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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로 가는 길목에서 찾아가 본 김제의 이석정생가는 실학과 옛사람 생각을 동시에 하는 곳이었습니다.  찾아보니 그를 이야기할 때 실학을 빼놓을 수가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정통적인 가치에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실학은 지금까지 유지하던 그런 관점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변화에 맞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생각이 정제된 사람과의 대화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보통은 그런 사람이 많지가 않기에 누군가를 찾아가고 명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냥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지식 외에 다른 지식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정제된 사람은 보통 역사 속에 혹은 책 속에 있습니다. 책을 한 권 쓰기 위해서 많은 정신적인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마치 그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것처럼 대화를 하게 됩니다. 

 

김제에 자리한 이성적 선생 생가는 초가지붕의 안채는 조촐하게 지어진 평범한 농가의 모습으로 석정은 여기에서 주로 기거하며 손님을 맞거나 후학들을 지도하였다고 했던 공간입니다. 집의 앞마당에 자리한 우물에는 지금도 물이 나오는 것 같은데 먹을 수는 없습니다.  

 



조선 후기의 실학은 진보와 닮아 있는 점이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도 실학자였는데 그는 소일이란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소일이란 날을 소비한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소일이란 단어 앞에서 인생은 고여서 썩게 됩니다. 썩어가는 시간에 인생을 탕진하며 그냥 보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고즈넉한 모습의 초가집의 전형을 하고 있는 이석정 생가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마음이 하는 일은 낯빛을 닮아간다고 합니다. 얼굴은 얼의 꼴으로 마음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어떤 걸 보고 듣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얼굴에서 드러난다고 합니다. 사람은 생긴 대로 노는 것이 아니라 노는 대로 생긴다고 합니다. 천문, 지리, 의학, 수학, 서화 등 두루두루 통달한 유학자인 통유(通儒) 9살에 통감通鑑을 모두 읽었던 이석정의 얼굴은 어떠했을까란 상상을 해봅니다. 

 

초가집의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보았습니다. 실학사상을 낳게 한 것은 조선 후기의 역사적 현실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실학자들은 농촌의 피폐상을 극복하는 것이 큰 과제이기도 했었습니다. 농촌이 피폐하게 된 것은 결국 착취에서 비롯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인사들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국적으로 성장하였으며 이정직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수많은 인재들이 이곳에 모였을 때를 상상해보았습니다. 

 

 

바탕 없이 꽃만 피려고 하지도 말고 바탕 없이 무언가를 이룰 수는 없다고 합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이 문장 공부라고 했다고 합니다. 지금과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생가를 돌아보면서 그 역시 많은 시간을 들여서 실학의 꽃을 피웠으리라 상상해봅니다.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습니다. 책 속의 사람을 만나고 견문을 넓히는 것은 뿌리를 통해 줄기로 양분을 끌어올리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가지 끝에 양분이 전달되어야 이처럼 아름다운 꽃송이를 피우게 됩니다. 문장은 바로 이렇게 해서 피워낸 꽃송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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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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