문목공이라 하여 충현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충현서원은 서기선생의 묘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니 이곳을 둘러보고 충현서원을 돌아보는 것도 괜찮은 코스입니다. 

다시 눈을 밟으면서 올라가야 될 시간입니다. 그는 인생에서 가야 할 길을 열어 경사학 방면에 침잠하여 먹기를 잊어버릴 지경에 이르렀으며 일찍이 외물로서 말년에 얻은 바가 많았다고 알려져 있ㅆ브니다. 

 


이제 그의 묘소를 찾아서 올라가 봅니다. 서기 묘소는 아래서부터 얼마 안 올라가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서기의 장년기는 공부한 학문을 실천하기 위해 고향 홍주로 돌아가서 여씨향약을 시행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산길을 걸어서 올라가면 그의 묘소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드디어 서기 묘소에 대한 안내를 만나볼 수 있네요. 

조금더 올라가볼까요. 인생의 완성을 위해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전국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 그중에 충청남도 공주에 잠을 자고 있는 서기도 한 사람입니다. 오래간만에 눈이 내린 길을 지그시 밟으면서 올라가보네요. 요즘에는 많이 추워져서 그런지 집 밖으로 잘 안나가게 되더라구요. 

보령의 대표학자 토정 이지함에게 배웠으며 대항과 중용을 체계적으로 배우게 하기 위해 이소재와 이중호에게 소개를 해주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나아가서 관직을 했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는 주로 강학을 하면서 선유 선정의 정신을 모시는 사우를 세우고 서원을 세우는 등 강학의 정돈과 후진의 양성을 주로 하였다고 합니다. 

공주의 역사인물을 아리는 안내판이 따로 설치가 되어 있네요. 전에 왔을 때는 보지 못했던 안내판입니다. 서기는 조선의 학자이며 자는 대가 호는 고청이며 본관은 경기도이천입니다. 조선 중종 18년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신동이라고 불렸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행적을 간단하게 알려지는 안내판을 읽어보고 다시 묘소를 멀리서 바라봅니다. 찾아보니 그의 행적이나 남긴 학문에 대한 수준도 남다르다고 하지만 충청도의 다른 유학자들보다 알려진 바가 많지 않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제 더 많이 알려저서 공주를 대표하는 인물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겠네요. 



묘소에 올라서서 보니 너무 외지고 접근성이 낮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요즘같은 때는 이렇게 한적한 곳에 있는 것이 오히려 좋네요. 그는 지리산에서 입산 수행을 하고 중악으로서 알려진 계룡산에서도 공부했던 그의 학풍은 계룡산 아래 공암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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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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