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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힘은 배움에 있었으며 그 힘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가문을 이어나가는 것은 학문만한 것이 없죠. 그래서 전국에는 가문이 세워놓은 강학의 공간들이 남아 있습니다. 부여 임천면에는 많이 모여사는 성씨가 지금도 집성촌을 이루고 있습니다. 풍양조씨(豊壤趙氏)는 조선 말기 후안동김씨(안동김씨에는 같은 본관을 쓰는 선안동김씨와 후안동김씨가 있다)와 함께 대표적인 세도 명문가로 부여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5호인 흥학당입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과천현감을 지낸 조태징을 배향한 남산사의 부속건물로 1770년(영조 46)에 세웠다고 합니다. 

이 지역에서 터를 잡고 있던 풍양조씨 문중이 학문을 강론하고 이를 게을리하지 않고 일으킨다는 뜻으로 건물 이름을 지었다 합니다. 

홍살문을 거쳐서 들어가면 ㄷ자형으로 지은 이 건물은 ㄷ자형의 중앙 4칸에 아주 넓은 우물마루를 깐 대청을 드려 문중 유생들의 강학장소로 사용되었던 흥학당이 나옵니다. 

 

흥학당은 대청과 건넌방, 작은 부엌까지 달려 있으며  3벌대의 자연석으로 쌓은 낮은 기단 위에는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덤벙주초석에 네모기둥을 세웠다고 합니다. 

 

부여라고 하면 백제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적지 않은 유적이나 유물이 많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전국에는 후손들을 가르치던 곳의 이름에 흥학당을 많이 사용합니다. 말 그대로 배움이 흥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대대로 풍양조씨들의 공적을 기린 비가 세워지게 됩니다. 

 

강학공간이었지만 하나의 살림집으로 부족함이 없어보이는 집입니다. 마당도 넓은데 열린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문화재 활용을 하면 좋겠네요. 

 

흥학당의 뒷편으로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곳이  나옵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임천군 남내면 지역으로 고종32년에 장정리, 후포리, 탑리, 하곡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장정과 하곡의 이름을 따서 장하리라 하고 부여군 장암면에 편입되었다고 합니다. 조선 영조 때 창건된 남산서원에는 조태징, 조명규모, 조주진 3인이 배향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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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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