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오래전에 일어났던 동학농민운동은 가장 근대적이며 자주적인 백성의 운동이기도 합니다. 동학농민운동으로 인해 삼일운동도 가능한 것도 사실이라고 합니다. 더 이상 왕조사회가 자신의 삶을 나아지게 해주지도 않고 개선될 것도 없었던 그 시기를 스스로 개척해 나가려는 운동이기도 했습니다. 

정읍이라는 지역을 연상하면서 생각나는 키워드를 꼽으라면 동학농민운동, 쌍화차, 구절초입니다. 전북 정읍시에 가면 고부면이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고부면은 바로 동학농민운동이 처음 일어난 곳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동학농민운동은 일제를 이 땅에 들어오게 한 구실이 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일본인들을 이 땅에 들어오게 한 다음 강제적으로 땅을 수탈하여 가지게 해 주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그대로 이어나가기 위해 일본에서 자재를 가져와서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정읍에도 남아 있는 적산가옥들이 있습니다. 

쌀이 많이 생산되던 곳이나 쌀을 실어 나를 수 있는 항구가 있는 곳에는 일본인들의 적산가옥이 많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정읍에는 구마모토 사택과 농산과장 사택이 있습니다. 목조를 기반으로 전형적인 일본인들의 집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행지로 잘 알려진 일본의 구마모토는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일본 경시청이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허위 소문을 퍼뜨리고 이를 근거로 계엄령을 선포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 군대·경찰·자경단(自警團, 퇴직경찰)에 의해 6000여 명의 조선인과 일본인 사회주의자가 학살된 관동대학살은 대지진이 일어난 직후인 1923년 9월 1일 시작됐습니다. 

전북지역 최대의 지주가 된 구마모토는 1902년 화호리에 진출하였다고 합니다. 이곳의 명당자리에 사택과 창고 등을 설치하여 정신적, 물질적으로 하호리 주민들을 수탈하였습니다. 그의 농장은 정읍, 김제, 옥구, 익산, 부안 26개 면에 걸쳐 있었으며 무려 3,500 정보에 달했는데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농지라고 보면 됩니다. 

정읍에는 적지 않은 근대문화유산이 남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반 대중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농촌으로 실제 가장 많은 고통을 받았던 것이 농촌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책을 읽고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그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깨어있는 사람은 쉽게 물들이지 못합니다. 일본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한국민족말살정책에서 사회경제적 수탈뿐만이 아니라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정읍에서는 매주 토요일 정읍역 앞에서 출발하는 정기투어로 정읍의 자랑이자 사계절 아름다움을 간직한 내장산과 세계유산인 무성서원, 우리나라 민주주의 시초인 동학농민혁명기념관과 전국 유일의 정읍쌍화차거리 등 시내투어로를 해볼 수가 있습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느린세상걷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