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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암서원은 1544년(중종 39) 근암 서당으로 창건된 문경의 대표서원입니다. 1669년(현종 10) 홍언충과 이덕형의 위패를 모시고 근암서원으로 개칭되었다고 합니다. 1693년에 김홍민(金弘敏)과 홍여하(洪汝河)를 추가 배향하였으며, 1786년에 이구(李榘)·이만부(李萬敷)·권상일(權相一)을 추가로 배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근암서원으로 가는 길목에는 오래된 흔적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글솜씨가 뛰어나 경진삼이라고 불렸던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성과 한음으로 알려진 이항복과 이덕형 그리고 이정립입니다. 세 명 중 한 명인 이덕형을 모신 서원이 문경에 있습니다. 

문경의 근암서원은 경진삼이중 한 명이었던 이덕형과 홍언충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이덕형을 어릴 때부터 차분하고 진중하였다고 합니다. 

성실하였던 이덕형은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글을 잘 지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덕형을 부모는 적극적으로 지원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덕형은 경진삼이뿐만이 아니라 임진왜란 때 시대의 영웅으로 활약하며  3리(李)로 불리기도 했는데  3리란 이원익 · 이항복 · 이덕형을 말합니다.  

활발하게 활용이 되는 공간이기에 다른 서원보다도 잘 정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문경의 인문학을 공부하시는 분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상시 활용하기에 사람이 살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덕형을 모셨다는 근암서원으로 걸어서 들어가 봅니다. 이덕형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위풍이 당당하고 언변이 뛰어났으며, 언제나 상대에게 호감을 주면서 상대를 압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앞서 말한 3리라고 불렸던 세 사람의 나이는 이원익 · 이항복 · 이덕형 순이었으나 죽은 연대는 이덕형 · 이항복 · 이원익 순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태어나고 죽은 순서는 반대였던 것입니다.    

근암서원에서 자주 열리는 강의는 역시 인문학이 주제입니다. 인문학(人文學, 영어: humanities)은 인간과 인간의 근원 문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옛 가르침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믿을 수 없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친밀하고 솔직한 사람이어야 하며 그런 사람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자신도 의지할 값어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옛 사람의 가르침에 의하면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치 말고 내가 자기 자신을 알려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자기의 생각과 의견을 글로 잘 표현하는 사람을 문재가 뛰어나다고 말합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시조는 누구나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그 시조를 읊은 사람은 양사언이라는 사람인데 양사언 형제는 이덕형의 글솜씨를 보고 나서 군은 자신의 스승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근암서원은 인문학과 관련된 많은 행사가 진행이 되는 곳입니다. 인문학은 말하는 법과 처신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사람은 생각한 것을 가볍게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몸 상태가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덕형은 임진왜란 때 많은 활동을 했는데 특히 이순신이 노량의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했을 때 동요하는 수군을 통제하고 수습에 나섰다고 합니다. 그가 사망했을 때 절친이었던 이항복은 이덕형은 도량이 넓었으나 불의와는 타협할 줄 몰랐으니, 결국 이 때문에 죄를 얻었고, 또 그 때문에 만백성의 추앙을 받게 되었다며 글을 지어 그를 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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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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