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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고장 부여의 부여군청이 자리한 곳의 바로 옆에는 조금만 걸어나가도 유적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여는 어디를 보아도 옛 흔적이며 유물들이 남아 있는 고장입니다. 날이 좋은 날 부여로 찾아가서 한낮의 시간으 보내보았습니다. 

 

원형교차로에서 매번 지나쳐가다가 이번에는 공원을 가듯이 살포시 들려보았습니다. 부여구아리백제유적지는 부여군청의 바로 옆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44년 경찰서 신축과정에서 '天王(천왕)'명 수막새와 연화문 수막새편이 출토되어 일본인들에 의해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고 합니다. 

공원처럼 조성이 되어 있어서 부여에서 살고 계시는 분들이 아니면 이곳이 유적지인지 모를겁니다.  1966년에 상수도 송수관공사 때 인접도로변에서 동제귀형식판(銅製鬼形飾板)이 출토되어 중요한 유적지로 주목받았는데요. 현재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88호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부여 구아리 유적은 그 중 간선도로 일부에 해당하는 중앙로의 북편지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유적은 금강의 우회부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유적을 중심으로 북편은 표고 106m의 부소산이 금강에 임해 자리하고, 남편은 시가지와 충적저지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곳의 중요한 유적은 바로 우물이라고 합니다. 2기의 우물시설은 모두 추정수로 바닥면인 풍화암반층을 깊게 판 뒤, 기초를 닦고 석축을 쌓아올렸다고 합니다.  북편 우물지가 동서 약 515cm, 남북 약 325cm, 남편 우물터가 동서 약 251cm, 남북 약 257cm 정도입니다.  

 2기의 우물터는 출토유물로 보아 백제시대에 구축되어 백제가 쇠망하면서 함께 폐쇄된 것으로 여겨져 백제시대 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우물인지 알 수 있도록 잘 조성해두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청명이라는 절기에 와서 그런지 몰라도 나무와 새소리가 들려오는 공원입니다. 주변에는 잘 정비된 주택이 있어서 살기에도 좋은 곳입니다.  

역시 청명이라는 절기답게 봄꽃이 피어 있네요. 유적지의 중앙에 방형의 이중공(二重孔)이 있는 방형목탑심초석으로 알려진 석재와 천왕명 수막새가 확인되어 이 곳이 천왕사터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시간이 지나서 더 발굴해보면 사실을 알 수 있겠죠. 

부여군청과 구아리 유적지를 이어주는 원형교차로에는 성왕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무령왕의 아들로 이름은 명농. 즉위 후 서울을 웅진에서 사비로 옮겨 안팎의 제도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했으며 국호를 '남부여'라 개칭하여 부여족의 전통을 강조한 성왕은 수도를 사비로 옮기고 일본과의 교류를 확대한 백제의 제 26대 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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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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