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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에 가면 우륵박물관과 함께  가야금을 만드는 장인이 옆에 거주하면서 가야금을 제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작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체험등의 활동이 위축이 되었지만 올해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우륵이 집대성한 가야 음악은 신라의 대악(아악, 궁정음악)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우륵이 가야에서 지었던 12곡은 상가라도(上加羅都), 하가라도(下加羅都), 보기(寶伎), 달기(達己), 사물(思勿), 물혜(勿慧), 상기물(上奇物), 하기물(下奇物), 사자기(師子伎), 거열(居烈), 사팔혜(沙八兮), 이사(爾赦)이라고 합니다. 

 

 

 

그의 음악은 계곡, 법지 만덕이라는 세 제자로 인해 우륵이 만든 12곡을 가리켜 “번거롭기만 하고 바르지 못하다.”라며 5곡으로 줄여 버렸다고 합니다. 

 

 

기록이 명확하지 않을 때 여러 가지 전설이 더해지고 거기에 더 많은 이야기가 붙게 됩니다. 우륵이라는 사람은 대가야가 있던 고령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한데 우륵은 가야국 성열현(省熱縣)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가실왕이 우륵에게 “모든 나라의 방언도 각각 서로 다른데, 성음(聲音)이 어찌 하나일 수 있겠는가.”라며 12곡의 악곡을 지으라고 했다는 이야기만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우륵의 생가가 있는 이곳은 정정골 마을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보면 이곳이 많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듭니다. 앞서 말한 성열현 출신이라 말했던 우륵의 이야기와 연관이 있습니다. 악성 우륵이 이곳에서 가실왕의 명을 받아 가야금을 창제하여 연주하니 그 소리가 골을 받아 이곳에 울려 퍼져 정정골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음악은 다양한 형태로 소비가 되고 있습니다. 오래전 보다 훨씬 많은 음악이 등장했지만 미디어에 의해 특정한 분야의 음악만 소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륵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는데 이 모습처럼 살았는지는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삼국 통일을 완수할 때까지 민심을 하나로 모아야 할 필요에 의해 우륵의 음악은 신라로 가서 전성기를 이루었다다고 합니.

 

 

 

이런 형태의 초가집은 매년 관리가 되어야 보존이 가능합니다. 우륵은 우리나라 3대 악성중 한 사람으로 무려 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 

 

 

 

봄꽃이 필 때 우륵을 찾아와서 음악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루하루 설레는 음악의 말이 전해질 때 삶의 에너지가 풍요로워진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카페도 생기고 우륵의 이야기가 더 많이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우리의 음악의 가치를 더많이 알게되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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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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