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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남쪽에 갔다가 어사길이라고 조성되어 있는 길을 걸어본적이 있습니다. 어사하면 바로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천안의 박문수라고 할정도로 박문수에 대한 이미지는 암행어사와 연결성이 큽니다. 오래간만에 천안을 찾아간김에 박문수의 집안인 고령박씨종중재실로 가볍게 걸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천안에 묻혀 있는 박문수는 살았을때 소론의 영수인 이광좌에게 배운 사람입니다. 1723년 경동 3년에 증광문과에 합격하며 벼슬길을 시작한 박문수는 백성의 고충을 들어주는 그런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안에는 역사적인 인물이 많이 나온 곳이기에 그 흔적을 이어주는 역사문화둘레길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박문수의 묘로 가는길이나 고령박씨 재실로 이어지는 길도 역사문화둘레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고령박씨 재실입니다. 고령박씨 재실은 천안을 대표하는 고택이지만 지금 후손들이 살고 있기에 상시로 안을 보지는 못하지만 외부에서는 돌아볼 수 있습니다. 

노을이 지는 곳에 박문수상이 백성을 보살피듯이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박문수는 벼슬길에 올라선지 1년만인 영조 1년에 노론이 집권하면서 삭탈관직을 당했다가 1727년 당쟁을 조정하기 위한 영조의 조치로 인해 어사로 영남에 파견이 됩니다. 

박문수는 다양한 일들을 수행했습니다. 그중에 농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군포의 폐단은 이후 정조의 인물 정약용도 지적했지만 박문수 역시 그 폐단을 알고 있었고 1739년 함경도 진휼사로 있을때 경상도의 곡식 1만 섬을 가지고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기까지 합니다.  

은석산의 정상을 넘어가면 박문수의 묘가 나옵니다. 은석산을 등산하는 길은 어사 박문수 테마길입니다. 박문수는 조정에서 병조판서, 어영대장, 호조판서, 판의금부사, 예조판서, 한성판윤, 예조판서등 조선의 요직을 겸했습니다. 

고령박씨재실이 있는 곳에는 개나리가 피어 있습니다. 개나리는 노란색으로 피어 봄이 왔음을 알리는 소박하면서도 화사한 꽃입니다. 

 

이런 재실의 기능으로는 첫째, 시향제나 묘사의 준비장소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선산·종산·위토 등 문중공유재산문제, 재실의 유지나 수축문제, 유사나 산지기의 문제 그리고 그해 제례과정 전체평가 등을 논의하는 종회 장소로서의 기능도 합니다. 

 개나리가 지천에 피어 있으니 마음이 설렙니다. 환자들에게 노란 꽃을 선물하는 것은 빠른 치유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산에서 제일 먼저 피는 꽃은 생강나무 꽃이고, 들에서 제일 먼저 피는 꽃은 유채꽃이며, 울안에서 제일 먼저 피는 꽃은 개나리라 했습니다. 박문수의 혼이 잠들어 있는 은석산에는 개나리가 피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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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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