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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이라는 절기가 찾아왔는데요. 이 맘때면 피는 매화, 산수유등 뻔한 봄꽃 나들이를 생각하게 됩니다.   코로나19 시국에 소문나면 붐비는 곳보다는 한적한 곳이 더 마음이 편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언택트라는 단어는 접촉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 우리는 이런 삶을 상상해보았을까요. 그런데 어떻게 만남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바로 이 시기가 언택트 만남이 더 좋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중간중간에 꽃을 볼 수있는 길목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조선 후기의 대표적 사상가인 정약용(丁若鏞)이 1801년(순조 1)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귀양 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1808년에 윤규로(尹奎魯)의 산정이던 이 초당으로 처소를 옮겨 1818년 귀양에서 풀릴 때까지 10여 년간 생활한 곳이다. 지금의 고택은 1958년에 신축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현재 살아있는 누군가와 만나는 것만을 중요시하지만 현시대에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만남은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과거에 살았던 사람을 만나는 것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정약용은 매일매일 이 길을 내려와서 차를 마시러 갔다고 하는데 번거로운 일이지 않았을까요. 사람은 매일매일 해야 되는 일들이 있다. 그걸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는데에서 재미를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도시 경영의 세계적 이슈 가운데 하나는 도보 생활권 중심 도시 구축이라고 합니다.  숲을 보고 호수를 볼 수 있는 길은 단순한 보행편의성뿐만 아니라 도시 쾌적성 증진, 탄소중립 기여, 도심 내 유동인구 확보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정약용은 백성을 위해 임금이 있고 목민관이 있는 것이지 임금이나 목민관을 위해 백성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었다고 합니다. 모든 권력의 원천인 천명(天命)은 백성의 마음이며, 천명이 떠나면 왕과 왕조는 망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정약용은 마음이 울적할 때면 다산초당 뒷길을 따라 백련사로 넘어가 제자인 혜장과 격의 없이 논어 맹자 주역을 이야기하고 시와 그림을 짓고 그렸다고 합니. 때론 이야기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는 홀로 유유자적하게 살 수 있었건만 그렇게 백성의 아픔을 안타까워했을까요.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1km 정도의 동백나무 숲길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우거져 있습니다. 이제 동백꽃은 거의 졌지만 오래전에 정약용은 이곳에서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맞았다고 합니다. 



‘백성들 뒤주에는 해 넘길 것 없는데/ 관가 창고에는 겨울 양식 풍성하네/ 가난한 백성 부엌에는 바람, 서리뿐인데/ 부잣집 밥상에는 고기, 생선 가득하네/'  - 기민시(飢民詩)

언택트 만남을 하기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과 삶을 되돌아볼 수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봄꽃 여행이라고 하면 마음이 어딘가 따뜻해지지 않나요. 저 역시 오래간만에 본 봄꽃에서 따스한 온도와 삶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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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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