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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에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충무공 시호가 붙여진 정충신을 모신 사당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살포시 찾아가 보았습니다. 

 

정충신은 고려말 명장 경렬공의 9대손으로 전남에서 태어났는데 공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천문, 지리, 의술, 시문 등 다방면에 정통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지만 사당과 주변에 있는 오래된 나무들이 저를 맞이해주고 있습니다.

 

 

정충신은 1623년(인조 1) 안주목사로 방어사를 겸임하고, 다음해 이괄(李适)의 난 때는 도원수 장만(張晩)의 휘하에서 전부대장(前部大將)이 되어 이괄의 군사를 황주와 서울 안산(鞍山)에서 무찔러 진무공신(振武功臣) 1등으로 금남군(錦南君)에 봉해지게 됩니다.

 

 

 

1636년 3월 그가 우려한 것과 같이 조선의 조정에서는 청나라를 배척하는 주전론이 득세하여 청과 단교하는 사신을 보냈고 후일 병자호란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충무는 죽은 뒤 내려진 시호(諡號), 금남은 임금이 큰 공을 세웠다며 준 봉호(封號)라고 합니다. 

 

 

 

이곳의 추모제향은 평생 호국충절로 국난극복에 몸 바치신 충무공 정춘신장군 서거를 햇수를 해아려 그 위훈과 추모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합니다. 

 

 

 

천문·지리·복서·의술 등 다방면에 걸쳐서 정통했으며, 청렴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광주(光州)경렬사(景烈祠)에도 제향되었습니다. 저서로 『만운집』·『금남집(錦南集)』·『백사북천일록(白沙北遷日錄)』 등이 있다. 시호는 충무(忠武)입니다. 

 


충무공 정충신에 대한 이야기를 접해보았습니다.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이 그에게 사서(史書)를 가르쳤는데 머리가 총명하여 아들같이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정충신은 우리 역사상 가장 불행했던 시기인 선조-광해군-인조 대의 무장으로 시대 모순을 헤쳐나간 보기 드문 개혁파였다고 합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직전까지 오직 군인 외길을 걸어온 금남군 정충신 장군의 일생은 드라마적으로 보입니다. 

 


정충신은 키가 작으면서도 씩씩했고 덕장이라는 칭송을 들었으며, 민간에 많은 전설을 남겼던 사람입니다. 

 

매년 정충무공께서 쓰시던 투구, 관련문헌, 서군사명기(중요 민속자료 제36호), 군복 등이 모셔져 있는 진충사에서는 매년 4월 25일 추모제향을 올리고 있습니다.

정충신의 묘로 가는 길목은 사당의 뒤쪽으로 올라가면 볼 수 있습니다. 정충신의 사당은 충남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서산의 진충사에는 중요 민속자료 36호로 지정된 국가 문화재인 정충신 장군의 영정, 군기, 군복, 향로, 향합과 충청남도 문화재로 지정된 문화재 40점이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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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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