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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의 가곡이라는 지역은 벼농사를 지으면서 사는 곳인데요. 가곡저수지를 중심으로 논산의 파평윤씨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자연마을로는 용림, 갓점, 구중골, 지장골, 가곡, 중골등이 남아 있습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지만 파평윤씨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산수가 아름답다는 가곡2리는 회춘약수터가 있는 곳인데요. 전에 한 번 찾아가보려고 했었는데 아쉽게도 찾지 못해서 마셔보지 못했네요. 

잠시 걷기전에 몸을 풀기 위해 저수지앞의 휴식공간에서 준비운동을 해봅니다. 걷는 것도 준비운동을 하고 하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병사저수지의 길은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요. 가곡2리의 풍경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마을회관에서 돌아서 안쪽으로 가면 종학당으로 갈 수 있습니다.  

곳곳에 이렇게 안내판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노성면 종학길(구중골)이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구중골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아직 봄꽃은 피어나지는 않았지만 종학당에 이르게 되면 빨간색의 홍살문이 저를 맞아줍니다. 봄꽃은 언제 필련지 모르겠지만 요즘 꽃샘추위가 왔다갔다 하네요.  

종학당으로 오니 파평윤씨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요. 파평윤씨는 아시다시피 다음 대한민국을 이끌 분의 성씨이기도 합니다.  

파평윤씨와 광산김씨는 논산을 이끌어갔던 양대가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호학파의 사계 김장생이나 신독재 김집의 학문이 남다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파평윤씨도 많은 학자를 배출했습니다.  

비록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어도 옛 선비들은 학문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올라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단기간에 그 수준에까지 이르지 않는것이 당연한 듯 합니다.  

중심이 되는 건물은 연지앞에 있는 건물입니다. 탁 트여 있는 건물의 공간이 넉넉해 보입니다. 

 1625년 인평대군의 사부였던 윤순거가 사저에다가 자녀의 교육을 위해 세운 사설 교육기관이었지만 지역의 과거 준비생 및 석학들의 학문 연구햇던 곳이 종학당입니다.  

종학당 학사의 초대 사장은 바로 소윤의 중심인물이었던 명재 윤증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지역의 교육기관으로 운영되다가 1910년 한일합방이 되고 나서 상급과정이 폐쇄되고 삼일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는 모든 교육과정이 폐문되었습니다. 

종학당, 백록당, 정수로, 보인당 등 일원을 총칭하여 종학원이라고 명명된 이곳에서 창건 후 280여 년에 걸쳐 42명의 문과 급제자와 31명의 무과 급제자를 배출하였습니다. 

건물로 걸어서 올라가봅니다. 한적한 풍경의 종학당은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잠시 풍경을 보면서 가져온 음료 한잔을 마셔봅니다. 

종학당은 공부하는 사람들의 공간이었으며 학자들의 생각이 이어지는 곳으로 종학당의 종학(宗學)은 조선 시대 왕족 자제들의 교육을 위하여 세운 특수 교육 기관의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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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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