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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평균수명이 많이 늘어서 65세의 경로우대나이를 70세로 올린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불과 10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평균연령이 낮았습니다. 그래서 환갑을 상당히 의미있게 보며 잔치를 했던 것이죠. 한국의 석재산업 중심지라고 불릴 만큼 많은 돌이 생산되고 다듬어지고 있는 보령 웅천읍에는 최상집의사유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웅천읍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최상집의사유적의 이정표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인 1906년 민종식은 부여군 내산면 지티에서 의병을 일으키는데 이때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출신인 최상집 의사의 나이가 58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의병을 모집하는 소모장으로 활동하였다고 합니다. 

 

최상집 의사의 흔적이 있는 곳 옆에는 효자 최강필 정문각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래 다른 곳에 있었으나 공군사격훈련장이 들어서면서 최근 이곳으로 옮긴 것이라고 합니다. 효자문은 1618년 열녀문은 1887년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최상집 의사 유적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데 효자문이 하나 저 자리하게 되었네요. 

의병으로 활동하였지만  무기 등의 열세로 인해 홍주성이 무너지면서 최상집 의사를 비롯한 유준근, 이식, 신보균, 문석환, 남규진 등과 함께 대마도 유배형을 받고 끌려갔지만 협박과 회유에 굴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최상집 의사는 3년 만인 1908년 10월에 석방되어 한국땅을 밟았으나 의병운동의 후유증으로 병이 들어 이듬해인 1909년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한글로 된 비도 보입니다. 최상집의사항일운동추모비입니다. 

홍주라고 하면 홍주읍성이 먼저 생각나고 먹거리로 불고기가 유명한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많은 열사들이 나온 것을 알려져 있습니다. 

 차량산맥의 지맥이 이어진 곳이서 잔구성 산지가 솟아 있는 곳으로 웅천에 가면 모든 산업의 중심에 돌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돌이 이곳저곳에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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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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