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행복을 찾아

청주 가덕면의 독립운동가 신흥식선생묘와 연안이씨열부각

느린세상걷기 2022. 5. 3.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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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청주의 역사인물 신흥식선생묘

청주의 효부로 알려진 연안이씨열부각

 

청주시내에서 떨어진 가덕면이라는 지역은 한적하게 언택트 여행을 할 수 있는 소소한 여행지이기도 합니다. 이곳에는 역사속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분과 효부로 알려진 분의 열부각이 있어서 찾아가 보았습니다. 삼일절에 찾아가 본 동오 신홍식 선생은 1919년 삼일 독립운동 당시에 가장 먼저 민족대표 33인중 1인으로 참여의사를 밝힌 분입니다.

 

가덕면 행정복지센터는 신축한지가 얼마되지 않은 행정의 중심지입니다.

 

동호 신홍식 선생의 묘는 청주의 가덕면 행정복지센터에서 건너편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입니다. 태화관에서 열린 독립선언식에도 참석하는 등 민족대표로서 적극적인 가담을 한 사람입니다. 조선을 조선사람의 조선으로 회복해야겠다는 외침을 하며 당당하게 독립의지를 피력하였는데 이로 인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경성감옥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신흥식선생의 묘소는 가지런하게 잘 정비가 되어 있네요. 


우리는 약자에 대해 배려라던가 측은한 마음을 가진 것에 대해 매우 인색한 편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아가다 보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는 1918년 국외에 있던 독립운동가들이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글로 조소앙이 집필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분위기에서 힘들게 만들어진 글이라고 합니다.

 

독립선언서의 글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사실 전혀 상관없어 보였던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자결이라고 하니까 무언가 심각한 것 같지만 한자 그대로 스스로 결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신흥식은 한학을 공부하여 13세 때 시율을 지을 정도가 되었고 16세 때 사서삼경에 능통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되고 동학농민운동 이후 사회 ・ 정치적 혼란이 심화되면서 ‘출세’의 기회가 없어지자 방탕한 생활을 했지만 나이가 들어 독립운동에 매진한 덕분에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다가 1939년 3월 18일 인차리 자택에서 향년 67세로 별세하였다고 합니다.

 

잠시 신홍식 선생의 묘에서 앞을 쳐다보니 탁 트여 있는 것이 참 좋습니다. 신흥식선생의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호는 동오(東吾), 초명은 홍식(弘植)인 신홍식은 1872년 3월 1일 충북 청주군 문의면(文義面)  문산리(文山里) 25번지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묘소에서 내려와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연안이씨 열부각으로 찾아가 봅니다.  

연안이씨 열부비는 청주시 향토유적 제 28호로 지정되었으며 고령신씨 신긍호의 처 연안 이씨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열부비라고 합니다.  

그녀는 충남 아산에서 살았던 이종영의 딸로 신긍호와 결혼하여 남편의 병이 위중해지자 극진히 간호하겨 시부모님을 정성껏 모셨다고 합니다.  

가덕면 계산리 마을입구에 서 있는 열부비의 비석에는 열부신긍호처연안이씨지비라고 적힌 열부기가 서 있습니다. 

가덕면이라는 지역은 멀지 않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옛 흔적을 찾아서 오니 구석구석에 마을의 이야기가 있었네요. 청주시 가덕면은 대한민국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면. 본래 청원군의 행정구역이었으나, 2014년 7월 1일 청원군이 청주시와 통합되면서 청주시 상당구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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