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이 넘어도 의미 있는 역사를 가진 봉선홍경사 갈기비
기억해야 될 역사 2025. 1. 25. 07:50 |평택을 갈일이 있어서 가는 길에 역사적인 공간을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국도변에 자리한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1,000년이 넘어도 가치를 더해하는 공간입니다. 국보 제7호로 지정이 된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국보 제7호로 지정이 될 만큼 중요한 문화재라고 합니다.
고려 현종 12년 (1021년)에 사찰을 짓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현종 17년 (1026년)에 세운 비로 이곳에는 사찰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손자이자 고려 8대 왕인 현종이 아버지 왕욱의 뜻을 기리고 여행자들의 편의를 위해 1021년에 지은 사찰이 봉선홍경사였습니다.
즉위하자마자 성종이 폐지시킨 연등회와 팔관회를 부활시킨 것도 그의 호불적 성향을 알 수 있는데 강도의 출현이 많았던 이 지역에 사찰과 숙소를 지어서 치안을 강화했다는 현종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절터에는 당시 절의 창건과 대규모 사찰에 관한 기록만을 담은 국보 제7호 '봉선홍경사 사적 갈비(碣碑)'만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봉선홍경사가 큰 사찰이었음을 예상해볼 수 있는 많은 유물들울 천안박물관을 방문하면 볼 수가 있습니다.
곳곳에는 옛날에 자리했던 석탑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귀부는 지대석과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어룡의 머리가 정면을 보지 않고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이 특징인 것이 봉선홍선사 갈기비의 특징입니다.
사찰 이름 앞의 ‘봉선(奉先)’은 불교의 교리를 전하고자 절을 짓기 시작한 고려 안종(安宗)이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목숨을 다하자, 아들인 현종(顯宗)이 절을 완성한 후 아버지의 뜻을 받든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고려 현종은 992년 태조의 아들인 안종 욱(제5 비 신성왕후 김 씨 소생)과 경종의 제4 비 헌정왕후 황보 씨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경종이 죽자 과부가 된 헌정왕후가 숙부인 안종 욱과 불륜을 저질러 낳은 아들이 바로 현종이었다고 합니다.
치안 유지는 자유주의 국가에서도 안전 보장과 함께 국가의 최소한의 역할 중 하나로 생각됩니다. 사찰이 있었던 자리를 사지라고 하는데 현종의 그 의지가 담긴 갈기비가 더 의미가 있어서 그런지 홍경사지가 아니라 봉선홍경사 갈기비로 불리는 곳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되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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