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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의병은 을사늑약에 저항해 치열하게 항전한 대규모 의병으로 1906년 3월 15일 광시장터에서 일어나 청양의 합천에서 전투를 치르고 해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1906년 5월 9일 내산면 지티에서 이용규가 모집한 의병을 주축으로 다시 봉기하여 대규모 항일 무장투쟁의 시발이 되어 역사적 의미가 깊다고 합니다. 

부여와 보령사이에 자리한 이곳에 지티의병기념공원이 있는데요. 지금도 주변을 정리하는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구국일념으로 초개와 같이 산화한 의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부여군의 홍주의병 지티의병 기념공원은 올해에 완공이 되었습니다.  올해 5월에는 이곳에서 제1회 홍주의병 지티봉기 기념식도 열었습니다.  기념식은 부여군 출신 홍주의병 후손과 박정현 부여군수, 장성용 부여군의회의장, 관내 주요 기관․단체장을 비롯한 군민 100여 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태극기에서 시작되어 홍주의병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걸으면서 읽어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도 많이 알고 있는 역사적인 변화는 바로 을사늑약이었습니다. 외교권과 주권을 일본에게 빼앗긴 조약이었습니다. 이때 항일의병이 일어난 것입니다.  

부여군 내산면 지티리는 을사늑약 이후 일어났던 의병들의 항일 구국운동 가운데 제일 규모가 크고 가장 치열한 항전을 벌였던 홍주의병이 일어난 의기의 성지라고 합니다.  

홍주의병 지티봉기 기념비에는 전면에 홍주의병 지티봉기 기념비라고 쓰여져 있고 후면에는 1906년 5월 9일 창의의 깃발을 높이 올려 대규모 항일 무장투쟁으 시발점이 된 이곳 지티에 의병봉기 기념비를 세웠다고 쓰여 있습니다.  

옛날에 일어났던 장소를 기억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진구의 의사이용규전과 홍순대의 해암사록에서 그 장소를 찾아서 원형이 남아있던 시절부터 현지에서 거주했던 김찬흠의 고증으로 위치를 고증받았다고 합니다. 

부여군의 한적한 이곳에도 장터가 있었는데요. 안병찬, 박창로, 이세엥 등 민종식 의병대장 추대해서 민종식 등 의병 300여명 봉기하여 홍주성 공격을 하였지만 실패한후 공주 진위대와 의병부대 전투후 의병진이 와해되었다고 합니다.  

의병을 일으키는 데 적합한 곳은 일반적으로 대부분 자기가 자란 고장이나, 지방관으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그곳 지방민들이 잘 따를 수 있는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방문해보니 앞으로 보령과 부여의 경계선에 있는 이곳을 잘 활용해서 관광자원으로 자리매김해도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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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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