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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유력 가문이었던 재실을 가보면 관리가 안되고 있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문화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이제는 자치체등에서 관심을 가지고 잘 관리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지역마다 보면 거주지역과 주 거주민의 차이에  따라 그들의 행동이나 의식, 기질이 달랐는데요. 보통은 집성촌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청양의 고즈넉한 마을로 소나무가 심어져 있는 장승천이 흐르는 공간이 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오래된 역사를 보여주는 느낌을 들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잠시 장승천이 흐르는 풍광을 보면서 시간을 멈추어봅니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다보니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네요. 

이제 마을의 안쪽으로 들어가보면 영모재라는 곳이 나옵니다. 이곳에는 함양 이 씨가 처음 청양에 자리를 잡고 살았던 이관과 그 아들인 이효원의 제사를 올리는 청양 영모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관은 청양에 처음 들어와서 살았고 이효원은 그의 아들로 소북의 측에 섰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잠시 청양 영모재라는 설명을 읽어봅니다.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니까요. 1998년 12월 29일 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 제154호로 지정된 건물입니다. 이 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는 이효원은 대북이 집권할 때 사사되지는 않았지만 거제도로 유배되어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열린 공간이니 언제든지 들어가서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습니다. 영모재는 재실 4칸, 협문 1칸, 곳간 2칸, 행랑채 9칸으로 지어진지 350여 년에 가까운 고택입니다. 

 이효원은 인조반정으로 14년 만에 풀려나 초가에서 청빈한 생활을 하였으므로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집이 재신(宰臣)을 지낸 사람의 집인 줄 몰랐다고 할 정도입니다.  

건물의 안쪽으로 오면 그의 글이 남겨져 있고 재사를 위한 가재도구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통한옥방식으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건물의 앞에서 마당을 보니 이런 곳에서도 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곳은 쌀을 쌓아두던 공간이 아니었을까요. 지금은 비워져 있지만 엣 사람들은 쌀을 집에 쌓아놓고 살았으니까요. 

청양읍 장승리에 청양 영모재(靑陽永慕齋,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4호)외에도 청양에 고택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곳은 봉암리에 방기옥 가옥(方基鈺家屋,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9호), 청양읍 벽천리에 벽함정(碧涵亭) 터, , 정산면 천장리에 민종식 고택(閔宗植古宅) 등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은 유교의 가르침 중에서 효를 사회질서의 기본으로 하는 사회였습니다. 재실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공부할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한 중부 지방 건축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영모재라는 재실이 지어지는 것의 기본에는 효라는 개념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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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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