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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참 날은 좋은데 갈 곳이 마땅치가 않습니다. 그래도 매일매일 해는 보려고 노력을 하고는 있습니다.  TV만 보는 것보다는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 역사 이야기도 있습니다. 

논산의 은진면이라는 곳에 가면 익성군 이향령묘, 익성군신도비 및 무석, 진천군 이희경묘, 진릉군 이태굥묘, 진평부정이승경묘가 있으며 그 앞에는 세모재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조선왕실을 이씨왕조로 많은 사람들이 그 핏줄을 이어서 500년을 지탱해왔습니다. 정비를 비롯하여 빈에게서 나온 수많은 자식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익성군 이향령(益城君 李享齡, 1566년 3월 24일~ 1614년 7월 1일)는 조선 중기의 왕족이었습니다. 본관은 전주(全州), 휘는 향령(享齡), 자는 수원(壽元)이라고 합니다. 



신도비의 덮개돌 앞면에는 반용이 조각되어 있고 옆과 뒷면에는 구름무늬가 돋을새김으로 되어 있는데 신도비의 비의 덮개돌 앞면에는 반용이 조각되어 있고 옆과 뒷면에는 구름무늬가 돋을새김으로 되어 있습니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파천하자 아버지 하원군과 함께 걸어서 의주 행재소(行在所)에 호종하였으며, 1596년 정의대부(正義大夫)로 가자(加資)되고, 익성군(益城君)에 봉해졌습니다.



김직재의 무옥 사건에 연루되어 거제도에 유배되어 1614년(광해 6) 7월 1일 유배지에서 향년 49세로 별세하였는데 당시 아들들 대부분이 유배 중이었기에 제대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임시로 익산에 장사지낸 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신원이 되자 1643년에 이곳으로 이장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세모재라는 건물의 주변을 정비하고 있어서 들어가볼 수 있었습니다. 

왕이 수십권의 서책을 하사하고 승헌대부(承憲大夫)에 가자하였고, 1605년(선조 38) 호성원종2등공신(扈聖原從二等功臣)에 책록되었고, 1610년 종1품인 가덕대부(嘉德大夫)가 되었던 익성군의 묘소는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 산 93-3에 있으며, 익성군 신도비 및 무석(益城君 神道碑 및 武石)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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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린세상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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