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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체라는 독창적인 서법을 이룩한 명필로 그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동해 바다를 넘어 일본인이나 중국에도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김정희라는 사람인데요. 글로만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어사로서의 행적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서산 대산읍이라는 곳에 가보면 전통시장 건너편에 여러비가 세워져 있는데 그중에 어사 김정희의 영세 불망비도 세워져 있습니다. 

대산에 사는 주민들을 위한 대산읍커뮤니티센터도 조성이 되어 있는 대산읍에는 웅도를 비롯하여 황금산, 삼길포해수욕장, 벌천포해수욕장등의 볼거리가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대산(大山)은 큰 산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망일산에 연유되어 대산(大山)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고 한 번도 지명이 바뀐 적이 없다고 합니다. 

대산의 안쪽에 자리한 망일산의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시계가 탁 트여 공군 레이더 기지가 자리할 만큼 좋은 입지적 여건을 갖추고 있어 위용과 기품이 있는 명산이라고 합니다.  

대산읍 커뮤니티센터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전통시장의 상가 건물이 나오고 그 건너편에 비석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탁트인 이곳은 대산에서 중심이 되는 번화가이기도 합니다. 보령시로 가보면 남포현에서 근무했던 현감들 중에 성달영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순조대에 남포현에서 현감으로 근무를 하였습니다

우측으로 돌아서 위쪽 계단으로 올가보면 어사 김공 정희 영세불망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김정희  암행어사는 5월 충청우도를 다니면서 수령 59명에 대해 이야기를 적어서 보고를 올렸는데 그중에 남포현감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길고 합니다

이 비가 바로 추사 김정희의 비입니다. ‘밤낮으로 오로지 자기 배를 채울 생각만 한다(晝宵一念只在肥已·주소일념지재비이)’(1826년 6월 24일 ‘일성록’)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세금을 과도하게 거둬 원래만큼만 나라에 바친 뒤 나머지는 싹 챙겨 먹는, ‘법 무시하기로는 있어서는 아니 될 부류’라는 것이라고 적어서 장계를 올렸다고 합니다. 

이곳에 세워진 비마다 모두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사람이 사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추사 김정희가 충청도를 방문하기 위해 발길을 시작한 것은 1826년  2월 20일 순조로부터 암행어사 임명장을 받고 ‘백십 여일 동안 읍내와 저자의 중요한 곳과, 산골짜기와 도서지방 외진 곳까지 두루 찾아다니며' 민정을 살피면서였습니다. . 

현지 사정을 모르는 충청감사가 “남포현감 성달영이 세금을 잘 거둬 지극히 가상하니 상을 달라”라고 포상신청을 올리기도 했지만 한 달 뒤에 김정희가 이곳에 와서 현청 금고를 잠가버린 뒤 현감을 파면하고 품계 또한 강등해 버렸다고 합니다. 

 

비가 세워져 있는 사거리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면 대산읍 행정복지센터가 보입니다. 대산리는 읍소재지에 위치한 구진(舊鎭)을 중심으로 정자동과 원두골, 매남리와 각골 등의 일원을 말합니다. 1991년 12월 1일 대산면이 대산읍(大山邑)으로 승격됨에 따라 대산읍 대산리가 되었다. 

충남의 곳곳을 다니면서 만나는 지명의 유래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스며들어 있어서 좋습니다. 예산의 추사 김정희의 흔적은 이곳 서산에서도 이어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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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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