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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이시기에 사리불과 석가모니를 그린 영산회괘불화가 있다는 두타산기슭의 영주사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영수사 영산회괘불화는 1977년 12월 6일 충북도유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었으며 한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괘불로 원래 이름은 석가모니괘축불상입니다.

지금은 조선시대 17세기 영산회상도의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괘불화(掛佛畵)인 영산회괘불화가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원래는 진천읍 상계리 미역수골의 백련암에 있었으나 암자가 폐허화하면서 괘불만 영수암으로 옮겨온 것으로 전해지며 매년 4월 초파일에 공개되고 있습니다.

 

 

 

상시로 만나볼 수는 없겠지만 석가모니불이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하는 장면으로 상하 2단으로 구성되어 상단에는 부처와 일행이 그려져 있고 하단에는 설법을 듣는 신도들이 밝은 색상에 유려한 필치로 그려진 그림을 기회가 되면 보아야겠습니다.  

 

 

인류의 문명 발상지중 하나라는 갠지스 강에서는 사문들의 탁월한 지도자 6명이 잇달아 출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을 6외사도라고 불렀는데 산자야도 그중에 속했다고 합니다. 그에게 마갈타국 왕사성 북쪽의 나라촌에서 바라문의 가문에서 태어난 사리불이 제자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우연하게 석가모니의 제자 아사지를 만나게 되고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달받으며 그에게 귀의하게 됩니다. 그리고 석가모니 열 명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고 후계자로 지목되었지만 석가모니보다 먼저 입적했다고 합니다.  

 


증통대사(證通大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사찰 뒤에 약천(藥泉)이 있다 하여 영수암이라 하였던 사찰은 1831년(순조 31) 묘익(妙益)이 중수하였고, 1867년(고종 5) 이한(李韓)이 중수하였습니다. 1947년 응택(應澤)이 중건하였고, 1983년에는 관음보전을 삼성각으로 고쳐 지금의 위치로 옮겼습니다. 

 

이후 1987년에는 대웅전을 완공하였고, 1992년에는 일주문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영수사 뒤편의 두타산(1357.0m)은 진천군 초평면, 증평군 도안면과 증평읍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부처가 누워있는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가장 현명했다는 사리불과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심신을 수련하는 것을 의미하는 두타는 잘 어울려 보입니다. 

 

'두타(頭陀)'는 '번뇌의 티끌을 떨어 없애 의식주에 탐착 하지 않으며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일'을 뜻하는 불교 용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삼성각 앞에 철당간이 세워져 있는 사찰은 처음 보는 듯 합니다. 보통 돌로 된 당간지주는 많이 있지만 철당간을 사용하는 사찰도 많지가 않습니다.  

 

 

사찰 영수사를 산자락에 품고 있는 은은한 종소리와 함께 아름다움을 간직한 명산 두타산 아래에서 마치 도를 닦듯이 주변을 걸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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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든 것을 사랑하는 서영이 공유의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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