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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그리고 매학정

 

매화하면 선비들의 꽃으로 잘 알려진 꽃이면서 봄이라는 계절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매화나무를 마당에 심어놓는 선비들이 예로부터 많았다고 합니다. 선비들은 신흠의 시에서처럼 ‘일생을 추워도 향을 팔지 않는’ 매화를 보며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쉽게 타협하거나 굽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구미에 강이 흘러가는 풍광을 보면서 나지막한 언덕에 정자를 지어놓고 은둔의 삶을 살았던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1521-1575 이후)가 머물던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날이 흐렸지만 매학정에 찾아오는 봄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매학정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타 폐허가 됐으나 1654년(효종 5년)에 다시 지었고 1862년(철종 13년)에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됐다가 1970년에도 크게 보수를 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언덕에 정자를 지어놓고 은둔의 삶을 살았던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1521-1575 이후)가 매화나무를 사랑했던 것은 자연의 지극함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구미의 매학정에 들려서 흘러가는 낙동강을 내려다봅니다. 아래로는 정비가 잘되어 있어서 데크길로도 걸어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4대 명필은 안평대군 이용, 자암 김구, 봉래 양사언, 고산 황기로를 꼽을 수 있다고 합니다.  매학정이라고 부르던 정자의 주인 황기로는 14세에 사마시에 합격했지만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사람입니다. 

매화와 수선화, 둘 다 추위 속에 피는 꽃이라는 점에서 닮았지만 태생은 각각 나무와 구근식물로 다릅니다. 조선 성리학의 근본을 이룬 성현이 외로움 속에서 분재 매화와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연상되는 곳입니다. 

매학정이라는 정자의 이름이 매화꽃처럼 보이는 것은 저만의 시각일까요. 방은 하나있고 옆으로 대청마루가 나와 있는 형태입니다.  매학정에는 머무를 수 있는 방이 있는데 가로 두 칸에 세로 한 칸 반의 규모로 만들어져 있는데 충분히 세간살이를 담아 넣을 수 있지만 부엌이 없으니 말 그대로 정자입니다. 

매학정에 올라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래로는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이 되어 있고 우측으로는 사람이 살고 있는 민가가 있습니다. 

글이 있고 글시가 있는데요. 황기로의 초서풍은 16ㆍ17세기에 걸쳐 폭넓게 유행했는데 점획을 과감하게 생략한 감필법(減筆法), 획간의 공간을 좁거나 짧게 처리한 속도감 있는 운필은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가 크게 영향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합니다. 낙동강은 참 큰 강입니다. 구미를 스쳐서 흘러가면서 저 아래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이곳에 머물렀던 황기로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율곡 이이의 동생인 이우에게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아래로 걸어내려와서 공원을 거닐어봅니다. 매학정과 주변을 알리는 지도입니다. 

듣건대 선생도 우리처럼 외롭다 하니
그대가 돌아온 후 향기를 피우리라
바라건대 그대 언제 어디서나
옥과 눈처럼 맑고 참됨 잘 간직하소서

- 이황, 〈한성의 집에 있는 분재 매화와 주고받다〉

 

그렇게 유명한 선비들은 매화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살았으며 고산 황기로 역시 낙동강을 바라볼 수 있는 이곳에 매학정을 짓고 사람들과 교류를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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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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