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이 가기 전에 찾아가 본 옛 교육의 공간 직산향교
25년을 준비하고 있는 요즘 100세 시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건강하고 자신의 할 일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요즘에 더 깨닫고 있습니다. 하늘아래 편안한 땅이라는 천안에 가면 마음이 평온한 느낌이 들게끔 합니다. 예전에는 호두과자로만 생각나던 도시였는데 지금은 천안이라는 도시에 대한 애착이 갑니다.
조선시대 직산현, 목천현은 천안군과 함께 지역성과 역사성을 자랑하던 고을로 현재 천안역이 자리한 천안시의 중심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충청남도 방문의 해라는 2025년과 2026년에는 충남이 간직하고 역사적인 공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 미래의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도 지명의 유래를 살펴보기도 하는데요. 직산에 대한 지명을 여러곳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직산향교가 자리한 이곳이 왜 직산이라는 지명이 되었을까요. 직산의 지형이 높아 천수답(天水畓)이 많고 가뭄으로 피(稷)가 무성하여 피산이라 칭하던 것이 직산으로 바뀐 것이라고 합니다.
겨울이 되어야 푸르름을 알 수 있다는 나무들만이 겨울에도 녹색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직산향교는 1588년(선조 21)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는데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군서리 164-1에 있는 직산향교에는 현존하는 건물로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신문(神門)이 남아 있습니다.
직산향교와 같이 오래된 건물들은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데요. 문화재보수작업을 통해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좋지만 문화재활용을 통한 사람들의 이어짐이 있으면 좋겠네요.
조선 전기에 세운 이 향교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다시 세워졌으며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보수하여 현재 모습을 갖춘 직산향교의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5성(聖)과 중국·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겨울은 쓸쓸한 계절이 아니라 봄의 화려함을 만들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웅전에 모셔진 사람들의 이름처럼 누군가에게 모셔진다는 것은 그만큼 의미가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직산 옛지도를 보면 농사를 위한 저수지들이 정말 많이 그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옛 읍치는 지금의 직산읍사무소가 있는 곳이 아니라 동네 주민들이 ‘구 직산’이라고 부르는 곳이라고 합니다. 직산초등학교를 찾아가면 되는데요. 초등학교 옆에 오래된 건물과 함께 멀지 않은 곳에 직산향교가 보입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서 이제 고령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요즘이지만 옛 역사를 살펴보면 제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보게 되는데요. 언제까지나 배우고 다니고 느끼면서 충청남도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젊은 마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