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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에 활동했던 백사 이항복에게 세상에  어찌 이러한 견식과 문장이 있다는 말을 들었던 포저 조익선생은 충청남도 예산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충청남도에는 많은 유학자들이 있는데 모두들 조선시대에 큰 활약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우연하게 주말에  나갔다가 포저 조익선생의 묘라고 쓰여 있는 이정표를 보고 들어가봅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포저선생문집 및 송곡문집판각으로 포저 조익과 그의 아들 송곡 조복양의 문집인 포저.송곡선생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 있습니다.  

 

 

대전은 지금 코로나19 확진자가 계속 나오는 바람에 대부분의 공원이 7월 5일까지 잠정폐쇄가 되었습니다. 그중에 동춘당 송준길의 동춘당공원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송준길은 청서파(淸西派 : 인조반정에 가담하지 않은 서인세력)에 속했던 사람으로 포저의 문하에 들어가 진정으로 그를 좋아하고 칭송하며 따랐다고 합니다. 

송준길은 익숙한 이름이지만 그가 따랐던 사람이 포저 조익이라고 합니다. 포저의 말을 따르고 그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해명했던 사람도 송준길이었던 것입니다.

 

포저 조익의 묘는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포저 조익과 그의 아버지인 조영중 두 분이 함께 보셔져 있습니다.  이 묘는 조선조 유교의 영향을 받아 아들의 묘가 부모의 묘 위로 못 쓴다는 속설을 깨는 묘라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논산 사계 김장생의 묘도 그렇네요. 

 

포저 조익선생의 이야기에 대해 먼저 읽어봅니다. 포저 조익선생은 그의 시문집인 포저집도 남겨져 있습니다.  지경도설·역상개략·서경천설·대학곤득·중용곤득·주서요류 등으로 편찬되어 있으며 이것들은 모두 단행본으로 간행되어 있다고 합니다. 

조익선생은 1602년 문과에 급제한 후 삼사의 관직을 거친 조익은 인조반정 이후 이좌좌랑을 시작으로 주요 요직들을 겸했다고 합니다. 포저 조익은 1690년(숙종16년)시호를 받으면서 예장 한 것으로 봉분 아래 부분은 둘레돌을 쌓았고 앞으로 한층 아래에는 상석과 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본관은 풍양(豐壤). 자는 비경(飛卿), 호는 포저(浦渚)·존재(存齋). 오위도총부부총관 조안국(趙安國)의 증손인 조익선생은 조선시대 무난하게 벼슬 생활을 하면서 김육(金堉)과 함께 대동법을 확장, 시행하는 데 기여하였다고 합니다. 또 각종 폐막(弊瘼)을 개혁하는 데에도 전념하였는데 사후 뒷날 광주(廣州)의 명고서원(明皐書院), 개성의 숭양서원(崧陽書院), 신창의 도산서원(道山書院) 등에 제향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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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든 것을 사랑하는 서영이 공유의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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