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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가 다른 국가에 의해 패망이 되면 많은 것이 바뀌면서 없어지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삼국시대같은 고대국가에서는 사찰같은 곳이 그 나라의 정신을 반영하는 곳이었기에 폐사지가 된 곳이 적지가 않습니다. 특히 백제같은 국가에서 있었던 고대사찰은 없어진 곳이 많은데요. 공주의 서혈사지도 그런 곳입니다.

 

차로 들어가기 힘든 곳에 자리하고 있는 곳입니다. 입구에는 민가가 있는데 그 집을 지나서 위쪽으로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합니다. 

설마 여기있겠어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서혈사지를 보여주는 비가 보입니다. 

3차례 발굴을 거쳐 남쪽으로부터 탑, 금당, 강당이 일직선으로 세워졌으며 일탑식 사찰구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서혈사지는 백제시대에 세워진 후 통일신라시대 이후까지 있었던 서혈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있습니다. 

 

서혈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읽어봅니다. 서혈사라고 하면 서쪽에 혈이 있는 곳에 자리한 사찰이라는 의미일까요. ‘西穴’ 이라 불리는 굴과 사지 규모, 지세 등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언급했다. 당시 사지는 3단의 평탄지가 있지만 개간으로 인해 많이 파손됐다고 합니다. 

 

옛날에 사찰이 있었을때의 규모는 예측하기 쉽지가 않지만 부지규모로만 볼때는 큰 대사찰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백제는 공주로 수도를 이전한 후 국력을 회복한 후에 석굴 앞에 서혈사와 남혈사를 지었고, 차츰 대통사와 같은 대규모 가람을 조성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서혈사지에서 발굴된 많은 유물은 지금 국립공주박물관의 앞에 가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발굴조사 이후 1982년 사지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37호로 지정됐고, 불상 중 불두가 남아있는 석조 여래좌상 1구는 1989년에 보물 제97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929년 사지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석불 3구가 발견되었으며 1969년의 1차 조사에서는 동서 길이 9.05m, 남북 길이 5.85m 규모의 건물지 1동, 1970년도에는 탑지 및 동서 길이 10m의 남북 길이 8m규모의 금당지의 지대석과 초석 2매 및 적심석지 5지점이 조사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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