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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역의 건너편으로 가면 예산군 예산읍 산성리 산성산에 있는 사당인 화랑묘가 있는데요. 1965년 김유신 장군의 화랑 호국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세운 곳이라고 합니다. 본전에는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으며 매년 3월 27일과 9월 27일에 대제를 올리고 있는 곳입니다. 

 

예산의 한적한 곳이지만 이곳에 가면 화랑묘라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김서현의 피를 이어받은 김유신은 648년(진덕여왕 2) 백제의 대량주를 공격하여 12성을 함락했으며 이때의 공으로 이찬이 되어 상주행군대총관에 오르게 됩니다. 사라진 왕국의 왕족이었지만 신라에서 자신의 힘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화랑묘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습니다. 김유신은 가야국의 왕실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으로 당시 소국이었던 김해 가야국 김수로왕의 13 세손입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예산산성을 구축했었다고 하는데요. 낮은 산이지만 위에서 한번에 주변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요지라고 합니다.  

계단이 상당히 가파른데요. 길이 없어진곳도 있어서 가시려면 조심스럽게 올라가셔야 합니다. 

구형왕(仇衡王)이 신라에 항복한 해를 보정 2년(562)은 고령의 대가야가 멸망한 해이고 양(梁) 나라의 중대통(中大通) 4년(532)에 신라에 항복한 것이 금관가야라고 합니다. 김유신이 595년에 태어났을 때는 이미 가야의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신라로 흡수되어 귀족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곳이 김유신 장군을 모신 화랑묘라는 곳입니다.  

김유신의 아버지이며 금관가야 시조인 수로왕의 11 세손은 김서현(金舒玄)으로 아내는 입종갈문왕의 손녀인 만명부인(萬明夫人)과 결혼하였는데 성골과 진골의 피가 달랐기에 거의 불가능한 결혼이었지만 만명부인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들의 관계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김유신을 말하면 화랑정신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겠죠. 화랑정신은 백제를 무너트리며 삼국통일의 기반을 만들게 됩니다. 

화랑이란 신라 진흥왕대에 인재 등용을 위하여 만든 청소년 수련 조직인 화랑도(花郞徒)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삼국통일 이후 전쟁이 없는 평화기가 도래함에 따라, 화랑을 통해 주요 관인을 양성하던 방식은 새로운 전환을 맞게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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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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