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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에 가면 강역역사문화연구원이라는 곳이 있는데요. 그곳에는 강경역사문화를 발굴, 보존하고 문화재 및 근대건축물 집대성에 모든 힘을 기울이고 있는 분들이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설명을 들으면서 강경 옥녀봉을 구경하니까 남다른 느낌이 들더라구요. 




옥녀봉하면 하늘의 옥황상제와 연결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하늘나라의 선녀가 내려온다는 전설에는 대부분 옥녀봉의 전설과 엮여 있는데요. 전국의 옥녀봉의 공통점은 모두 옥녀와 관련이 있는데 그곳 마을의 특징에 맞게 전설이 따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강경에는 큰산이 없고 작은 돌산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산이 높지는 않지만 주변을 한번에 둘러볼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 경치가 참 좋더라구요. 




강경도 살짝 추운 곳이라서 그런지 벚꽃이 늦게까지 피어 있는 것 같더라구요. 




벚꽃이 휘날리며 라는 노래를 부르며 벚꽃 자갈길을 걸어봅니다. 



최초로 기도를 하던 초가집이 보존되어 있더라구요. 이곳은 기독교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저랑 같이 동행했던 사람들은 아이들과 함께 온 일행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역사이야기가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모두들 신기한듯이 방안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지병석 집사는 1895년 전도되어 이곳에 다른 분들을 전도하였고 자신이 살던 이 초가집을 교회겸 사용했다고 합니다. 



방안에는 한국 최초 침례교회 역사가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설명을 듣고 위로 올라오는데요. 3.1운동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강경으로전대된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0일부터 4월 7일까지 7회에 걸쳐 대규모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운동이 충청도에서는 최초였다고 합니다. 



강경의 옥녀봉은 일본의 흔적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한반도에 세워진 두 번째 일본 신사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여행갔을때 보았던 그런 신사가 이곳에 자리한적도 있었다니 조금 신기한 것 같습니다. 



그 신사가 철거되고 철거되고 남은 돌이나 나무는 이 집을 지을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앞에 보이는 돌이 바로 일본 신사에 사용되었던 기단석이라고 하네요. 




이 나무도 신사를 지을때 사용되었던 나무인데요. 아직도 쓸만한 것 같습니다. 



일본이 건물은 참 잘 짓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기단석이 튼튼해보입니다. 이곳에는 장독대들이 얹어져 있더라구요. 



봄꽃을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집니다. 



이 오래된 고목이 있던 근처에 신사 건물이 있었는데 해방되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철거하였다고 합니다. 



이 움푹파인 돌은 신사로 들어가기전에 손을 깨끗이 씻고 들어가라고 가져다놓은 돌이라는데요. 지금은 그냥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른 분들이 관심을 보이자 강경의 역사와 이곳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열심이 설명을 해주시고 있더라구요. 



강경 옥녀봉은 예전에는 봉수대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옥녀봉의 옛 이름은강경산이었는데요. 이곳이 있던 자리에는 수운정이 있었고 옆에는 봉수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강경 옥녀봉 봉수대는 직봉이 아닌 간봉으로 익산군 용안면 광두원산의 봉수를 받아, 황화산성이나 노성으로 연락했다고 합니다. 



큰 바위가 있는 곳에 한자로 글이 새겨져 있었는데요. 이것은 해조문으로 암각문의 글은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원리를 전통사상에 따라 풀이해서 만조시각과 물의 높이를 계량화하고 표시하였다고 합니다. 즉 과학적인 계산에 의해 적어놓았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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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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