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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라는 도시는 전라북도에서 가장 풍요로운 도시이며 그 풍요로 인해 일제강점기에는 힘들었던 시기를 보냈던 곳이기도 합니다. 보존 가치가 높은 만경강 일대와 모악산도립공원, 원평천과 금구천을 '비오톱' 즉, 생태 서식공간 우수 지역이기도 한 김제시는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울리는 자연 친화도시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김제의 속살을 보기 위해 김제시청으로 먼저 찾아가보았습니다. 전라북도의 4대 도시로 웅비하는 김제시에서는 2023년 김제 시민기록물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김제시 기록화 사업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거나 복원되기 어려운 김제의 공간과 주민의 삶 등에 대한 기록을 남겨 기록 자산으로 활용하고 후대 전승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시기에 김제에서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옛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전시전은 12월 8일까지 김제시청 로비에서 ‘마을의 기억, 김제의 기록이 되다’라는 주제로 전시하고 있으며, 평일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기억은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이렇게 기록으로 남아있게 되면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기억되는 것입니다. 

김제는 오랜시간 행정구역으로 군이었는데요. 김제군 시장의 모습을 보니 정말 옛날 모습입니다. 1950년대 김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겁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만경군과 금구군이 김제군으로 통합되어 17개 면이 되었는데요. 이날 김제시청을 방문해보고 금구면의 오래된 흔적을 찾아가보려고 합니다.  

 

김제하면 농업과 뗄레야 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농업을 주생활로 하는 이 지방에는 농경문화 속에서 이루어진 벽골제의 쌍룡놀이와 풍년을 비는 마을당제 때 행하는 선돌줄다리기가 유명합니다. 지금도 김제시의 곳곳에 가면 독특한 마을문화가 남겨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잊혀져간 사람들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김제 마을의 다양한 색깔을 볼 수 있어서 남다른 의미가 있는 전시전입니다.  

김제를 대표하는 저수지이며 매년 축제가 열리는 백골제의 옛모습도 볼수가 있습니다. 벽골제의 쌍룡놀이의 내용은 벽골제 밑에서 백룡과 청룡이 싸우다가 백룡이 패하는 광경과, 단야가 청룡 앞에서 제방의 영원한 보호와 원덕랑의 성공을 빌면서 희생되는 광경을 놀이로써 연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원래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과 건물들도 보이고 김제에 전해져 내려오는 민요가 들리는듯 합니다.  모를 내기 전 논고르기에서 벼를 베어 내기까지 전 과정의 노래가 잘 전승되고 있다고 합니다. 

 

“패랭이 꼭지에다/장화를 꽂고서/마호라기 춤이나 추어보세/여·이여·어여허·여루우/상·사아 뒤·이여……” - 모심기노래

김제읍사무소로도 사용되기도 했던 김제동헌은 저도 가본적이 있습니다. 동헌은 일반적으로 공무를 수행하는 외아(外衙)와 관리의 가족이 생활하는 내아(內衙)로 나누어지는데 이 건물은 외아에 속하게 되는데요. 정면 7칸, 측면 4칸의 익공계(翼工系) 겹처마 팔작지붕건물로 1974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김제시청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김제시 곳곳의 사진을 보고 금구로 이동을 했습니다.  김제 금구에는 전북 천리길중 하나인 금구 명품길이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1코스와 2코스로 나뉘어져 있는 명품길에는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 자연의 신선함도 만끽해볼 수가 있습니다.  

그중 한곳이 금구향교로 발길을 해보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금이 생산되기도 한 금구면은 평야가 발달한 곳으로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금구산성(전라북도 기념물 제85호)과 금구향교 대성전(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3호) 등이 남아 있습니다. 

홍살문에서 들어오면 만화루까지 양쪽에 비가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김제에 자리한 몇몇 향교뿐만이 아니라 전국에 있는 향교 중에 이렇게 비가 많이 세워져 있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금구라는 지역이 역사에서 더 많이 알려지게 된 것은 바로 정여립이라는 사람때문입니다. 조선시대 흉년과 당파싸움 등으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궁핍해졌을 때 정여립은 활동을 했었는데요. 혈통에 의해 임금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능력이 가진 사람은 누구나 임금이 될 수 있으며 세상의 모든 것은 백성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세력을 확장해나갔던 사람입니다. 

금구향교는 역사가 오래된 곳으로 고려 후기인 1390년(공양왕 2)에  건립된 교육기관으로 입구에 자리한 만화루 (萬花樓)를 비롯하여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가 남아 있습니다

금구향교의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만화루는 2층 누각 형식의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서  세력을 확장해나가던 정여립은 결국 왕권을 위협하는 대상으로 진압되며 1천 명이 희생당하는 기축옥사가 발생하게 되며 그 후 금구현으로 강등되어 김제군에 예속되었다고 합니다. 

금구향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김제 서강사라는 곳이 있습니다. 김제의 서강사는 김제의 순국선열인 장태수를 모신 사당으로 장태수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변해 가는 시대에 적응하고, 이를 주체적으로 이끌어 가기위해 노력을 했던 사람입니다.  

현판에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고 쓰여있으며  일제가 장태수를 으뜸 위패로 모시는 서당 건립에 반대하였기 때문에 고려 말기의 충신인 송은(松隱) 장안세(張安世)를 으뜸 위패로 하고 장태수를 배향하기로 한 뒤 건립 허가를 받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김제 서강사의 존경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 방선재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기와집과 함께 장태수의 영정을 모신 사우 서강사와 내삼문, 외삼문, 객사인 계선재(啟善齋)등 부속 건물 7동이 있고, 경내 밖에는 고직사 1동이 남아 있습니다.  

어떤 도시의 풍경은 그곳에 살아왔던 공동체가 경험과 성찰을 통해 빚어낸 열매로 그 안에는 말은 없지만 다양한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김제 愛 여행 in을 하면서 김제의 색채를 잠시 엿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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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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