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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읍으로 들어가는 도로에서 우측으로 빠지면 금산 칠백의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이었던 영규대사와 조헌이 이끄는 의병이 금산성에서 중과부적의 왜군을 상대로 싸우다가 모두 전사한 것을 기리며 당시의 시체를 모아 큰 무덤을 만들어 칠백 의사총이라 부르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당시 승병장이었던 영규대사는 공주에 묘가 있고 조헌의 묘는 옥천에 있으며 김여온 장군의 묘는 대전 서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김여온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아는 사람이 많지가 않습니다.  

 

이곳으로 버스를 타고 오기 위해서는 27번 서부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고 올 수 있습니다. 

 

안으로 걸어서 들어가봅니다.  표시된 거리보다는 조금더 걸어서 들어가야 합니다. 왕복 4백미터쯤 되는 거리에 김여온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금 모내기를 대부분해서 모를 심고 물을 채워놓은 풍광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믿고 안으로 더 걸어서 들어가야 김여온의 묘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김여온장군역시 1천여 명의 조선군으로 고바야키와 다카카게가 이끄는 2천여 명을 저지시키며 전라도로 진입하려는 그들의 계획을 청주에서 저지했습니다. 그러나 4일 뒤 금산성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는 모두 전멸하고 그들의 혼이 금산과 대전, 옥천, 공주에 잠들게 됩니다. 

 

조선 중기의 무신인 김여온 (1550~1592) 장군의 묘입니다. 조선 명종 5년 (1550)에 공주에서 출생했습니다. 본관은 김해이며 호는 석은입니다. 

김여온은 선무랑, 의영고 주부, 한림원 한림으로 있다가 임진 왜란을 맞아 조중봉, 양응춘, 정자방 등과 의병 선봉장으로 청주에서 왜병을 물리치고 금산으로 진격했다가 전사한 후 이곳에 모셔진 것입니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때는 석축도 무너지고 관리가 잘안되어 있어서 아쉬웠는데 오래간만에 오니 보수가 되어 있네요. 그래도 들어오는 입구까지 잘 알리는 이정표가 있었으면 합니다.  

선조가 명나라로 망명하려다가 자신의 의지대로 하지 못하고 의주에 피난 조정을 설치하고 명나라의 도움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 금산의 이치와 금산성에서는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으며 이땅의 백성들은 왜군과 싸움에서 장렬히 전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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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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